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1월 25일, 미국의 기자 넬리 블라이 (Nellie Bly, 1864 ~ 1922)가 72일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뉴욕 도착
1890년 1월 25일, 미국의 기자 넬리 블라이 (Nellie Bly, 1864년 5월 5일 ~ 1922년 1월 27일)가 72일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뉴욕 도착했다. 넬리 블라이 (1864 ~ 1922)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 작가이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코크런 (Elizabeth Jane Cochran)이며, 넬리 블라이 (Nellie Bly)란 이름은 필명이다. 그녀는 세계일주로 유명하다.
– 넬리 블라이 (Nellie Bly)
.본명: 엘리자베스 코크런 (Elizabeth Jane Cochran)
.출생: 1864년 5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코크란 밀스
.사망: 1922년 1월 27일, 미국 뉴욕 뉴욕
.국적: 미국
.직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부모: 메리 제인 코크란, 마이클 코크란
.배우자: 로버트 시먼 (1895년–1904년)
.수상: National Women’s Hall of Fame (1998년)
.형제자매: 존 마이클 코크란, 안젤린 K 코크란 맥키, 로버트 스콧 코크란, 찰스 코크란 등
넬리 블라이는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을 읽고 새로운 기삿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1889년 11월 14일에 뉴욕을 떠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수에즈 운하를 거쳐 스리랑카의 콜롬보, 홍콩, 페낭 반도, 일본을 거쳐 다음 해 1월 25일에 돌아와 72일 6시간 7분 14초만에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넬리 블라이는 유명인이 되었다.
넬리 블라이는 1864년 5월 5일 펜실베이니아 주 암스트롱 카운티의 코크랜 농장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그녀가 저널리스트가 된 계기는 1880년 피츠버그에서 발행되던 <피츠버그 디스패치> 지의 성차별 성향의 칼럼을 반박하는 글을 쓰면서부터이다. 저널리스트가 된 그녀는 기획 취재에, 특히 탐사 보도에 온 힘을 다했다.
그녀는 1887년, 뉴욕 월드에 기자로 들어가 같은 해, 조지프 퓰리처가 보도한 블렉월 섬의 정신병원에서의 환자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대한 기삿거리의 취재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정부가 블렉웰 섬의 상황을 개선하고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889년에 세계일주로 유명인이 되었으며,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1922년 1월 27일에 사망하였다.
○ 생애 및 활동
넬리 블라이 (Nellie Bly, 1864 ~ 1922)는 엘리자베스 코크레인 (Elizabeth Cochrane)이 본명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아주 어릴 때 판사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1885년,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여성에게 어울리는 공간은 가정뿐이라는 식의 기사가 실린 것을 보고 항의 편지를 보낸다.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것은 국력의 낭비임을 깨우치는 글이었다. 이를 본 편집장이, 자기네 기사에 대한 비판임에도 그 글에 담긴 명민함과 재능을 알아보고 기자로서 글을 써 보라고 제안한다. 글쓴이가 여자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한 제안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기자로 채용됐으며, 작곡가 포스터의 곡에서 따온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까지 얻었다.
1887년에는 언론인의 대명사 퓰리처가 운영하던 뉴욕 ‘월드’로 자리를 옮겼다. 취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가 된 넬리 블라이는, 환자를 학대하는 정신병원을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환자로 위장하고 열흘간 입원하기까지 했다.
1889년에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주인공보다 빠른 72일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퓰리처가 그녀의 여행에 걸리는 시간을 가장 가깝게 맞히면 유럽 여행의 기회를 주겠다며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 미국 전역에서 100만 통이 넘는 응모 편지가 쏟아졌다.
또 프랑스에서는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 판매가 시들하던 쥘 베른의 소설이 넬리 블라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시 폭발적으로 팔렸다.
서른 살에 70대의 백만장자와 결혼해 입방아에 오르고 한때 사업가로서 활동하다가 취재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가장 빛난 순간은, 인권을 유린하는 교도소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 뇌물을 받은 유력 정치인 등을 고발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기사를 쓸 때였다.
직설적이면서도 유머가 있는 문장으로 독자에게 사랑받고 뉴욕 ‘월드’의 전성기에 간판 기자로서 자리 잡은 그녀는, 남성만의 세계이던 언론계에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후배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그녀는 계속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1922년 1월 마지막 칼럼을 쓰고 남은 재산은 고아들을 돌보는 데 쓰게 한 뒤 1월 27일 57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 평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한 미국 기자. 본명은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이고 1864년 5월 5일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판사였지만 넬리 블라이가 6세 때 사망했다. 이후 유복한 삶과 멀어져 교사가 되려는 꿈을 접어야 했다.
20세에 지역 일간지에 실린 여성 혐오 칼럼을 읽고 보낸 반박문이 신문사 편집장의 눈에 띄어 기자로 채용된다. 23세에 뉴욕 시로 옮겨 환자 학대로 악명 높은 정신병원에 10일간 잠입 취재를 한 뒤 끔찍한 실태를 폭로했다. 이 특종 보도로 정신질환자 복지 예산이 대폭 증액되었고, 넬리 블라이는 퓰리처가 운영하는 〈뉴욕월드〉의 정식 기자가 된다.
25세에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 일주에 나섰고, 4만 5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72일 만에 완주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여자 기자가 주로 패션이나 요리 같은 한정된 분야의 기사를 쓰던 시절에 이룬 성취여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녀의 이름을 딴 상품과 호텔 등이 생겨날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30세에는 사업가와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뒤 남편이 죽자 직원 1500명에 달하는 철강 회사를 운영하면서 강철 배럴통을 개발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50세의 나이로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동부전선의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55세에 미국으로 귀국해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대모 역할을 자처하며 입양을 주선하는 등 사회사업을 했다. 1922년 1월 마지막 칼럼을 쓰고 남은 재산은 고아들을 돌보는 데 쓰게 한 뒤 57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 저서
주요저작으로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 등이 있다.
- Works
Within her lifetime, Nellie Bly published three non-fiction books (essentially compilations of her newspaper reportage) and one novel in book form.
Bly, Nellie (1887).
Ten Days in a Mad-House. New York: Ian L. Munro.Bly, Nellie (1888).
Six Months in Mexico. New York: American Publishers Corporation.Bly, Nellie (1889).
The Mystery of Central Park. New York.Bly, Nellie (1890).
Nellie Bly’s Book: Around the World in Seventy-two Days. New York: The Pictorial Weeklies Company.
Between 1889 and 1895 Nellie Bly also penned eleven novels for The New York Family Story Paper. Thought lost, these novels were not collected in book form until their re-discovery in 2021.
Eva The Adventuress (1889)
New York By Night (1890)
Alta Lynn, M.D. (1891)
Wayne’s Faithful Sweetheart (1891)
Little Luckie, or Playing For Hearts (1892)
Dolly The Coquette (1892)
In Love With A Stranger, or Through Fire And Water To Win Him (1893)
The Love Of Three Girls (1893)
Little Penny, Child Of The Streets (1893)
Pretty Merribelle (1894)
Twins & Rivals (1895)
○ 넬리 블라이에게 동기부여한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
넬리 블라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 (80日間의 世界 一周,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73년에 쓴 고전 과학, 모험 소설이다.
– 저자 ‘쥘 베른’ (Jules Verne)
저자 쥘 베른 (Jules Verne, 1828년 2월 8일 ~ 1905년 3월 24일)은 프랑스의 과학 소설 분야를 개척한 작가이다. 그는 ‘지구 속 여행’ (1864), ‘해저 2만리’ (1870), ‘80일간의 세계 일주’ (1873) 등과 같은 소설로 유명하다. 베른은 이미 비행기나 잠수함, 우주선이 만들어지고 상용화되기 전에 우주, 하늘, 해저 여행에 대한 글을 썼다. ‘Index Translationum’에 의하면, 그의 작품은 개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 그의 몇몇 작품은 영화화되었다. 베른은 휴고 건스백, H.G.웰즈와 함께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 ‘80일간의 세계 일주’ 줄거리
.내기
때는 1872년, 영국 런던에서 사는 필리어스 포그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계획적인 생활을 지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치과에 가서 항상 같은 자리에서 점심밥을 먹고, 이상한 곳을 치료한 뒤에 다시 같은 자리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에, 밤 12시까지 카드놀이를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다. 심지어 그는 면도할 물의 온도가 평소와 1도만 달라도 하인을 해고할 정도로 정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클럽 사람들과 내기를 하고는, 새로 들어온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느닷없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난다. 신문에서 인도에 전 구간 철도가 개통되어서 80일이면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 포그가 세계를 정확히 80일 만에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한 것이다. 그래서 포그는 전 재산의 절반인 2만 파운드를 내기에 걸고, 나머지 절반인 2만 파운드를 여행 경비로 하여 떠난다.
포그가 계획한 세계 일주는 영국의 런던을 출발하여 프랑스의 파리, 이집트의 수에즈, 예멘의 아덴, 인도의 뭄바이와 콜카타를 거치고,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의 요코하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영국의 리버풀을 지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긴 여행 포그는 이 긴 여행에서 그들이 사용할 모든 교통수단의 출발과 도착 시각을 기록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가장 짧은 시간을 계산해 두었다. 80일이라는 것도 이 계산의 결과이다.
.여행
인도 여행: 하지만 그들의 여행에는 초기부터 뜻밖의 요소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맨 먼저 나타난 뜻밖의 변수는 포그를 은행 절도범으로 오해한 픽스 형사이다. 픽스는 수에즈에서부터 포그 일행에게 접근하여 여행의 거의 전 구간을 함께 다니게 된다. 그는 파스파르투에게 아편 을 피우게 하여 요코하마로 가는 배를 놓치게 하기도 하고, 포그를 절도범으로 체포하여 리버풀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게 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일어난 뜻밖의 사태는 인도 횡단 철도가 아직 완공 전이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 여행의 발단이 되었던 신문 기사는 잘못 보도되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현지 안내인이 모는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지나게 된 포그 일행은 남편이었던 늙은 추장의 장례에서 산 채로 함께 화장을 당하게 된 여인 아우다를 구해 준다. 그리고 그녀는 위험한 인도 땅을 벗어나기 위해 포그 일행을 따라가게 된다.
미국 여행: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미국횡단 중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정부의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저항하기 위해 기차를 습격해서 파스파르투가 잡혀 간다. 포그가 기병대와 함께 파스파르투를 구출하지만, 그 사이에 기차가 떠나 버렸기 때문에 돛 달린 썰매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또 그들은 리버풀로 가는 배를 놓쳐서 화물선에 타고, 화물선 선장을 감금하고 행선지를 바꾸었으며, 배를 통째로 사서 나무로 된 부분을 모두 석탄 대신 때면서 겨우 아일랜드의 항구인 퀸스타운에 도착한다.
.영국 도착
이런 우여곡절 끝에 리버풀에 도착하지만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 할 때 픽스 형사가 포그를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한다. 잠시 후 진범 은행강도가 3일 전에 이미 잡힌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결국 포그가 풀려나지만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런던에 5분 늦게 도착한다. 포그는 이것으로 모든 전 재산을 거의 다 잃게 되었다.
한편 아우다는 포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하고 포그와 아우다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파스파르투가 목사에게 포그와 아우다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갔을 때, 목사는 다음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주례를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파스파르투는 자신들이 동쪽으로 날짜 변경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하루를 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포그는 약속 시간을 3초 남겨 놓고 겨우 리폼 클럽으로 돌아간다. 그는 80일간의 세계 일주 덕분에 은행에 있던 재산과 여행 경비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게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