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5월 11일, 동학 농민군이 정읍군 황토현 (현 정읍시 이평면)에서 전라 감영군 맞아 대승
동학군이 거세지자 조정에서는 이용태를 파면하고 귀양 보낸 후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여 8백명의 경군(京軍)을 주어 전봉준의 동학군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그 당시 홍계훈의 경군은 해상로를 통해 인천 제물포를 출발해 군산에 상륙하여 전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경군이 소유하던 무기들이 이 당시로선 상당히 고급이었는데, 독일제 마우저 소총과 크루프/티센크루프식 야포와 미국 레밍턴 롤링블록 소총, 그리고 결정적으로 회선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충분히 관군 수준에서 농민군을 막아내고, 경우에 따라선 진압까지 가능했다는 말이다.
한편 전라 감사 김문현은 전라 감영군을 모아놓고 대기 중인 상태였다. 화력이 우수한 경군이 남하하고 있으므로 경군과 합세하여 봉기를 진압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었으나, 김문현은 단독으로 공을 세울 욕심으로 무리하게 출병을 결정한다. 특히 김문현은 수령으로서 잘못된 통치로 봉기를 허용한 죄가 있기 때문에 공을 세워서 지금까지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서기 1894년 5월 10일 (음력 4월 6일) 오후 2시, 황토현에 진을 친 동학군은 전라 감영군과 향병들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전봉준의 동학군은 관군과의 전투끝에 거짓으로 패퇴하여 황토현 인근 사시봉에서 진을 치고 훗날을 도모하자, 관군은 동학군이 거짓 패전으로 도주한 것도 모른 채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다.
그러나 5월 11일 (음력 4월 7일) 새벽 4시, 동학군의 거짓 패전으로 승리감에 도취해 있던 감영군과 친군무남영의 병력이 기세등등한 동학군에게 기습을 당해 일거에 무너지자 관군들은 혼란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 오전 6시, 전봉준이 지휘하는 호남 창의군의 총공격으로 인해 영관 이경호가 전사하고 그가 지휘하던 전라 감영군은 전멸 상태에 이른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