1820년 1월 17일, 영국의 소설가 앤 브론테 (Anne Brontë, 1820 ~ 1849) 출생
앤 브론테 (Anne Brontë, 1820년 1월 17일 ~ 1849년 5월 28일)는 영국의 소설가로 브론테 자매의 셋째 (막내)이다.
– 앤 브론테 (Anne Brontë)
.출생: 1820년 1월 17일, 손턴 요크셔
.사망: 1849년 5월 28일 (29세), 스카버러 요크셔
.묘지: 영국 스카버러 St Mary’s Church, Scarborough
.직업: 소설가
.국적: 영국
.부모: 부) 패트릭 브론테, 모) 마리아 브랜월
.형제자매: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브란웰 브론테, 엘리자베스 브론테, 마리아 브론테
.작가 세자매: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원래 샬럿은 3녀지만 위의 언니들 (마리아, 엘리자베스)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녀가 장녀인 것처럼 알려졌다. 제인 에어의 작가로 유명하다. 그녀의 여동생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썼다. 앤 브론테도 <아그네스 그레이> 등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언니들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세 자매는 1846년 그녀들의 머릿글자를 딴 필명으로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냈다. 당시로서는 여자 작가가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남자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이 시집은 잘 팔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문학계의 호응이 있어서 세 자매는 역시 필명으로 각각 1847년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제인 에어는 보수층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 소설이 너무 유명해진 덕에 자매의 본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폭풍의 언덕은 당시로서는 제인 에어보다 더 낮은 평가를 받는 호불호가 갈리는 소설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두 소설의 인지도와 평이 역전되었다. 플롯의 구성이나 심리 묘사는 당시에는 거칠다는 평을 받았지만 현대의 시점으로 시대를 앞선 선구적인 면모가 보인다.
○ 생애 및 활동
– 가정 환경
앤 브론테 (Anne Brontë)는 1820년 1월 17일, 영국 손턴 요크셔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Patrick Brontë, 1777.3.17 ~ 1861.6.7)는 요크셔 지방의 하워스 (Haworth)의 성공회 사제였다. 아버지가 원래 완고하고 엄격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어머니 마리아 브란웰 (1783.4.15 ~ 1821.9.15)이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에 브론테 집안은 굉장히 우울했다고 한다.
게다가 요크셔는 지역 자체가 굉장히 황량한 곳이다. 폭풍의 언덕은 바로 이 요크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이들은 이 요크셔에서도 손꼽히는 외딴 곳에서 자랐다. 지금 가도 많이 황량한 곳이다. 그나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곳곳에 워더링 하이츠 관련 푯말을 세우고 관광업(?)에 신경을 써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1960년대에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여길 가 본 대학교수 (워더링 하이츠 첫 번역자)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에도 무척 시골이었고 워낙 황량해서 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워스가 요크셔의 깊은 구석에 위치한 시골이라 찾아가는 것이 힘들기는 하다. 경사가 심한 언덕이 계속되는 지역이라 대중교통이 발달할 수 없었고, 때문에 현재도 대중 교통으로 하워스를 가려면 2~3회 대중 교통을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실제 요크셔 북부에 비하면 황량한 환경은 아니다. 오히려 초록 일색의 목초지가 잘 형성된 아름다운 시골이다. 다만, 바람이 매우 강하여 춥고, 외진 시골이라 세상으로부터 더욱 고립된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황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을 뿐.
84살까지 산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단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후사를 남긴 자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샬럿은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죽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고, 그녀 역시 요절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앞세우고 인과응보 손자, 손녀조차 없었던 아버지 패트릭은 마지막을 홀로 지냈으나 그나마, 자식 가운데 유일하게 결혼한 샬롯 브론테의 남편인 사위 아서 벨 니컬스 (1819 ~ 1906)가 패트릭을 돌봤기에 패트릭이 사망할 때 그 곁을 지켜줬다.
브론테 자매가 모두 요절한 이유로는 현대 관점으로 보면 아주 아동 학대가 따로 없는 당시 영국의 어린이 훈육 문화가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매우 금욕적이고 엄격하게 어린이를 키워야 한다고 여겼고, 어린이가 맛있고 양 많은 음식을 먹는 것조차 금지하였다. 브론테 자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제인 에어를 보면 어린이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가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허약해진 몸으로 황량한 요크셔 지역에서 쓸쓸하게 살아야 했으니 다들 건강이 좋았을리 없었다는 해석이다.
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브론테 사제관은 지금은 브론테 박물관이 되어 있다. 지금도 가면 이들 자매들 유품에서 심지어 어릴 적에 벽에 한 낙서와 이들이 어릴 적에 실뜨기하던 것, 남동생 브랜웰이 쓴 일기장까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기에 이들 자매 (&남매)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 가족
.부모: 부) 패트릭 브론테, 모) 마리아 브랜월
.형제자매: 마리아 브론테, 엘리자베스 브론테, 샬럿 브론테, 브란웰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장녀 마리아 (Maria, 1814년 04월 23일 ~ 1825년 05월 06일, 11세)
차녀 엘리자베스 (Elizabeth, 1815년 02월 08일 ~ 1825년 06월 15일, 10세)
3녀 샬럿 (Charlotte, 1816년 04월 21일 ~ 1855년 03월 31일, 38세)
장남 브란웰 (Branwell, 1817년 06월 26일 ~ 1848년 09월 24일, 31세)
4녀 에밀리 (Emily, 1818년 07월 30일 ~ 1848년 12월 19일, 30세)
5녀 앤 (Anne, 1820년 01월 17일 ~ 1849년 05월 28일, 29세)
– 주요 작품
언니들과 함께 작업한 ‘커러, 엘리스, 엑턴의 시집’ (1846년)을 출간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애그니스 그레이’ (1847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1848년)이 있다.
애그니스 그레이 (Agnes Grey, 1847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The Tenant of Wildfell Hall, 1848년)
- Selected Poems
“A Fragment” January 1st, 1840;
retitled “Self-Congratulation” 1846.
“Lines Written at Thorp Green”, August 28th, 1840;
retitled “Appeal”, 1846.
“Retirement” Sunday December 13th 1840.
“In Memory of a Happy Day in February”. Begun in February Finished November 10th 1842.
“To Cowper”, November 19th, 1842;
revised “To Cowper” 1846.
Untitled. December 30th, 1842;
retitled “Lines composed in a Wood on a Windy Day” 1846.
“A Word to the Calvinists”, May 28th, 1843;
retitled “A Word to the ‘Elect'”, 1846.
“A Hymn”, September 10th, 1843;
retitled “The Doubter’s Prayer”, 1846.
“The Captive Dove”, October 31st, 1843;
revised “The Captive Dove”, 1846.
“The Consolation”, November 7th, 1843;
revised “The Consolation”, 1846.
“‘Tis Strange to Think”, November 21st, 1843;
retitled “Past Days”, 1846.
“Music on Christmas Morning” , published 1846.
“The Student’s Serenade”, February 1844;
revised “The Student’s Serenade”, 1846.
“Home”, published 1846.
“Yes, Thou Art Gone”, April 1844;
retitled “A Reminiscence”, 1846.
“Memory”, May 29th 1844;
revised “Memory”, 1846.
Untitled, August 2nd 1844;
retitled “Fluctuations”, 1846.
“Night”, Written early in 1845, published 1915.
“The Arbour”, published 1846.
Untitled, May 20th 1845;
retitled “If this be all”, 1846.
Untitled, June 1845;
retitled “Views of Life”, 1846.
“Dreams” Spring 1845, published 1915.
“Vanitas Vanitatis Etc”, September 4th 1845;
retitled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1846.
“Fragment”, 1845;
retitled “The Penitent”, 1846.
“Parting Address from Z.Z. to A.E.”, October 1st, 1845;
retitled “Stanzas”, 1846.
Untitled April 1847, published 1915.
“Self-Communion”, November 1847-17th April 1848, published 1900.
- Bibliography
.Fiction
Agnes Grey London: T.C. Newby, 1847. (On-line edition: Oxford: Shakespeare Head Press, 1931.)
The Tenant of Wildfell Hall. London: T.C. Newby, 1848.
.Poetry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 London: Aylott and Jones, 8, Paternoster Row, 1846.
Brontë Poems A.C. Benson, Ed. London: Smith, Elder, 1915.
The Poems of Anne Brontë: A New Text and Commentary Edward Chitham, Ed. London and Basingstoke: The Macmillan Press Ltd, 1979.
.Biography
‘Biographical Notice of Ellis and Acton Bell’, in the posthumous edition of Wuthering Heights and Agnes Grey A new edition together with a selection of literary remains, by Charlotte Brontë. London: Smith, Elder, 1850.
The Life of Charlotte Brontë by Elizabeth Gaskell, 1857.
Anne Brontë. A Biography by Winifred Gerin,1959.
Anne Brontë: Her Life and Work by A. Harrison and D. Stanford, 1959.
A Life of Anne Brontë by Edward Chitham.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991.
The Brontës by Juliet Barker. New York: St. Martin’s Press, 1994.
○ 브론테 자매 (The Bronte Sisters / Bronte Family)
샬롯 브론테 (Charlotte Bronte)와 함께 소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을 쓴 에밀리 브론테 (Emily Jane Bronte)와 ‘아그네스 그레이 (Agnes Grey)’를 쓴 막내 앤 브론테 (Anne Bronte) 이 세 사람을 우리는 흔히 ‘브론테 자매’ (The Bronte Sisters / Bronte Family)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들 자매는 소설을 출간하기 전에 공동으로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출판했다.
– 샬럿 브론테 (Charlotte Bronte, 1816 ~ 1855)
샬럿 브론테 (Charlotte Brontë, 1816년 4월 21일 ~ 1855년 3월 31일)는 영국의 소설가이다. 영국의 북부 요크셔의 손턴에서 출생한 브론테 자매의 첫째이다.
영국 요크셔주의 브래드퍼드에서 성공회 목사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여덟살 때 네 자매가 함께 카우언브리지 기숙학교에 입학했으나, 극도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듬해에 두 언니마저 폐결핵에 걸려 사망한다. 어린 샬럿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남긴 이 경험은 훗날『제인 에어』(1847)의 로우드 기숙학교로 재현된다. 남은 세 자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는 자신들만의 가상세계를 창조해 놀이처럼 글을 쓰며 성장한다. 1831년 로헤드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 샬럿은 1835년부터 1838년까지 그곳에서 교사로 일한다. 1842년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품고 벨기에 브뤼셀로 유학을 떠나,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 겸 영어 교사로 2년간 지낸다. 이때의 경험이 『빌레뜨』(1853)의 바탕이 되었다. 1846년 에밀리, 앤과 함께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펴내고, 1847년 『제인 에어』를 출간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같은 해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아그네스 그레이』도 출판되어 1847년은 브론테 가족에게는 물론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됐다. 『제인 에어』에서 마지막 소설인 『빌레뜨』까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 독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불온한 책’으로 취급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오늘날엔 선구적인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장편소설 『셜리』(1849), 처음으로 집필한 장편이지만 사후에야 출간된 『교수』(1857) 등을 남겼다. 독신을 고집했던 샬럿은 1854년 아버지 교회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컬스와 결혼하지만, 이듬해 봄 임신 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서른여덟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에밀리 브론테 (Emily Jane Bronte, 1818 ~ 1848)
에밀리 제인 브론테 (Emily Jane Brontë, 1818년 7월 30일 요크셔 손턴 ~ 1848년 12월 19일 요크셔 하워스)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1818년 영국 요크셔주 손턴에서 목사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 사이에서 여섯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중 셋째 딸이 『제인 에어』로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작품을 쓴 샬럿 브론테다.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남매들은 10대 초반부터 산문과 시로 습작을 한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워스 교구에서 자라났는데, 세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청소년기에 세 명의 언니들도 병사했다. 월터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짓고 일기 쓰기를 즐겼다. 에밀리는 1847년 엘리스 벨이라는 남성의 가명으로 『폭풍의 언덕』을 출간한다. 목사의 딸로서 교사 생활을 잠깐 한 것이 전부인 평범해 보이는 그녀가 모든 사람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는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1846년 샬럿이 에밀리의 시를 발견하고는 출판사에 시집 출판을 문의하여 세 자매의 가명을 제목으로 한 공동 시집 『커러, 엘리스, 액튼 벨의 시 작품들』을 냈다. 1847년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그리고 샬럿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었다. 언니 샬럿이 쓴 『제인 에어』가 출간 즉시 큰 인기를 얻으며 성공을 거둔 것과 달리 『폭풍의 언덕』은 출간 당시 작품 내용이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에밀리는 마치 자신이 직접 그 폭풍을 맞은 듯, 작품을 출간한 이듬해인 1848년, 폐결핵에 걸려 30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한 권의 대작으로 국내 소설가로만 알려져 있으나, 영미권 대학의 영문학과에서는 중요한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에밀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경험해야 했지만 상상력을 통해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렀”으며, 피아노와 외국어를 독학하면서 좁은 집에 머물렀지만 “성스러운 목소리로,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였다.
– 앤 브론테 (Anne Bronte, 1820 ~ 1849)
필명이 액턴 벨 (Acton Bell)인 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17일,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론테의 딸로 출생했다. 위로는 언니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와 오빠 브랜월이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손위 이모가 집안일을 돌봐준다. 다섯 살 때 마리아와 엘리자베스 두 언니가 사망한다. 1834년, 언니 에밀리와 함께 첫 번째 자전적인 글을 완성하는데 이 글에서 처음으로 곤달이 등장한다. 1835년, 샬럿이 하워스를 떠나 로헤드 학교 교사가 되고, 에밀리는 학생으로 같은 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에밀리는 향수병으로 곧 집에 돌아오고, 대신 앤이 로헤드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에밀리와 함께 두 번째 자전적인 글 완성하지만 심각한 병으로 2년 후 로헤드 학교를 떠난다. 1839년, 19세의 나이에 머필드의 블레이크 홀로 이주하여 잉햄 집안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해 12월 가정교사 일을 그만두고 하워스로 돌아와 곧바로 요크 근교의 토프 그린 홀에서 다시 가정교사 일을 시작한다. 1844년, 브론테 자매는 고향 하워스에 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하워스에서 가족이 재결합한다. 1846년, 샬럿, 에밀리와 함께 쓴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에 21편의 시를 발표, 1847년 10월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고, 이어 12월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함께 출간된다. 1848년 앤 브론테는<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출간했다. 그해 9월에 브랜월, 12월에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 다음해인 1849년, 앤 브론테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 편견 때문에 남자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던 브론테 자매
중학생 시절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원제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는 7번을 내리 읽었을 만큼 내게는 감명적인 소설이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을 꼽으라면 샬롯 브론테 (Charlotte Bronte)의 제인 에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샬롯 브론테는 우리에게 브론테 자매로 알려진 세 사람 중의 한 명이고 흔히들 맏이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녀의 위로 두 명의 언니들이 있었으나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사망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샬롯 브론테 (Charlotte Bronte)와 함께 소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을 쓴 에밀리 브론테와 ‘아그네스 그레이 (Agnes Grey)’를 쓴 막내 앤 브론테의 세 사람을 우리는 흔히 ‘브론테 자매’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들 자매는 소설을 출간하기 전에 공동으로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출판할 때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이 필명들이 모두 남자의 이름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앤 롤링이 2013년에 발표한 범죄소설 Cuckoo’s Calling은 ‘Robert Galbraith’라는 남자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고 출판사 편집자였던 David Shelley는 “여자가 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나중에 밝힌 바가 있었다. 이후 조앤 롤링이 쓴 것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변호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판매가 부진하던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조앤 롤링이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한 이유는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이와는 달리 오늘의 주인공들인 브론테 자매는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남자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즉 샬롯 브론테는 ‘Currer Bell’을 에밀리 브론테는 ‘Ellis Bell’을 막내인 앤 브론테는 ‘Acton Bell’이란 남자이름을 각각 필명으로 사용하였고 유명한 소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또한 본명이 아닌 그녀들의 필명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문학비평가들로부터 관대한 평을 받게 되면서 이들 자매는 필명이 아닌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폭풍의 언덕’의 4판의 서문에서 언니인 샬롯 브론테 (Charlotte Bronte)는 남자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Averse to personal publicity, we veiled our own names under those of Currer, Ellis, and Acton Bell; the ambiguous choice being dictated by a sort of conscientious scruple at assuming Christian names positively masculine, while we did not like to declare ourselves women, because — without at that time suspecting that our mode of writing and thinking was not what is called ‘feminine’-we had a vague impression that authoresses are liable to be looked on with prejudice 하략”
샬롯 브론테가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확실하게 남자의 이름이라고 알 수 있는 크리스천 네임이 아닌 애매한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남자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양심적인 망설임과 여성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 때문에 여성임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혼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 년도 훨씬 이전인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던 그녀들과는 달리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은 어떨까?
‘남녀 임금격차지수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글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세계의 성별 격차지수 (The Global Gender Gap Index)에서도 대한민국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남녀의 임금격차는 2017년까지 15년간이나 연속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브론테 자매가 필명을 버리고 자신들의 본명을 사용한 것과 같이 우리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게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의 벽은 언제쯤 허물어질 수 있을까?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