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6월 28일, 영국의 정치학자•역사가 E. H. 카 / 에드워드 핼릿 “테드” 카 (Edward Hallett Ted Carr, 1892 ~ 1982) 출생
에드워드 핼릿 “테드” 카 (Edward Hallett Ted Carr, CBE, 1892년 6월 28일 ~ 1982년 11월 3일)는 영국의 정치학자·역사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16년부터 20년간 외교관으로 활약하였다. 1936년 웨일스 대학교 교수로서 국제 정치학을 강의하다가 1947년에 물러났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는 ‘타임스’지 부편집인을 지냈다. 그 후 국제 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의 기초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저서로 ’20년의 위기’, ‘역사란 무엇인가’, ‘평화의 조건’, ‘러시아 혁명사’ 등이 있다. 또, 에드워드 카는 혁명적인 역사 진보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그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1920년 CBE훈장을 받았다.

– 에드워드 핼릿 카 (Edward Hallett Carr).
.출생: 1892년 6월 28일, 잉글랜드 런던
.사망: 1982년 11월 3일 (90세), 잉글랜드 런던
.직업: 역사가 · 외교관 · 국제 관계 이론가 · 저널리스트
.국적: 영국
.모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활동기간: 1916 ~ 1982년
.장르: 역사학 저술
.주요저서: 소비예트 러시아의 역사, 위기의 20년 : 19191939, 역사란 무엇인가 등
그의 저작 ’20년간의 위기’는 양차대전 사이의 1919~ 39년 사이 전쟁의 원인을 분석한 글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가진자들의 기득권을 위한 허상에 불과한 이상주의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실제로 정치를 더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는 또한 현실주의의 지나친 비관성과 권력정치 정당화에 대해 비판하는데 그로인해 그는 양비론자 또는 절충론자로 불린다. 그는 이론의 변증법적 통합을 주장했지만 엄연히 현실주의의 기본 전제를 인정하는 입장을 보임으로 현실주의자라 불린다.

○ 생애 및 활동
E. H. 카 (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1892년 런던에서 태어나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즈 스쿨 (Merchant Taylor’s School)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 (Trinity College)를 졸업했다. 1916년에 외무부에 들어가 수많은 업무에 종사하다가 1936년에 사임하고, 웨일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더 타임스 (The Times)」의 부 (副) 편집인을 역임했으며, 1948년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정치학 튜터 (Tutor)를 맡았으며, 1955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 1966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명예연구원 (Honorary Fellow)으로 활동했다.
영국이 낳은 금세기의 대표적 사가로, 특히 소비예트 러시아사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4부작 「소비예트 러시아의 역사」는 그의 대표작이자 불후의 명저로 꼽힌다. 다른 주요 저서로 양차 대전 사이 국제정치의 흐름을 다룬 『위기의 20년, 19191939 (The Tewnty Years’ Crisis』 (1919 1939) 을 비롯해 『소련이 서구에 준 충격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 (1946), 『낭만의 망명객 (The Romantic Exiles)』 (1933), 『평화의 조건 (Conditions of Peace)』 (1942),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 (1951),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 (From Napoleon to Stalin and Other Essays)』 (1980), 그리고 역사철학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한편 역사가로서 그는 기념비적인 저작 『소련사 (History of Soviet Russia)』로 가장 유명하다. 1945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거의 30여 년간 매달려 완성한 이 책에 대해서 「가디언 (Guardian)」 지는 “금세기에 한 영국인 역사가에 의해서 쓰여진 가장 중요한 저작들 중의 하나”라고 했고, 「더 타임스」지는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말했다. 『소련사』는 한 권의 개요집인 『러시아 혁명 ː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The Russian Revolution ː Lenin to Stalin)』를 포함하여 『볼셰비키 혁명, 1971 1923 (The Bolshevik Revolution, 1917 1923)』;『공백기, 1923 1924 (Interregnum, 1923 1924)』;『일국 사회주의, 1924 1926 (Socialism in One Country, 1924 1926)』, 『계획경제의 기초, 1926 1929 (Foundations of a Planned Economy, 1926 1929)』 등의 14권으로 되어 있다.
○ E. H. 카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
E. H. 카는 혁명적인 역사 진보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그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E. H. 카는 외교관, 언론인으로서 쌓았던 다채로운 실제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 ‘사실과 해석’, ‘객관과 주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카는 20세기 사회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라는 재난과 혼란 속에서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변화를 겪은 것에 대하여 새로운 사회를 가져온 요인과 조건들을 파악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질서에 대한 방향 감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현실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카는 20세기적 질서의 ‘새로운 사회’로 향한 변화의 시점을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잡고 있다. 또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20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카는 1917년 혁명을 정치적 행동에 의하여 조직된 경제적 통제 수단을 통해서 사회 정의를 확립하려던 역사상 최초의 혁명이라고 정의하였다. 카는 혁명 자체보다 혁명으로부터 발생한 정치·사회·경제적 질서의 역사에 관심을 보였다.
카는 고대 그리스 로마가 철학의 시대, 중세가 신학의 시대, 18세기가 과학의 시대였던 것처럼 20세기는 역사학의 시대라고 보고 있다. 20세기 사회의 질서는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러시아혁명 등에서 기원하는 만큼 20세기 사회의 문제와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접근’방식이 불가결하며 가장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카가 본 역사학에서는 사실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개인적인 주관도 또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물론 역사가들이 사실의 측면을 무시해서는 역사학이 성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생선가게 좌판 위에 얹혀진 생선이 아니라 광활하고 접근할 수조차 없는 대양을 마음껏 헤엄쳐 달리는 물고기와 같다고 표현한다. 역사가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은 때론 우연에 의하기도 하지만어디서 고기를 낚느냐, 그리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개의 역사가들이 자기가 원하는 사실들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이다.
카의 역사관은 진보의 사관이다. 카는 역사를 ‘부단한 진보과정’으로 보았다. 그가 생각한 진보에는 일정한 시작이나 끝이 없다. 처음과 끝에 구애될 필요가 없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직선적인 진보관은 거부한다. 역사는 더 나은 방향을 향해 한 방향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고 역행될 수도 있으며 중단될 수도 있다. 이러한 카의 진보관은 18, 19세기 진보주의 사상가들이 믿었던 ‘인간의 완성’이나 ‘지상의 낙원’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학은 궁극적으로 과거를 밝힘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그 현재를 출발점으로 해서 미래를 조망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카는 역사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역시 사회적 존재로서 역사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역사가의 모든 관점은 사회적으로 제약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역사의 객관성은 역사가의 올바른 방향 감각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 객관적 역사가라는 의미는 그가 사실을 올바르게 수집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하거나 올바른 의미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이다.
카의 역사관의 핵심은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에, 해석은 역사가 자신이 생존하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가의 가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따라서 카에 의하면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진실(가치의 객관성)에 관한 것이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
(There is no more significant pointer to the character of a society than the kind of history it writes or fails to write.)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역사가는 일반화를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 수집가와 구분된다.”
(What distinguishes the historian from the collector of historical facts is generalization.)
“역사가의 역할은 과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서 그를 해방시키는 것도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이해하고 다루는 것이다.”
(The function of the historian is neither to love the past nor to emancipate himself from the past, but to master and understand it as the key to the understanding of the present.)
“사실을 배우기 전에 역사가에 대해서 연구하라.”
(Study the historian before you begin to study the facts.)
그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게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그 축적에 참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으면서 행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다른 많은 개인과 똑같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그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대변인이다. 그런 자격으로 그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 공산주의자 논란
1942년 조지 오웰이 “카 교수는 충성의 상대를 히틀러에서 스탈린으로 바꾼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카가 공산주의자였다는 게 아니다. 당시 영국과 소련은 나치 독일이라는 적을 두고 같이 싸우고 있었고, 영국은 행여나 스탈린이 히틀러와 단독강화를 맺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카는 영국 외교부의 러시아 전문가로서 소련측의 비위를 맞추면서 연합국측에 붙잡아두는 일을 맡아했는데, 철저한 반스탈린주의자인 오웰이 카가 주도하는 친소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카의 행보를 보면 오웰이 그러한 평가를 내린 이유를 알 수 있다. 1930년대에 카는 독일을 베르사유 조약의 희생자로 히틀러를 경제적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지도자로 보고 네빌 체임벌린의 대독일 유화정책과 라인란트 재무장 등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려는 나치 정권의 노력들을 강력히 지지했다. 1936년에는 나치 정권의 인권 기록을 비판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주장하였고, 1939년에 출판된 위기의 20년에서 “뮌헨 협약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에 행해진 큰 잘못을 되돌리는 정당하고 도덕적인 시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확실히, 나는 눈이 멀었었다”고 주장을 철회하였고 1945년 강의에서 “개인주의에서 전체주의로의 추세는 어디에서나 명백하다”, “이전 전쟁에서 스탈린은 월슨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대신하여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연합군의 전쟁목표로 강화하였다”고, 1979년 논문에서는 카는 “소련의 상황에서 스탈린은 선의의 힘이였다.”이라고 주장하였다.
우선 카의 행보를 보자면 공산당을 혐오하는 히틀러 정권을 옹호하다가 2차 대전에서 소련을 옹호하는 걸로 바뀌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스탈린 또한 히틀러 정권에 맞서 연합군과 같이 싸웠다. 즉 영국 입장에서 보자면 스탈린은 전체주의자지만,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측에 서서 히틀러라는 또다른 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아군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보면 에드워드 카가 단순히 공산주의자여서 스탈린을 옹호했다는 것은 맥락을 무시한 주장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에는 정작 카의 저서와는 연관시키지 않았다는 결함도 존재한다. 카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은 그의 성향을 가장 잘 비추어 줄 수도 있는 말인데, 그의 저서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진보’는 사전적 의미의 진보가 아니라 지금도 흔히 주변에서 쓰이는 ‘정치, 경제, 역사에 관한 마르크스적 진보’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르크스 사관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과 카의 저서들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가 크게 갈린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사관 위에서 경제발전에 의한 역사의 진보를 주장하였다. 즉 흔히 알려진 사회발전 순서 (원시공동체사회, 농경사회, 봉건주의사회, 산업사회, 자본주의사회 순의 발전) 분류방식은 사실 마르크스의 영향하의 방식이며, 그렇다면 그 다음 사회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이를 정당화 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저서 자본론의 큰 내용중 하나이다. 이러한 내용은 ‘사회 (역사)는 진보한다’로 해당 전공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의 저서 전반을 살펴보면 카 또한 당시 과학적이라 주장되며 인기를 끌었던 마르크스 사관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물론 그가 공산주의자인가를 결론짓듯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게다가 저서에도 미국의 보수주의자를 공격하거나 언급자체가 없으며 새뮤얼 모리슨과 칼 포퍼를 마지막 부분에 옹호하는 글을 쓰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렵다. 또한 마르크스 본인이 영국에서 활동했었으며 아직도 영국 내에서도 공산주의는 아니나 마르크스에 관련 서적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그 영향을 받은듯 하다. 또한, 마지막 남긴 말을 보면 그도 사회적 변화인 진보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면서 미래가 밝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볼 때는 그도 나름 중립적인 태도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 경력
– 경력
1916년 ~ 1936년 영국 외무성 근무
1936년 ~ 1946년 영국 웨일스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1939년 ~ 1940년 영국 정보성 외교부장
1941년 ~ 1945년 타임스 논설위원
1948년 국제연합(UN) ‘세계 인권 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
195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1955년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고급연구
– 학력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대학
○ 저서
평화 조약 이후 국제 관계 (1937년)
20년의 위기, 1919~1939 (1939년)
국제 관계 연구에 대한 소개 (1939년)
영국: 베르사유 조약에서 전쟁 발발에 이르는 외교 정책 연구 (1939년)
평화의 조건 (1942년)
민족주의와 그 이후 (1945년)
소련이 서구에 준 충격 (1946년)
새로운 사회 (195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 (1950년)[14]
역사란 무엇인가 (1961년)
1917년 전후의 런던 (1969년)
러시아 혁명: 레닌부터 스탈린까지 1917-1929 (1979년)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 (1980년)
코민테른의 황혼, 1930-1935 (1982년)
코민테른과 스페인 내전 (1984년)
– Selected works
Dostoevsky (1821–1881): A New Biography, New York: Houghton Mifflin, 1931.
The Romantic Exiles: A Nineteenth-Century Portrait Gallery, London: Victor Gollancz, 1933.
Karl Marx: A Study in Fanaticism, London: Dent, 1934.
Michael Bakunin, London: Macmillan, 1937.
International Relations Since the Peace Treaties, London: Macmillan, 1937.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International Relations, London: Macmillan, 1939, revised edition, 1946.
Britain: A Study of Foreign Policy from the Versailles Treaty to the Outbreak of War, London; New York: Longmans, Green & Co., 1939.
Conditions of Peace, London: Macmillan, 1942.
Nationalism and After, London: Macmillan, 1945.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 1946.
A History of Soviet Russia, London: Macmillan, 1950–1978. Collection of 14 volumes: The Bolshevik Revolution (3 volumes), The Interregnum (1 volume), Socialism in One Country (4 volumes), and The Foundations of a Planned Economy (6 volumes).
The New Society, London: Macmillan, 1951.
German-Soviet Relations Between the Two World Wars, 1919–1939, London: Geoffrey Cumberlege, 1952.
What Is History?, London: Macmillan, 1961; revised edition ed. R.W. Davies, Harmondsworth: Penguin, 1986.
1917 Before and After, London: Macmillan, 1969; American edition: The October Revolution Before and After, New York: Knopf, 1969.
The Russian Revolution: From Lenin to Stalin (1917–1929), London: Macmillan, 1979.
From Napoleon to Stalin and Other Essays, New York: St. Martin’s Press, 1980.
The Twilight of the Comintern, 1930–1935, London: Macmillan, 1982.
The Comintern and the Spanish Civil War, New York: Pantheon, 1984.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