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1월 10일, 미국의 총기 개발자 새뮤얼 콜트 (Samuel Colt, 1814 ~ 1862) 별세
새뮤얼 콜트 (Samuel Colt, 1814년 7월 19일 ~ 1862년 1월 10일)는 미국의 발명가 및 공장 경영자이다. 콜트 특허 무기 생산 회사(현 콜트 파이어암스)를 설립하고, 리볼버 권총을 보급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새뮤얼 콜트 (Samuel Colt)
.출생: 1814년 7월 19일, 미국 코네티컷 하트퍼드
.사망: 1862년 1월 10일, 미국 코네티컷 하트퍼드
.부모: 크리스토퍼 콜트, 사라 콜트
.형제자매: 존 C. 콜트, 노르망 녹스 콜트, 올리비아 페인 콜트, 메리 루그레티아 콜트 등
.배우자: 엘리자베스 자비스 콜트 (1856 ~ 1862년)
.자녀: 콜드웰 하트 콜트
.설립 조직: 콜트 제조회사
1836년 오늘 미국 뉴저지주의 작은 공장에서 볼품은 없지만 혁신적인 권총 1정이 탄생했다. 새뮤얼 콜트 (Samuel Colt)가 고안한 ‘리볼버’ (Revolver, 회전식 권총)였는데 최초로 연발 사격이 가능한 권총이었다.
콜트는 10대때 선원으로 일하면서 증기선의 바퀴에 착안, 리볼버를 설계했다. 방아쇠를 당기면 원형 탄창이 회전하면서 뒤쪽의 공이치기가 뇌관을 쳐 발사되는 방식이다. 복잡한 장치가 없어 고장이 적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으로 개발된지 170년이 지난 요즘도 애용된다.
처음엔 팔리지 않아 공장 문을 닫았지만 1847년 텍사스 민병대에게서 대량 주문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그는 고향 코네티컷주에 콜트사를 세웠는데 서부개척, 남북전쟁으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최대 총기회사로 컸다. 1960년대 M16소총을 만든 것도 이 회사다.

○ 생애 및 활동
새뮤얼 콜트 (Samuel Colt)는1814년 7월 19일, 미국 코네티컷 하트퍼드에서 출생했다.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 살고 있던 사무엘 콜트는 20대 초반에 현대화된 콜트 (Colt) 권총을 제조해 특허를 받았다. 이후 콜트 권총 시대가 개막됐다.
콜트사의 창립자 새뮤얼 콜트 (Samuel Colt)는 무기뿐 아니라 산업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부품 규격화를 통한 호환성 확보, 작업 세분화, 제품 일련번호 (시리얼넘버), 영업 전문 대리점 등을 처음 선보인 사람이 콜트다.
성공의 시발점은 1836년 2월25일의 특허 취득이다. 권총을 쏠 때마다 회전탄창을 손으로 돌려야 하는 불편함을 없앤 반자동식 리볼버 권총으로 특허를 따낸 22세의 외항선원 출신 청년은 바로 공장을 세웠다.
1837년 처음으로 ‘텍사스 패터슨 콜트’가 제조됐다. 하지만 결과는 6년 만의 도산. 특허분쟁 탓이다.
1847년 특허 연장에 고무된 그는 다시 사업에 나섰다.
남의 공장을 빌렸지만 장인의 수작업에 의존하던 공정 세분화ㆍ자동화를 통해 품질을 높였다.
사업 영역도 넓혔다. 리모컨으로 조정되는 폭발장치를 개발, 대서양 해저 케이블 가설공사에 납품하고 마취제로 쓰이던 아산화질소를 ‘웃음 가스’로 팔아 돈을 벌었다. 주력인 총기 사업에서도 대박이 성공했다.
인디언 사냥과 멕시코 전쟁, 남북전쟁 덕분이다.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리볼버의 유용성이 입증되고, 멕시코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으로부터 총기 제작 요청이 들어와 1847년 다시 사업을 재개했다.
재기에 성공한 콜트는 1851년 하트포드에 세계 최대의 총포 공장을 건립했다.
1천400여 개의 기계장비를 갖춘 이 공장에서 부품 호환이 가능한 규격화된 총기들이 대량 생산되었다. 성능 좋은 권총과 소총들이 값싸게 시장에 나오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사업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1851년에는 현대화 공정을 갖춘 최초의 사업장이라는 하트포트 공장을 세우고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런던에 지사를 개설했다.
남북전쟁 발발 (1861년) 당시 그는 이미 미국의 10대 부호로 꼽혔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 기간 중 (1861 ~ 1865년)에 남군과 북군,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대량주문을 받아 엄청난 재산가가 되었다.
또한 엄청난 수요가 몰리자 상호교환이 가능토록 부품을 표준화해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건강 악화로 1862년 47세로 사망한 그가 남긴 재산은 1,500만달러. 요즘 가치로 3억달러가 넘는 유산의 대부분은 총을 팔아 번 돈이다.
콜트사가 만든 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신은 모든 인간을 창조했다. 콜트는 그들을 평등하게 보냈다.’

○ 기타
- 미국 콜트총기공장, 국립공원으로 재탄생한다
미국 코네티컷 주 하드포드의 콜트 총기공장이 국립공원으로 재탄생한다.
지난 (2014년) 12월 19일(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에 서명했다.
총기공장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에 목소리를 높였던 John Larson 민주당 하원의원은 “총기공장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살아있는 기념물이 될 것”이라며 콜트사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 미국의 총기폭력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정부는 매년 20만 명의 관광객으로 수백만 달러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코티네컷 주는 이 프로젝트를 10년 넘게 추진해왔다. 총기공장이 국립공원이 되면 하트포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을 살릴 수 있고, 리볼버 제조기술로 유명했던 공장의 명예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1855년에 문을 연 콜트 총기공장은 총기부품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것으로 총기산업의 혁명을 일으킨 19세기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푸른 양파모양의 돔이 특징인 약 1,052,182㎡ (260ac)의 총기공장에는 병기고와 근로자주택, 선한목자교회 (the Church of the Good Shepherd)가 있다. 교회에는 리볼버 부품이 새겨진 조각상과 새뮤얼 콜트 (Samuel Colt, 창립자)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한편 콜트사는 2012년 코티네컷 주 뉴타운의 샌디훅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어린이 20명, 교사 6명 사망) 이후 총기거래에 대한 규제강화로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 남아있다.”고 말하며 축하에 함께하지 않았다.
총기산업협회 (A gun industry association)도 공원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었으며, 콜트사 임원들은 논의하기를 거부했었다.
지난해 국립공원 입법에 지지철회 했던 국제사격스포츠재단 (The National Shooting Sports Foundation)의 수석부사장 Lawrence Keane은 지난주 “우리는 공원에서 입장권을 받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만드는 것 보다 좋은 보수의 제조업 일자리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콜드사와 코네티컷 주의 의견은 상충되지만 총기규제강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콜트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공원 프로젝트에 재원을 쏟고 있다.
14년 전, 공원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추진했던 Larson 하원의원은 “공원 프로젝트가 콜드사에 대한 자부심의 포인트”라고 확신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