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8월 14일, 600년간 건축해 독일의 쾰른 대성당 (Cologne Cathedral) 완공
쾰른 대성당 (Cologne Cathedral, 독: Kölner Dom, 정식 명칭: Hohe Domkirche St. Peter)은 독일 쾰른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이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쾰른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라 쾰른 주교좌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쾰른 대교구의 교구장은 라이너 마리아 뵐키 추기경이다.

이 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로, 성 바실리 대성당에 이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쾰른 대성당을 일컬어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라고 묘사하였다.
매일 2만여 명의 관광객이 이 성당을 찾는다.
쾰른 대성당은 높이 157.38미터로, 울름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로마네스크·고딕 양식 성당이다.
신성 로마 제국 시절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가져온 동방 박사 3인의 유골함을 안치하기 위한 건축물로서 1248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지만, 오랜 건축 기간을 거쳐 결국 1880년에 네오 고딕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라인 강변 언덕 위에 지어졌으며, 대성당 주변에는 쾰른 중앙역과 호엔촐레른 철교, 루트비히 박물관, 로마 게르만 박물관 등이 있다.
○ 쾰른 대성당 (Cologne Cathedral) 유네스코 유산 등재
쾰른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80년에 완공하였다.
약 6세기 이상 건축이 진행된 이 건축물은, 여러 건축자들이 최초 설계에 대한 신념과 절대적인 충성으로 건축 작업에 임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고유의 특별한 가치와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간직한 걸작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유럽 기독교의 영속적인 힘을 증명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 유산 등재 정보
.영문명 : Cologne Cathedral
.국가 : 독일(Germany)
.위치 : 북부 라인베스트팔렌 주(Nordrhein-Westfalen)
.등재연도 : 1996년 (2008년)
.완충지역 : 258㏊
.참고번호 : 292bis
– 등재기준
기준 (ⅰ)(ⅱ)(ⅳ) : 6세기 이상에 걸쳐 건축된 이 기념물은 중세 시대와 근대 유럽의 기독교 신앙의 영속성을 입증하며, 인류의 창조적 재능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이다.
– 역사적 배경
로마 시대 쾰른 북동부 지역에 있던 기독교 신자들은 도시 외곽 근처의 한 개인 주택에 모여 예배를 드리곤 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313년 밀라노 칙령에 따라 이 건물은 성당으로 확장되었는데, 성당 건물 옆에는 안마당, 세례당과 주교 주택이 있었다. 이 소박한 건물들은 이후 여러 세기를 지나며 확장되고 확대되었다. 이곳에 최초로 거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건축하려고 구상한 사람은 샤를마뉴 대제의 친구이자 고문인 힐데볼트 (Hildebold) 대주교였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870년 9월에 대주교 빌리베르트가 봉헌하였으며, 이곳은 13세기에 ‘독일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자 군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굴과 현대 문서를 통해 쾰른 대성당의 형태와 장식에 대한 내용이 알려졌다.
이 건물은 95m 길이 (10세기 중반에 2개의 측면 통로가 추가되면서 로마 외부 지역 최초로 통로가 5개 있는 교회가 되었음)의 통로 2개로 구분되는 중앙의 네이브 (nave)과 서쪽 파사드 앞의 넓은 안마당이 있는 바실리카로 건축되었다.
11세기 초에는 아헨의 샤를마뉴 예배당 양식으로 지어진 2층으로 된 궁정 예배당이 남쪽 수랑에 추가되었고, 11세기 후반에 이 예배당은 2개의 높은 회랑 (回廊)을 통해 ‘계단의 성모 마리아 연합 교회 (Collegiate Church of St Mary ad Gradus)’에 연결되었다.
1164년에 밀라노에서 온 동방박사의 유물을 쾰른 대성당에 전시하자, 규모가 큰 성당인데도 순례자로 넘쳐나서 이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였다.
엥겔베르트 (Engelbert) 대주교는 이곳을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려 했으나, 그가 1225년에 살해되면서 지연되었고 결국 1248년에야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때 건축 의도는 기존 건물의 서쪽 수랑만 철거하고, 나머지 부분은 대주교 교회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주의한 철거로 화재가 발생해 건물 전체가 파괴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책임 건축자인 게르하르트 (Gerhard)의 감독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되었다.
쾰른 대성당의 외관만 보면 게르하르트가 프랑스의 훌륭한 대성당, 그중에서도 아미앵 대성당 (Amiens Cathedral)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미앵 대성당의 예술적 요소를 기술적 혁신 없이 통합한 것으로 볼 때, 그가 아미앵 대성당에서 실제 작업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게르하르트는 1260년경에 사망했고, 1299년까지 그의 조수 아르놀트의 책임 아래 건축 작업이 진행됐다.

건축 작업은 동쪽 끝부분에서 지속되었는데, 1310년경에는 채색된 창문이 설치되었다.
건축이 시작된 지 74년이 지난 1322년에는 이곳에 성당 사제단이 들어와 대제단을 성화할 수 있었다.
한편 책임 건축자 여러 명은 성당 서쪽 부분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1560년 사제단의 지시로 모든 작업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 무렵 건물의 서쪽 끝부분에 있는 높은 남쪽 탑의 주요 구조와 함께, 네이브 대부분과 4개의 측면 통로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설계를 바탕으로 완공되었다.
수많은 노력에도 쾰른 대성당은 여러 세기 동안 완공되지 못했고, 약간의 설비와 장식만 조금씩 추가되었다.
1794년에 프랑스가 쾰른을 장악하면서 대주교와 교구는 아헨으로 이전하였다.
성당 건물은 처음에 곡식과 사료의 저장고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교구 교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쾰른 대성당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이곳을 완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완공을 위한 건축 작업은 1815년 쾰른이 프로이센에 양도되면서 시작되었다.
1816년에는 쾰른 대성당을 방문한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Karl Friedrich Schinkel)이 재능 있는 제자 에르네스트 프리드리히 츠비르너 (Ernst Friedrich Zwirner)를 쾰른으로 보내 대성당을 건축하게 하였다.
그러나 재정 문제로 건축이 또다시 지연되었고, 1840년에 프러시아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 독립된 집단으로 여러 차례 복권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모은 ‘대성당의 친구들’이 공동으로 재정을 지원하면서 건축이 재개되었다.
결국 쾰른 대성당은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해 632년 2개월이 지난 1880년에야 완공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공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적어도 폭탄 14발을 맞아 건물 전체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복원과 복구 작업을 벌여 1948년에 있었던 100주년 행사 때는 성당 내부를 사용할 수 있었다.
건물의 나머지 부분은 1956년까지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 본문
6세기 이상에 걸쳐 건축된 쾰른 대성당은 고유의 특별한 가치를 지니며, 훌륭한 예술작품을 간직하고 있다.
중세 시대, 근대 유럽에서 기독교 신앙의 영향력과 영속성을 강력히 입증하는 이곳은 1248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그로부터 632년 2개월이 지난 1880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돌출된 수랑 (袖廊)과 파사드에는 탑 2개가 있으며, 통로가 5개 있는 하이 고딕 양식 바실리카에 해당한다.
이 건물은 완전히 통합된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1330년에 건축이 시작된 서쪽 구역에는 양식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건물 전체를 봤을 때는 이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19세기의 건축 작업은 중세의 형태와 기법을 충실히 따랐으며, 성가대석의 본래 예배 설비는 아직도 상당히 유지되어 있다.
이들 예배 설비는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석판 위에 세워진 대제단과 조각된 떡갈나무로 만든 성가대 좌석 (1308 ~ 1311), 채색된 성가대 칸막이 (1332 ~ 1340), 성가대석 기둥에 있는 14개 조소 작품 (1270 ~ 1290),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14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포함한다.
쾰른 대성당에는 976년부터 1612년 사이에 안치된 대주교 12명의 훌륭한 묘소가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