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1월 31일,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권진이•박종원•홍병주•손소벽이 당고개에서 순교
당고개에서 순교한 첫 순교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39년 기해박해때의 순교자임에는 틀림없을 것으로 믿어진다.
거듭되는 군난을 피해서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안양 수리산 깊숙한 골짜기 담배촌에 은거했던 최양업 신부의 부친 복자 최경환의 일가와 교우들은 서울로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최경환 등 다수가 옥중에서 순교했다.
그들 중 끝내 신앙을 꺾지 않은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를 위시한 나머지 교우들이 당고개에서 망나니의 칼날 아래 쓰러졌다.
그러던 중 1840년 1월 31일과 2월 1일, 1841년 4월 29일 각각 당고개에서 참수, 또는 교수로 순교한 권진이 이경이 이인덕 박종원 홍병주 홍영주 손소벽 이문우 최영이 김성우 등 10명이 복자로 시복되어 당고개는 영광의 땅이 되었다.
그런데 당고개에서 순교한 10명의 복자들은 태반이 순교자의 집안사람들이라는 점이 주목 할만하다.
홍병주, 영주형제는 순교자의 조카와 손자이며 손소벽, 최영이 모녀는 각각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복자 최창흡, 조신철의 아내였고, 이인덕은 복녀 이영덕의 동생, 권진이는 복녀 한영이의 딸, 박종원은 복녀 고순이의 남편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순교의 길을 걸어 1925년 79위 시복식에서 나란히 복자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입었다.
또한 이들은 한국천주교회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지도자는 아니지만 회장, 신학생, 동정녀, 부인 등의 신분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충실한 삶을 살았던 크리스찬이었기에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당고개에서 순교한 복자 10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괄호안은 세례명ㆍ순교 당시 나이).
1840년 1월 31일 순교자 =권진이 (아가타ㆍ21), 이경이 (아가타ㆍ27), 이인덕 (마리아ㆍ22), 박종원 (아우구스띠노ㆍ48), 홍병주 (베드로ㆍ42), 손소벽 (막달레나ㆍ39)
1840년 2월 1일 순교자 = 홍영주 (바오로ㆍ39), 이문우 (요한ㆍ31), 최영이 (바르바라ㆍ22)
1841년 4월 29일 순교자 = 김성우 (안또니오ㆍ47)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