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6월 10일, 독일의 부흥신학자 아우구스트 톨룩 (Friedrich August Gottreu Tholuck, 1799 ~ 1877) 별세
아우구스트 톨룩 (Friedrich August Gottreu Tholuck, 1799년 3월 30일, Breslau, Holy Roman Empire ~ 1877년 6월 10일 <78세>, Halle <Salle>)은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목사, 역사가, 교회 지도자였다.

– 아우구스트 톨룩 (Friedrich August Gottreu Tholuck)
.출생: 1799년 3월 30일, Breslau, Holy Roman Empire
.사망: 1877년 6월 10일 (78세), Halle (Salle)
.모교: University of Breslau
.직업: Pastor, theologian, historian
.분야: 변증학, 1700년대 기독교사
.주요저서: Die wahre Weihe des Zweiflers (1823), Stunden christlicher Andacht (1839)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목사, 역사가, 교회 지도자였다.
설교자로서 Tholuck은 그의 시대 최고의 인물 중 하나였다. 교사로서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주석 (로마서, 요한복음, 산상수훈, 히브리서)과 여러 권의 설교에 이어 가장 잘 알려진 책은 Stunden Christlicher Andacht (1839; 8th ed., 1870)이다.
그리고 신학사, 특히 변증론과 관련된 수많은 에세이를 출판했다. 영감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의 저서 Die Propheten und ihre Weissagungen (1860), “Alte Inspirationslehre” 에 대한 에세이, Deutsche Zeitschrift für christliche Wissenschaft (1850), Gespräche über die vornehmsten Glaubensfragen der Zeit (1846)에 나타나 있다.
그는 또한 Herzog의 Realencyklopädie에 많은 기사를 기고했으며 몇 년 동안 Literarischer Anzeiger라는 저널 (1830 ~ 1849)을 편집했다.

○ 생애 및 활동
Tholuck은 Breslau에서 태어나 그곳의 University of Breslau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언어 배우는 능력에 두각을 나타냈다. 동양의 언어와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그는 더 나은 연구를 위해 베를린 대학교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동양학 학자인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폰 디에즈 (1750 ~ 1817)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베를린의 경건주의 집단에 소개되었고 그의 “영적 아버지”가 된 남작 Hans Ernst von Kottwitz와 역사가 Neander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신학교수 이전에 동방 선교사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낭만주의 학파와 슐라이어마허 (Schleiermacher)와 G. W. F. 헤겔 (G. W. F. Hegel)의 영향도 어느 정도 느꼈지만, 그들의 체계의 깊이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마침내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그는 마침내 학문적 소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1821년에 그는 Privatdozent가 되었고, 1823년에는 베를린에서 특임 신학 교수가 되었지만 동시에 국내외 선교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구약과 신약, 신학, 변증론, 18세기 교회사 등을 강의했다.

1821년에 그의 첫 저서인 Sufismus, sive theosophia Persarum pantheistica를 출판했다.
동일한 연구에 따라 그는 Blütensammlung aus der morgenlandischen Mystik (1825)과 Speculative Trinitätslehre des späteren Orients (1826)를 출판했다.
이교의 본질과 도덕적 영향에 관한 그의 유명한 에세이 (1822)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Denkwürdigkeiten에서 출판했다.
그리고 그의 로마서 주석서 (1824)는 성서 해석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곧 모든 주요 유럽 언어로 번역된 또 다른 저서인 Die wahre Weihe des Zweiflers (1823)는 그 자신의 종교 역사의 산물로서 그에게 현대 복음주의 기독교의 변증가라 지위를 안겨주었다.
1825년 프로이센 정부의 도움으로 그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도서관을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1826년) 독일 합리주의의 중심지인 할레 대학교의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그 후 그곳에서 프로이센 복음주의 국가교회의 설교자이자 최고 구성 평의회 회원이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요한 살로모 셈러 (Johann Salomo Semler)의 학식과 어느 정도 합리주의를 A H 프랑케(A H Francke)의 독실하고 활동적인 경건주의와 더 높은 통일성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부분적으로는 강의를 통해 이것을 성취했지만,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1833년 이후에는 설교를 통해 이를 달성했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정통적이었지만, 엄격한 독단적 믿음보다는 기독교적 경험을 더 강조했다.
기적과 영감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대해 그는 현대 비평과 철학에 양보를 했다. 그의 평생의 투쟁은 합리주의, 정통 또는 성찬주의의 외부성에 반대하여 개인적인 종교적 경험을 위한 것이었다.
칼 슈바르츠 (Karl Schwarz)는 18세기 영국의 변증가들이 자신들이 반박하려고 노력한 이신론자의 독에 감염되었던 것처럼 Tholuck도 자신이 전복시키려고 했던 합리주의자들의 이단 중 일부를 흡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복음주의 연맹 (Evangelical Alliance)의 저명한 구성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유럽과 미국의 개신교 교회 전체에서 그보다 더 널리 알려지거나 사랑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할레에서 별세했다.
설교자로서 Tholuck은 그의 시대 최고의 인물 중 하나였다. 교사로서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주석 (로마서, 요한복음, 산상수훈, 히브리서)과 여러 권의 설교에 이어 가장 잘 알려진 책은 Stunden Christlicher Andacht (1839; 8th ed., 1870)이다.
그는 합리주의의 역사에 대한 귀중한 공헌을 여러 차례 출판했는데, Vorgeschichte des Rationalismus (1853 ~ 1862), Geschichte des Rationalismus (1865), 그리고 신학사, 특히 변증론과 관련된 수많은 에세이를 출판했다.
영감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의 저서 Die Propheten und ihre Weissagungen (1860), “Alte Inspirationslehre” 에 대한 에세이, Deutsche Zeitschrift für christliche Wissenschaft (1850), Gespräche über die vornehmsten Glaubensfragen der Zeit (1846)에 나타나 있다.
그는 또한 Herzog의 Realencyklopädie에 많은 기사를 기고했으며 몇 년 동안 Literarischer Anzeiger라는 저널 (1830 ~ 1849)을 편집했다.
1864년에 그는 미국 철학 학회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Tholuck은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필립 샤프 (Philip Schaff)는 “네안더 다음으로 미국의 개신교 교회에서 프레데릭 아우구스투스 톨루크 박사 (Dr. Frederick Augustus Tholuck) 보다 더 널리 알려진 현 세기의 독일 신성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설교와 저서도 영어로 번역되었다.
미국 학자들은 특히 그의 성경 주석에 관심을 가졌다.
Charles Hodge 및 Edward Robinson과 같은 몇몇 미국인은 Halle에서 Tholuck과 함께 연구했다.

○ 주요저서
Sufismus, sive theosophia Persarum pantheistica (1821)
이교의 본질과 도덕적 영향에 관한 그의 유명한 에세이 (1822)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Denkwürdigkeiten에서 출
Die Lehre von die Sünde und dem Versöhner (1823)
Die wahre Weihe des Zweiflers (1823)
commentaries on Romans (1824)
Blütensammlung aus der morgenlandischen Mystik (1825)
Speculative Trinitätslehre des späteren Orients (1826)
John (1827)
the Sermon on the Mount (1833)
Hebrews (1836)
Stunden Christlicher Andacht (1839; 8th ed., 1870)
Gespräche über die vornehmsten Glaubensfragen der Zeit (1846)
Deutsche Zeitschrift für christliche Wissenschaft (1850)
Vorgeschichte des Rationalismus (1853 ~ 1862)
Die Propheten und ihre Weissagungen (1860)
Geschichte des Rationalismus (1865)
the Psalms (1865)
a history of rationalism (1865)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