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2월 15일,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 ~ 1904)의 ‘신세계 교향곡’ (교향곡 9번 마단조, 작품 번호 95) 초연
《교향곡 9번 마단조, 작품 번호 95》은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체: 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년 9월 8일 ~ 1904년 5월 1일)가 작곡한 아홉 번째 교향곡이자 마지막 교향곡이다. 신세계로부터 또는 신세계 교향곡이라는 부제로도 가장 많이 알려진다. 그가 미국에 방문 중이던 1893년 작곡되었으며, 드보르자크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이면서 현대 레파토리 중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주제로 한 것으로, 흑인영가와 인디언 음악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으며, 지방색이 풍부하고 선율미가 구성미가 뛰어나다. 원제목은 <신세계로부터>이며,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된다. 이 중 제2악장의 <라르고>가 유명하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일반의 인기가 이 교향곡 등 미국 시대의 작품에 집중된 것은 이것들이 체코의 민족음악의 특징뿐만 아니라 미국의 인디언과 흑인의 음악 특징도 채택하고 있어 애호되기 쉬운 재료가 명쾌하고 알기 쉬운 윤곽 속에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이 교향곡에서 사용한 순환형식풍의 구성은 특히 친숙해지기 쉬운 재료로, 듣는 사람에게 인상을 가지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드보르자크는 같은 피억압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흑인과 인디언에 대하여 깊은 동정과 공감을 품었던 것이다.

○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 /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 ~ 1904)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체: 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년 9월 8일 ~ 1904년 5월 1일)은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체코의 작곡가로, 관현악과 실내악에서 모국의 보헤미안적인 민속 음악적 작품성 풍색과 선율을 표현하였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에 의하여 확립된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만든 음악가이다.
–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Antonín Leopold Dvořák)
.출생: 1841년 9월 8일, 보헤미아 왕국 넬라호제베스
.사망: 1904년 5월 1일 (62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라하
.국적: 보헤미아 왕국
.직업: 작곡가
.배우자: 안나 세르마코바(Anna Čermáková)
드보르작은 오스트리아 제국 프라하(현재는 체코 공화국) 근처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나서,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드보르작은 즈로니체에 있는 외삼촌과 리마 선생이 부친을 설득한 보람으로 1857년 16세에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음악가가 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프라하에서는 오르간 학교에서의 교육보다도 학우이며 훗날의 지휘자 칼레르 벤달과 친교를 맺고, 재학 중부터 오케스트라에 가담하여 바이올린을 켜서 수확을 올렸다. 특히 그 오케스트라가 당시 명성을 얻고 있던 바그너를 영입하고 있던 관계도 있어 드보르작은 퍽 오래도록 바그너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바그너식의 오페라나 음악극의 체코판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바그너의 멜로디나, 특히 화성의 특징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여 받아들였다. 드보르작은 꽤 노력형이어서 학생시절부터 친척집에 기숙하면서 침식을 잊고 공부하였다.
졸업 후에는 프라하의 일류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출연하고 있던 갈레루 코므자크 악단에 가담하여 비올라를 켜게 되었으나 1862년에 체코인을 위한 국민극장이 건설될 때까지의 임시극장이 개관되어 악단과 더불어 이 극장 전속 오케스트라의 핵심이 되어 약 10년간 근속하였다. 1866년부터 스메타나가 이 극장의 오페라 감독에 취임, 자작의 오페라 등을 지휘하게 되었으므로 바그너, 슈베르트나 베토벤의 영향과 함께 스메타나의 민족주의적인 음악사상이 그의 작품을 채색하게 되었다. 드보르작은 오케스트라 동료들로부터 작곡 같은 것을 해서 무엇하느냐고 핀잔을 받았으나 묵묵히 작곡을 하였으며 특히 1861년 (20세 때)부터 실내악의 대곡 (작품 1의 현악 5중주곡)을, 또 1865년부터 교향곡(제1과 제2를 이해에)을 작곡한 것은 당시의 슬라브계의 민족음악의 작곡가들이 스메타나를 비롯하여 대체로 이와 같은 순음악보다도 표제 음악이나 오페라에 끌려 있던 것과 대조적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드보르작의 이러한 순음악에 대한 열정은 죽기 약 9년 전인 1895년까지 계속된다. 후기 낭만적 음악의 화성조직이나 색채적인 오케스트라의 사용법이라든가 그러한 개개의 기법에 이끌렸어도 고전적인 음악형식을 저버리려고 하는 그 무렵의 작곡계의 일반적인 경향에는 반대였고 새로운 고전주의를 목표로 한 점에서 독일의 대작곡가 브람스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사실 브람스에게는 매우 총애를 받아 드보르작의 작품이 1877년 이후 베를린의 지므로크 음악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고, 체코 이외의 나라에서 연주하게 된 것도 브람스의 소개로 된 것이었다.

브람스를 비롯하여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 지휘자인 한스 리히터, 당시 빈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평론가 한슬리크 등 독일,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음악인 지위를 얻게 된 것도 드보르작의 명성과 작품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독일,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1884년 말 영국에도 9번 방문하여 영국을 위해 <유령의 신부> 및 <교향곡 제7번 D단조>를 쓰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국제인으로서 사는 것을 바라지 않고 끝까지 체코인으로 살아갔다. 빈으로 이주하도록 재삼 권유된 것을 거절한 것도 그의 신념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빈 정부에 대해 독립투쟁을 밀고 있던 동포들을 버리고 자신만 빈에서 안일하게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1890년부터 프라하 음악원에서 작곡과 그 밖의 것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1892년의 51세 때 뉴욕의 국민음악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었다.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 등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드보르작의 작품이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에 작곡되었다. 그러나 1894년의 여름 휴가로 귀국 (이 때 피아노 독주곡, 8개의 <유모레스크>를 작곡했다. 그 중에서 7번째 곡이 바이올린으로 편곡되어 유명해지자 다시 미국으로 가기가 싫어졌지만 일단 돌아가서 결국 다음해 봄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오래도록 미국에 머물러 있을 것을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계약을 중도파기하고 귀국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슬라브풍의 음악에 흑인과 인디언의 멜로디를 조화하며 작곡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귀국 후 만년의 약 10년간은 일반 민족주의 음악의 작곡가와 같이 오페라와 교향시에 주력하여 <루살카> (1901 초연)와 같은 귀여운 오페라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창작력이 그 정상에 달한 것은 이 이전, 특히 도미 직전인 수년간으로 추측된다. 피아노 3중주곡 <도무키> (1890-1891)가 그 좋은 한 예이듯이 종래의 독일류의 음악형식에 구속되지 않은, 슬라브인의 변화와 대조를 좋아하는 민족성에 한층 잘 맞는 새로운 형식적 질서를 낳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1901년엔 빈의 종신 상원의원으로 귀족이 되었고, 같은 해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이 되기도 한, 독립 전의 체코의 문화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받은 뒤 1904년 뇌일혈로 사망, 국장으로 모셔졌다.
드보르작은 이른바 귀재형의 음악가는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평범 속에 위대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다.
- 일화
철도광이었던 그는 딸의 연인이었던 요제프 수크 (드보르작의 제자로, 후에 프라하 음악원 원장. 바이올린니스트인 수크는 그의 손자)에게, 새로운 기관차의 제조 번호를 조사해 오도록 부탁하였지만, 기관차에 익숙하지 않은 수크는 잘못된 번호를 보고하였다. 드보르작은 진지하게 화내, 딸에게 “너는 이런 멍청이와 정말로 결혼할 생각이냐?”라고, 진심으로 결혼을 반대하였다.

○ 악기 편성
.목관악기
플루트2, 오보에2 (하나는 잉글리시 호른을 겸함), 클라리넷2, 바순2
.금관악기
호른4, 트럼펫2, 트롬본3 (알토, 테너, 베이스), 튜바 (2악장만)
.타악기
팀파니, 심벌즈 (4악장만), 트라이앵글 (3악장만)
.현악 5부
○ 곡의 형태
- 1악장
느리게 – 매우 빠르게 (Adagio – Allegro molto) e단조이다.
서주(1~23마디) – 현악기의 느린 서주로 시작한다. 곧 같은 주제가 목관악기에서도 나오고 발전하면서 바이올린의 여린 트레몰로와 함께 제시부로 넘어간다.
제시부(24~180마디) –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트레몰로와 함께 호른의 제 1주제가 나온다(24~27마디). 그후 목관악기가 g단조의 제 2주제를 연주한다(91~98마디). 플루트가 G장조의 선율을 연주하고(149~156마디) 현악기가 같은 주제를 연주한 다음 제시부를 반복한다.
전개(발전)부(181~276마디) –
재현부(277~452마디) – 제시부와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2주제가 등장할때는 e단조로 나온다.
- 2악장
느리고 장중하게 (Largo) D♭장조이다. A-B-A의 세도막형식이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6마디의 서주 이후 잉글리시 호른이 유명한 주제를 제시한다.

- 3악장
매우 빠르게 – 약간 여유있게 (Molto Vivace – Poco sostenuto) e단조 – E장조이다. A-B-A-코다
트라이앵글과 함께 매우 빠르게 시작한다. 13마디에서 목관악기가 주제를 제시한다. 68마디에서 Poco sostenuto로 약간 느려진다. 다시 Molto Vivace로 돌아오고 248마디에서 시작으로 돌아간 뒤 141마디에서는 코다(249마디)로 넘어간 후 곡이 끝난다.
- 4악장
빠르고 정열적으로 (Allegro con fuoco) e단조 – E장조이다.
모든 현악기가 함께 포르티시모로 같은 음을 연주하며 시작한다. 그러면 10마디에서 금관악기가 4악장의 주제가 나온다. 66마디에서부터는 G장조로 클라리넷과 첼로가 서로 주고 받으며 아름다운 선율이 나온다
4악장에서 심벌 주자는 상징적인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는데 4악장 전체 부분에서 딱 한 번, 딱 한 음표만 연주된다. 그것도 시원하게 한 번 치는 것이 아니라 바람소리를 연출하듯 심벌끼리 한 번 스친다. 1~3악장은 심벌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심벌 주자는 그 한 음표를 위해서 가만히 앉아서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