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3월 20일, 독일의 신학자 알브레히트 리츨 (Albrecht Ritschl, 1822 ~ 1889) 별세
알브레히트 리츨 (독: Albrecht Ritschl, 1822년 3월 25일 ~ 1889년 3월 20일)은 독일 개신교 (루터교) 신학자였다.

– 알브레히트 리츨 (Albrecht Ritschl)
.출생: 1822년 3월 25일, 프로이센 베를린
.사망: 1889년 3월 20일 (66세), 독일 괴팅엔
.성별: 남성
.국적: 독일
.학력: Eberhard Karls University of Tübingen, Martin-Luther-University Halle-Wittenberg
.배우자: Ida Rehbeck
.자녀: Otto Ritschl
.주요저서 《경건파의 역사》 (3권, 1880∼1886)
.영향받음: Friedrich Schleiermacher, Immanuel Kant, Hermann Lotze
.영향줌: Wilhelm Herrmann, Albrecht Dieterich, Shirley Jackson Case
성서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현대 지식의 여러 측면들과 종합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종교적·윤리적 의미를 보여주었다.
그의 학문연구의 결과들 대부분은 3권으로 출판된 그의 대표적인 책 〈의인 (義認)과 화해 (和解)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리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 (1870 ~ 74)에 실려 있다.

○ 생애 및 활동
알브레히트 리츨 (Albrecht Ritschl)은 1822년 3월 25일, 프로이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루터교 성직자였으며 리츨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평생 관심을 쏟은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가문 배경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교 신학수업을 좋은 성적으로 마쳤고, 지적인 면과 기질적인 면에서 그리고 그가 받은 교육에 힘입어 학자의 소양을 잘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책임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겸손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본대학 (1839~41)과 할레대학 (1841~43)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중에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신학 입장에서 점차 자유주의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으로는 G. W. F. 헤겔의 철학이 리츨 세대에 끼친 영향 때문에 촉진되었다.
리츨은 학생시절에 고전신학 과목들을 공부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대한 교리, 보다 구체적으로는 속죄론 (그리스도가 사람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교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본대학의 강사 ·교수를 거쳐 1859년 본대학 정교수가 되고, 1864년 괴팅겐대학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바울이 지도하는 튀빙겐학파에 속하여 교회사가 (敎會史家)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거기서 이탈하여 주저 《의인 (義認)과 속죄 (贖罪):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 (3권, 1870 ∼ 1874)를 발표한 이후로는 조직신학으로서 독자적 신학사상을 전개, 많은 추종자를 모아 리츨학파를 형성하였다.
리츨학파에 속한 사람으로는 W.헤르만, J.카프탄, A.하르나크 등이 있었다.
1852년부터 리츨은 “조직신학”에 관해 강의했다. 그에 따르면 신앙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서 다른 경험과 바꿀 수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는 신앙은 사실에 오지 않고 가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신성은 그를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의 “계시적 가치”를 표현할 때 가장 잘 이해된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공동체에 헌신되어야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의 특색은 신학으로부터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종교적 인식을 이론적 인식과 다른 가치판단으로서 특징지었으며, 경건주의 · 신비주의를 비판하고 그리스도에서의 역사적 계시를 강조하였던 점, 특히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실현시키는 데 그리스도교의 사명이 있다고 강조하여 하나의 윤리적 또는 문화적 그리스도교를 제창한 점에 있다.
주요저서에 《경건파의 역사:Die Geschichte des Pietismus》 (3권, 1880∼1886), 〈의인 (義認)과 화해 (和解)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리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1870~74) 등이 있다.
알브레히트 리츨 (Albrecht Ritschl)은 1889년 3월 20일, 독일 괴팅엔에서 별세했다. 향년 66세.

○ 저서
주요저서에 《경건파의 역사:Die Geschichte des Pietismus》 (3권, 1880∼1886), 〈의인 (義認)과 화해 (和解)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리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1870~74) 등이 있다.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and Reconciliation. Edinburgh: T & T Clark, 1900에서 리츨은 루터교와 칼뱅주의간의 차이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이 율법에 대한 관계에 대한 이해가 다름을 조사하였다. 칼빈주의가 루터교의 ‘속성간의 교류’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차이를 지적하였다.
- 주요저작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 Bonn: Marcus, 1882.
Geschichte des Pietismus in der reformierten Kirche. Vol. 1 of the Geschichte des Pietismus. Bonn: Marcus, 1880.
Geschichte des Pietismus in der lutherischen Kirche des 17. u. 18. Jahrhunderts. Vol. 2 and Vol. 3 of the Geschichte des Pietismus. Bonn: Marcus, 1884 /1886.
Die Entstehung der altkatholischen Kirche: eine kirchen- und dogmengeschichtliche Monographie. 2nd ed. Bonn: Marcus, 1857.
Gesammelte Aufsätze. Freiburg: Mohr, 1896.

○ 알브레히트 리츨 (Albrecht Ritschl)
서론
알브레히트 리츨은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로서, 흔히 자유주의 신학의 왕자로 불린다.
그는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칸트의 사상에 근거하여 기독교를 삶의 실천적인 이상으로 해석했다.
19세기 후반기의 프로테스탄트 신학 사상에 접근하려면, 첫 번째로 이해해야 할 사상가가 리츨이다.
그러나 1920년부터 1960년에 이르는 수십 년 동안 리츨은 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신학을 주도했던 신정통주의 신학의 영향 때문이었다.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표자들인 바르트와 브룬너는 리츨이 고전적 기독교를 완전히 이탈했다고 비판했다.
리츨은 당시 기독교가 성서적이며 종교 개혁적인 모습을 상실하고 다른 형태로 변형되었음을 지적하고 칸트와 슐라이에르마허의 사상 체계에 근거하여 종교 개혁적인 기독교를 회복하려고 했다.
그의 신학의 특징은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Ⅰ. 생애와 저작
리츨은 1822년 독일 베를린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39-1846년 까지 본, 할레, 하이델베르그, 튀빙겐 대학에서 공부했다. 리츨은 처음에 교의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으며 그 후 그의 관심은 교회사를 거쳐 신약 성서로 이동했다. 리츨은 평생을 대학 교수로 활동한 강단 신학자였다. 리츨은 교수 활동을 통해 당시 독일 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제자들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하이델베르그 대학을 제외한 전 독일의 신학 교수직을 차지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바이스, 하르낙, 헤르만, 트뢸취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기념비적인 두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하나는 『칭의와 화해의 그리스도교적 교리』로 종교 개혁자 루터가 진술한 칭의와 화해의 교리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포괄적으로 해석한 책이고, 두 번째는 『경건주의의 역사』로 경건주의가 윤리적 기독교의 본질을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전주의를 기독교 생활에 이질적인 로마 가톨릭 개념이 독일 개신교 안에 주입되어 일어난 잘못된 부흥 운동으로 간주했다. 리츨은 이 두 저서를 통해 당대 제일의 프로테스탄트 조직 신학자라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Ⅱ. 사상적 배경
- 칸트와 리츨
리츨은 계몽주의를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고 오히려 계몽주의의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철학을 철저히 수용했다. 그는 계몽주의의 철학자 칸트에게로 되돌아 갔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순수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 영혼 불멸, 자유와 같은 현상계를 초월한 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그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순수이성으로 신에 대해서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했다.
또한 칸트는 『실천 이성 비판』에서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도덕적 의무를 의식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도덕적 의무를 하도록 명령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순수 이성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고 실천이성에서 증명되는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고 실천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있어서 종교는 곧 도덕이다. 칸트는 이상적 도덕을 최고선이라고 말했다. 최고선의 두 요소는 덕과 행복이다. 이에 근거하여 최고선을 최상선과 완전선으로 나누었다. 최상선은 인간의 의지와 도덕 법칙이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 곧 거룩이다. 거룩 혹은 덕이 최상선이기는 하나 완전선은 아니다. 착한 사람은 착한 만큼 행복해야 된다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선은 덕과 행복이 일치하는 경지, 즉 덕에 비례한 행복을 의미한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최상선을 성취하는 것이 의무이다. 그러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은 단지 그것에 접근할 수 있지만 도달하지는 못한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조건이 영혼불멸이다. 그러나 영혼불멸이 최상선을 성취하게 하나 완전선을 성취하지는 못한다. 행복은 덕과 전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연 세계에 속하는 반면 덕은 도덕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두 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덕에 비례한 행복, 즉 완전선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가? 자연 세계와 도덕 세계가 분리되어 있으나 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즉 동일한 존재자가 도덕 법칙과 자연 세계의 저자라면 가능하다. 따라서 도덕과 행복을 일치시켜 주는 매개자로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요청하게 된다. 이와 같이 칸트에게서는 도덕의 이상적 상태인 최고선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 영혼 불멸과 하나님의 존재이다.
칸트의 사상은 특히 두 가지 면에서 리츨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이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종교적 사상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며 도덕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여 기독교의 의미를 해석한 점이다. 리츨이 기독교를 규정할 때 형이상학적 성격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츨은 기독교를 하나님의 나라를 창건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위에 세워진 영적 윤리적 종교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는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이 아니라,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이다. 영적 중심과 도덕적 중심이 그것이다.
-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
칸트와 더불어 리츨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슐라이에르마허였다. 리츨은 슐라이에르마허 이상으로 형이상학을 반대했다. 생각만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그는 신학과 철학을 철저히 구분했다. 하나님을 생각만으로 인식하는 것은 철학이지 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은 생각만으로 인식할 수 없고 우리의 종교적 감정에서 인식한다고 하였다. 또한 리츨은 기독교를 가장 순수하고 가장 발전된 종교 형태로 간주한 슐라이에르마허의 입장을 수용했다. 우상숭배나 물신 숭배는 가장 낮은 단계인 동물적인 의식에 속하며, 다신교는 그 다음 단계인 감각적 의식에 속하고 유일신 종교만이 최고 단계인 종교적 의식에 속한다. 그는 ‘기독교는 유일신론적 신앙이며, 종교의 목적론적 유형에 속하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취된 구속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다른 신앙으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리츨은 하나님 자체를 지각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인식론을 거부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실재를 그 활동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츨은 만년에 슐라이에르마허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슐라이에르마허가 신학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감정으로 경험한 것에 대한 기술이라고 한 것에 대해 이것은 기독교의 도덕적인 면을 축소하며 자비와 용서의 진정한 평가를 배제하는 것이라 하였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이 기독교인의 의식으로부터 출발한 데 비해, 리츨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복음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 즉 신약 성서에서 진술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계시에 기초하여 자신의 신학을 전개했다.

- 신학적 과제
리츨은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서적이며 종교 개혁적인 모습을 상실하고 다른 형태로 변형되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종교개혁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는 것을 평생 과제로 삼았다.
첫째, 리츨은 신학에서 사변적인 합리주의를 축출하려 했다. 사변적 합리주의는 신학의 진정한 기반을 이론적 형이상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확립된 철학 개념의 체계 속에 복음을 집어 넣으려는 것이다. 헤겔과 그의 추종자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헤겔주의자들은 신학은 철학적 개념과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리츨은 오히려 신학에서 형이상학을 제거하려 했다. 먼저 신앙이 존재하고, 형이상학은 후에 그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채용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리츨에 따르면,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견해가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이념의 영역을 훨씬 초월해 있다.
둘째, 리츨은 신학에서 주관주의를 배제하려고 했다. 주관주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경험을 신학의 토대와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입장이다. 역사에 무관심한 것이 주관주의 특징이자 약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슐라이에르마허이다. 그는 신학을 종교적 감정에 대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츨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 성서의 계시를 토대로 신학을 삼았다.
셋째, 리츨은 신학으로부터 신비주의와 경건주의를 제거하려고 했다. 신비주의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열망하고 그것을 종교의 본질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일의 경지는 중보자 없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비주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간의 영혼은 교회와 세계로부터의 격리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둘째, 하나님과 사귀는 최고의 형태는 신약 성서의 메시지를 수락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셋째,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태도는 믿음보다 사랑이다. 리츨은 이러한 신비주의는 도덕적 요구를 포기하고 기독교는 단지 초월하는 데 이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신비주의자가 합일의 대상으로 삼는 보편적인 존재는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리츨은 경건주의에 대해서도 맹렬히 반대했다. 그는 경건주의를 중세 수도원주의로 복귀, 즉 복음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가톨릭 교회적인 생활을 가지고 일어난 잘못된 부흥 운동으로 간주했다. 그것은 세상을 부정하는 것을 삶의 이상으로 삼았으며, 이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이상으로 삼는 신비주의와 일치한다. 따라서 리츨은 경건주의 역시 신학에서 제거하려 했다.
넷째, 리츨은 정통주의, 특히 루터교 주의를 반대했다. 대부분 그의 논쟁은 정통주의자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났다. 정통주의는 형이상학적인 절대자의 개념을 신학에 도입했다. 하나님은 절대자라기 보다 사랑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Ⅲ. 기독교의 본질과 하나님의 나라
- 기독교의 본질
슐라이에르마허가 기독교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 경험이라고 말한 것에 반해 리츨은 기독교를 하나님의 나라를 창건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위에 세워진 윤리적인 종교라고 정의했다. 기독교는 종교적인 신앙과 윤리학이라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하나의 초점(중심)을 지닌 원이 아니라 두 개의 초점을 지닌 타원과 같다. 하나의 초점은 예수이다. 이것은 종교적 중심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라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 또 하나의 초점은 예수가 창건한 영적이며 윤리적인 공동체이다. 이것은 도덕적 중심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이 공동체는 곧 교회이기도 하다. 그 목표는 인간 사회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리츨은 종교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서로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양자는 구분될 수는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으며, 상호 작용하고 있으나 완전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두 초점 중 어느 하나로 축소될 수 없다. 종교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은 기독교의 양극을 구성한다. 그 안에서 한 극은 다른 극이 생기게 하며 그것으로 인도된다. 양자는 서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은 통일성 속에 있는 이중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 하나님 나라
리츨이 후대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하나님 나라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를 종말론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윤리적인 것으로 이해한 것이 그 견해의 특징이었다. 리츨은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적으로 예수의 인격에 토대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그 나라의 창건자이며, 그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룩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창건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확산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목표요 임무다. 인간 사회 전체를 하나님 나라로 전환시키는 것이 그 최종 목표다. 이와 같이 리츨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과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간주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이 하나님이 인간과 화목을 이루는 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서 서로 일치한다.
Ⅳ. 칭의와 화해론 논쟁
리츨은 주저 『칭의와 화해』에서 종교 개혁자들이 성서적인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들을 회복하고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노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리츨은 먼저 루터의 신학을 비판한다. 루터는 칭의를 인간 삶의 이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칭의를 죄의 세력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스스로 죄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칭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위이다. 인간은 칭의에 의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며 죄나 죄책감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그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한다. 이에 비해 리츨은 칭의의 교리를 법률적인 면에서 이해하기보다 윤리적인 면에서 이해했다. 하나님은 의인을 의롭다 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 했다. 하나님은 입법자와 심판자가 아니라 아버지로 표상된다. 칭의를 통해 하나님은 신자를 자녀로 대하고, 신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는 새로운 신뢰 관계에 들어가게 되며, 이로써 죄인이 가지는 공포, 불신, 소외, 죄책에 대한 의식을 극복하게 되는데 이것을 화해로 보았다. 화해는 칭의의 결과이다. 리츨은 화해를 하나님의 행위라기 보다 인간의 경험으로 규정했다. 리츨은 개인적인 구원을 칭의로 본 반면, 인간의 도덕적 노력을 화해로 보았다. 칭의와 화해는 구별될 수가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리츨은 칭의가 먼저 이루어지며 그 결과가 화해라고 설명했다. 칭의가 화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가 칭의에 의존한다. 리츨은 이 양 개념을 통합하는 것을 자신의 신학적 목적으로 삼았다. 리츨은 칭의를 통해 구원을 받은 개인은 자신의 세속적인 직업에서 충성스럽게 활동하는 것과 이웃에 대한 덕을 발전시키는 데 노력한다. 이것은 칭의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지는 화해이다. 그러므로 칭의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위라면 화해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행위이다. 화해를 통해 새로운 윤리적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해된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 알브레히트 리츨 (Albrecht Ritschl) – 개신교 자유주의의 입안자
- 배 경
프레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개신교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졌지만 그의 후계자인 알브레히트 리츨은 그와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실제로 구성하고 수립한 사람이다. 슐라이어마허가 계몽사조의 빛에 비추어서 개신교를 위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개척한 곳에 리츨은 그 새로운 사고방식을 도입하여 그것에 보다 특이한 형태와 내용을 부여하였다. 사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고전적인 개신교 자유신학은 ‘리츨주의(Ritschlianisms)’라고 까지 일려졌다.
알브레히트 리츨은 1822년 루터교의 목사요 감독의 아들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튜빙겐, 할레, 본 대학등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후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1864년 그는 괴팅겐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가 되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1889년까지 그곳에서 교수로 봉직하였다.
- 업 적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는 3권으로 된 <칭의와 화해에 대한 기독교 교리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and Reconciliation, 1870-74)가 있다. 리츨의 신학적 방법론의 중심은 신학적 진술 또는 ‘판단’ (그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은 사실의 진술 (예를 들어 과학적인 진술같은 것) 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도리어 가치의 진술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의 진술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인격적인 또는 도덕적인 헌신 (책무)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에 도덕적인 진술은 객관적인 확인을 넘어서는 것으로 인격적 그리고 도덕적인 책무 (헌신)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리츨에게 있어서 과학적 지식은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것 뿐이다. 거기에 비해 종교적인 지식은 언제나 사물들이 그렇게 존재해야만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일수 있다. 이것의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현대과학에 의해 부적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과학적 위협들로부터 종교-좀 더 구체적으로는 기독교-를 보호했다는 것이다. 과학은 오직 자연과 물리의 영역만을 다룬다; 종교나 신학은 윤리와 도덕의 영역만을 다룬다. 그러므로 충돌의 가능성은 없다. 리츨에 의하면 기독교의 중심은 이러한 일련의 확실한 가치 진술로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들이다.
이 방법론이 시사하는 것은 존재하는 하나님-하나님에 관한 사실들-은 신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신학은 하나님을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면에서-인간 경험에서의 그의 가치-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하는데 있어서 슐라이어마허의 족적을 따라서 하나님 중심의 신학보다는 인간 중심의 신학을 수행하였다. 예를 들면 리츨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분명하게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신학적인 지식 저편에 있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의 속성 (즉 전지전능, 무소불능, 주권)은 하나님의 사랑이-리츨의 전망에서는 하나님에 관한 기본적인 확인- 있는 곳에 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그 영향으로 알 수 있 을뿐이다.
리츨 신학의 또 다른 중요한 강조점은 하나님 나라에서부터 흘러 나온다.그가 이해한바로는 이것은 사랑과 도덕성에 의해 결합된 모든 인간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최고의 가치이다. 기독교는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이상이 살아 있고 증진되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가장 잘 예시해 보여 주어야 한다. 크리스천의 삶은 기본적으로 선한 생활을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함으로서 “황금율”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이 이러한 가치 진술에 의해서 살때 하나님 나라는 지상에서 더 널리 수립된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어떤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것들을 제거해 버리고 오직 도덕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되게 한다. 기독교는 “장래의 더욱 달콤한”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종교다. 크리스천들의 최고의 선은 미래 천국에서의 사후 삶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진시카는 것이다.
리츨의 이러한 주장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교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신성’-그는 ‘하나님’이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치의 선언을 통해서지 사실의 선언을 통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예수는 사실로는 하나님이 아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리어 예수는 지상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완전하게 살았던 인간에 불과하다.리츨은 이것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소명이라고 이야기하였으며 예수는 그것을 완전하게 성취하였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 속 이외에는-그의 탄생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분명히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는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지만 중요한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예수는 오늘도 살아 계신다”고 하는 말의 뜻은 그의 가르침이 오늘날 까지도 그 영향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리츨에 의하면 예수는 하나님/인간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들이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수립하기 위하여 따라야만 할 교훈과 모델을 제공한 오직 선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정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리츨의 예수는 … 무언가 진액에다가 물을 많이 타서 맛이 빠진 것 같다.”
죄는 어떤가? 리츨에 의하면 죄는 최고의 선인 하나님 나라에 반대되는 어떤것이다. 죄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 반대되는 이기심이다. 그는 죄는 원죄나 상속된 죄의 속성을 가졌다는 그 개념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진 자기 중심적인 경향성 때문에 편만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죄의 편만성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을 통해서만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개념은 리츨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죄의 대가로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은 분이라는 뜻의 구세주는 아니다. 도리어 예수는 하나님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소명’-하나님의 왕국을 구현하고 귀감이 되라는-을 완벽하게 성취함으로 구원을 이루었으며 그것은 세계 변화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리츨의 3권짜리 저서의 책이름이 시사하는대로 칭의와 화해는 기독교 교리의 중심이다. 칭의는 예수의 예를 따르려고 죄인들이 작정할 때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화해는 용서받은 죄인들이 하나님 왕국의 이상-사랑과 연합-을 이루려고 부름받은 것이다.

- 결 론
알브레흐트 리츨은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자유주의 신학자로 간주되었다. 그의 영향은 독일 대학교들에서 교육 받은 거의 모든 세대의 개신교 목회자들과 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 목회자들과 학자들을 통해서 개신교 자유주의는 미국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의 하나님 왕국의 신학은 미국에서는 기독교의 과제가 단순한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정의, 조적, 사랑을 통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소위 ‘사회 복음’이라고 알려진 것을 고무하였다
리츨은 슈라이어마허가 시작한 것을 계속하였는데 이들 두 사람들의 신학에서는 고전적인 개신교 자유신학의 특징이 된 몇 몇 테마들을 볼 수 있다.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기독교가 현대에 적절한 종교가 되게 하려고 계몽사조의 사고방식을 채택하였다. 예를 들면 과학적인 사고의 틀은 이 세상에서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빼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처녀는 애기를 낳을 수 없다거나 죽은 사람은 무덤어서 살아오지 않는다는 것 등). 이것은 또한 고전적인 권위의 원천들 특히 성경을 초자연적인것, 신의 계시, 그리고 성경의 영감설과 무오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 (하나의 본질에 세개의 인격이라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2중성 (하나의 인격에 두 개의 본성을 가진)과 같은 다양한 정통교리를 이해하는 원천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이러한 교리들은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단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이장과 지난 장에서 이미 본대로 그들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deity)과 성서의 ‘영감 (inspiration’과 같은) 그 용어애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외에도 그들은 수많은 고대 종교들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사라져 버릴것을 걱정하였다.
둘째로 하나님은 주로 개인들의 하나님 경험과 이 세상에서의 그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이해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하나님은 인간에서 시작되었으며 (human-oriented), 자유주의 신학의 예수는 우리 인간들에게 이상적인 롤 모델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인간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는 이곳 지상에서 모든 인간들이 유토피아처럼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역과 다를 것이 없고 (하나님은 창조자, 인간은 피조물) 도리어 하나님과 인간은 같은 카테고리에 있지만 같은 카테고리에서 다른 레벨에 있을뿐이다.
셋째로 기독교의 본질은 도덕성이다. 예수는 도덕적 삶의 위대한 실례로 본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며 사랑과 존경으로 서로 대하는 것이다.구원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황금율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보편주의로 결국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죄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죄에 분노하거나 심판의 의도에 화내는 분으로 보지 않는다. 도리어 하나님은 결국에는 자녀들 모두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사랑의 아버지시다.
“릿츨사상”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신학을 지배하였지만 자유주의 사상을 따르지 않았던 정통주의 신학자들-“근본주의”로 알려진 운동-과 자유주의 자체안에서 약점과 잘못된 점들을 발견한 자들-이들은 “신 정통주의”로 알려졌다- 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이들 운동의 대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기대하건대 리차드 니버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고전으로 인용되고 있다. “분노가 없는 하나님은 죄 없는 인간들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심판 없는 왕국으로 데려 왔다” _ The 40 Most Influential Christians by Daryl Aaron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