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이집트 방문기 (1)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23년 10월 11~21일 (이집트·이탈리아, 10박 12일), 10월 22일~24일 (강릉 오죽헌·설악산·남양주 다산생가, 2박 3일)에 “아는 만큼 보인다” (“I Can See As Much As I Know”)라는 주제로 제2차 인문학여행을 33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가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신비함에 압도되어 한동안 방문기를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하다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희미한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기록해 본다. _ 편집자 주.
한국을 거쳐 이탈리아 바티칸으로
우리 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단은 1여년의 모집기간과 6개월간 여행을 위한 인문학 공부를 하고 2023년 10월 11일에 출발했다. 10월 11일, 시드니 국제공항에서 모여 오전 10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10여 시간 비행,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해 한국, 몽골과 미국에서 모여온 일행 33인이 모두 모여 경유지 호텔로 이동했다.
1박 후 10월 12일 오전 11시 50분 비행기로 13시간을 비행해 이탈리아 로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도착시간은 오후 6시가 넘었기에 바로 호텔로 이동해 저녁식사와 휴식을 가졌다. 시드니에서 출발해 한국을 경유해 이탈리아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린 것이다. 몸이 피곤해 곧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10월 13일 새벽부터 바티칸 박물관 입장을 위해 줄을 서느라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박물관 입장을 위해 줄을 서며 3시간여 기다리고 입장했다.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의 성실한 안내와 설명을 들었다. 온갖 진귀한 유물과 작품들을 대할 생각을 하니 기대감으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설명을 들으며 함께 공부했던 내용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 사이 바티칸 담벼락 근처 카페의 커피도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탈리아에서 에쏘프레소 커피가 시작됐다더니 평범해 보이는 카페지만 커피맛은 웬만했다. 바티칸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기다 보니 입장시간이 되어 줄을 섰다가 입장했다.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 (라: Status Civitatis Vaticanæ, 이: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은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경 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위요지 도시국가이다. 바티칸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총 면적은 0.44km2에 인구는 수백 명에 불과한 극소 국가로서 면적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전세계의 주권 국가 중 가장 작다.
이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 (756 ~ 1870)이 있었으나,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소멸했었다. 바티칸 시국은 이 교황령의 회복을 목표로 한 1929년 2월 11일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로 독립을 성취하여 오늘에 이른다.
바티칸 투어는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는 바티칸 박물관, 두 번째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와 천장화 감상, 세 번째는 성 베드로성당과 광장일대를 둘러보는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
먼저 바티칸 박물관을 입장했다. 박물관에는 교황청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과 고문서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외벽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등 대예술가들의 벽화와 장식이 즐비했다. 박물관은 미술관, 도서관, 유물관, 회화관 등으로 나뉘었고 각 방은 브리지아실, 라파엘로실, 지도실 등 특유의 명칭으로 불렸다. 잘 알려진 대작 라오콘 등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 대가들이 남긴 걸작 르네상스 회화들과 역대 교황들이 수세기에 걸쳐 수집한 막대한 미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박물관 사이에 피냐정원이 인상깊었다. 거대한 솔바울과 지구본이 있는 피냐정원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피로 리고리오가 만든 정원으로 높이 4미터의 거대한 청돌 솔방울이 있어 피냐 (솔방울) 정원이라 부른다. 청동 솔방울과 더불어 피냐 정원의 상징인 지구인의 지구는 로마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 현대조형물로 지구의 오염과 멸망을 표현했다.
바티칸의 회화관은 다량의 작품으로 끝없이 나타나는 작품들에 나중에는 감흥을 잃을 정도로 넘쳐났다. 인상깊은 곳을 꼽으면 원형의 방, 아라찌의 화랑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지도의 방과 라파엘의 방중 서명의 방의 아테네 학당이다.
지도의 방은 황금빛 천장이 화려했다. 복도의 길이가 100여 미터로 복도좌우에는 중세시대의 지도들이 가득했다. 당시 교황이 지배하는 성당 40여개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들이라고 한다. 황금빛 천장은 현대 유명 호텔들이 재현하는 모델이라고 한다.
지도의 방을 지나 라파엘의 방은 매우 인상깊었다. 특히 신학, 철학, 수학, 예술 등 각 학문을 대표하는 여러 시대 54명의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그린 ‘아테네 학당’ 작품은 규모가 상당했다.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 박물관 관람 후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작품들을 지나갔다. 1473년에서 1484년에 걸쳐 건설된 시스티나 성당은 르네상스시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작품으로 유명하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천장화를 바라보느라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사진촬영이 금지여서 명화를 눈에 담았다. 처음에는 멀리서 보아서 그런지 천정이 작아보였는데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매우 넓었고 참으로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340명이 등장한다고 한다. 역시 눈에 띄는 작품은 중앙에 위치한 천지창조가 대표적이었다. 규모와 완성도를 위해 미켈란젤로가 척추가 취고 눈병이 났다는 것이 과연 과장이 아님직했다.
‘천지창조’에 이어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며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두 작품을 한곳에서 보았다는 설레임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성 베드로대성당
바티칸박물관과 시스타나예배당을 방문하고 이어 성 베드로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베드로 대성당 (라: Basilica Sancti Petri, 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전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전 (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서기 67년에 순교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로마의 초대 주교, 즉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 교구의 대성전의 명예를 지닌 교회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성베드로의 시신이 대성전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전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전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성베드로 대성전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전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 (後陣)은 서쪽 끝에 있다.
대성당을 향하다 보니 바티칸 근위대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티칸 근위대의 전통과 역사 또한 바티칸의 한 부분이다. 정확한 명칭은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이다. 줄여서 바티칸 근위대, 또는 스위스 근위대라 부른다. 교황청에 소속된 준군사조직으로, 현재까지 바티칸 시국이 보유하고 있고, 이들의 임무는 바로 사도궁의 치안을 포함해서 교황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스위스 근위대의 기원은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라 현대에 이른다. 그 이유는 스위스 근위대의 충성심이다. 스위스 근위대의 첫 번째이자 가장 치열했던 교전은 1527년 5월 6일에 있었다. 당시에는 1526년에 시작된 코냑동맹전쟁 (1526-30) 중이었는데, 적대국인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가 보낸 제국군대가 도시 로마를 침공, 탈환한후 약탈을 자행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로마가 함락되며 제국군인들이 시내로 쏟다져 들어오자 교황청에서 고용한 각 나라의 용병들은 싸움을 피하여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스위스 근위대만큼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목숨을 받쳐 충성을 다한 이들의 용맹함으로 인해 이후 주로 스위스 용병 출신들이 교황청 근위대에 기용되는 전통이 생겼다. 또한 지금까지도 매년 5월 6일이 되면 바티칸에 주둔하는 신참 스위스 용병들은 충성서약을 하는데, 이는 1527년 당시 용맹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선배들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성 베드로대성당은 입구부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발과 눈을 사로잡아 한참을 서성였다. 한때 한 관광객이 망치로 내려쳐 조각이 났지만 미세한 부분까지 찾아 복원해 현재는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메르니니가 설계한 발다키노 교황의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가 29미터로 청동으로 만든 조작이다. 4명의 천사에 의해 하늘로 오르는 듯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천장은 쿠폴라돔이 덮여있다. 이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그가 죽은지 23년이 지난후에 완성됐다고 한다. 돔 발코니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상 오르지 못했다.
성 베드로성당 밖으로 나와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의 본명은 산 피에트르 광장이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광장으로 바로크 건축의 특징을 잘 담았다고 한다. 로마 4대 광장중 하나이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아 광장은 르네상스식 건축으로 두 광장을 비교하면 바로크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비교가 가능하다. 산 피레트로 광장은 284개의 원기둥이 광장을 감싸안고 있다. 광장에는 엽서를 쓰는 이들이 많았다. 이유는 바티칸 우체국에 자신의 주소지로 엽서를 보내어 받아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우체통에 엽서를 넣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많이 눈에 띄었다.
바티칸 관람후 우리 일행은 옆문을 이용해 인근 식당에서 오찬을 나누며 다음 장소인 카타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 = 위키백과)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