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12월 30일,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 호세 리살 (Jose Rizal, 1861 ~ 1896) 별세
호세 프로타시오 리살 메르카도 이 알론소 레알론다 (Jose Rizal, 스: José Protasio Rizal Mercado y Alonso Realonda, 1861년 6월 19일 ~ 1896년 12월 30일) 혹은 호세 리살 (스: José Rizal)은 의사, 저술가, 시인, 언론인, 교육가이며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이다.
– 호세 리살 (José Protasio Rizal)
.출생: 1861년 6월 19일, 필리핀 라구나 주 칼람바
.사망: 1896년 12월 30일 (35세), 필리핀 마닐라 바굼바얀
.국적: 필리핀
.언어: 타갈로그어, 스페인어
.직업: 필리핀 혁명 관련 개혁가, 독립운동가, 의사
.학력: 산토 토마스 대학교, 유니버시다드 센트랄 데 마드리드
.종교: 가톨릭
.필명: 페페
.활동기간: 1883 ~ 1896년
.장르: 시문학, 소설
.부모: 테오도라 알론소 리알론다, 프란시스코 메르카도
.설립 조직: 라 리가 필리피나
.배우자: 조세핀 브랙켄
.대표 작품: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훼방꾼 (El Filibusterismo)』, 시 ‘필리핀의 젊은이들에게’, ‘마지막 인사’ 등
스페인 치하에서 필리핀의 해방을 주창한 필리핀의 독립운동가였으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의 무장투쟁론에 반대하고 스페인의 개혁과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필리핀의 독립운동을 지도하였고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놀리 메 탕헤레 (나를 만지지 마오)》(Noli Me Tángere), 《훼방꾼》 (El Filibusterismo)의 작가이며, 많은 시와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1896년 12월 30일 스페인 식민지 군에 의해 처형당했다.
○ 생애 및 활동
호세 리살 (José Protasio Rizal)은 1861년 6월 19일필리핀 라구나 주 칼람바에서 출생했다.
사탕수수 농장을 크게 하는 부모에게 2남9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리살은 두 살 때에 알파벳을 배우고 다섯 살에는 이미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 일찌감치 형 파시아노 Paciano와 함께 권력에 저항하고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정치사상에 눈을 떴다.
그는 스페인어를 비롯해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고, 시작 詩作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후에 저항과 독립의 대명사가 될 리살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리살은 수도로 옮겨 학업을 이어나가 예수회 신부들이 세운 아테네오대학 Ateneo Municipal de Manila을 다니는 한편 산토토마스대학교 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눈이 멀자 바로 안과학 ophthalmology으로 전공을 바꿨다.
- 유학 생활
호세 리살은 의사가 되기 위해 1882년에 스페인으로 유학을 갔으며, 마드리드에서 《놀리 메 탕헤레》(Noli Me Tángere, Touch Me Not의 라틴어)라는 소설을 구상하여 이를 틈틈이 집필하여 1887년 2월 베를린에서 이를 최종 탈고했다. 베를린에서 2천부 인쇄한 《놀리 메 탕헤레》에서 그는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 스페인 인들이 자국인들에게만 특혜를 주고 식민지 필리핀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
식민지 출신의 젊은 유학생이 발표한 이 소설은 당시 개방적인 분위기와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어가던 스페인의 문화계와 마드리드의 지식인층, 학생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스페인에서 나오게 되었다. 결국 호세의 서적은 불온서적이 되고, 그는 스페인 정부의 추방령에 따라 퇴학당하고, 필리핀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의사의 꿈을 접고 필리핀으로 되돌아오게 된 호세는 필리핀의 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뭔가를 실현하고자 필리핀 민족 동맹을 결성하여 스페인 식민통치를 비판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압제하에 필리핀의 노예 상태에 통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하여 민족의 자각·해방의 기운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의 무장투쟁론에 반대하고 스페인의 개혁과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1892년 필리핀 독립 운동의 지도 기관인 필리핀 연맹을 결성하여 독립 운동을 지휘하던 중 그의 활동을 주목한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민다나오 섬 다피탄으로 유배되었고, 무장 투쟁론자들의 배후로 몰리게 되었다.
- 투옥과 처형
그 뒤 수도 마닐라 인트라무로스 (Intramuros) 내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 (Fort Santiago) 감옥으로 이감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1896년 필리핀 혁명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마닐라 근교의 교외 바굼바얀 (오늘날의 리살 공원 부지)에서 공개 총살형을 당하였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불사르는 계기가 되었고, 호세 리살은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되었다.
리잘의 죽음은 필리핀인들의 가슴에 독립 의지를 불지르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그의 영향을 받은 에밀리오 아기날도, 아폴리나리오 마비니 등 많은 청년들이 필리핀의 독립 투쟁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리잘의 미망인 조세핀 역시 무장조직인 카티푸난에 들어가 참전한다. 그 결과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비록 당시에는 미서전쟁 이후 필리핀을 할양받은 미국이 개입해 독립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필리핀인들에 의해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리잘이 죽고 나서 어머니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어머니를 따라온 하녀에게 건네준 등잔의 밑바닥에서 그가 숨겨놓은 듯한 편지가 발견된다. 이른바 ‘마지막 인사(Mi último adiós, My Last Farewell)’이라는 절명시다.
Adiós, Patria adorada, región del sol querida,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감싸주는 나라여,
Perla del mar de oriente, nuestro perdido Edén!
동방의 진주여, 잃어버린 에덴이여!
A darte voy alegre la triste mustia vida,
나의 슬프고 눈물진 이 생명을 너를 위해 바치리니
Y fuera más brillante, más fresca, más florida,
이제 내 생명이 더 밝아지고 새로워지리니
También por ti la diera, la diera por tu bien.
나의 생명 마지막 순간까지 너 위해 즐겁게 바치리
그가 사망한 후 베를린 학회에서는 그를 추모하였고, 추도사에서 루돌프 피르호는 위의 시를 독일어로 낭독하였다.
- 사후
그 뒤 그의 영향을 받은 에밀리오 아기날도, 아폴리나리오 마비니 등 많은 청년들이 필리핀의 독립 투쟁에 가담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필리핀에서는 그를 “독립 운동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그가 죽은 12월 30일은 호세 리살의 날로 기념되며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의 로하스 거리 (Roxas Street)에 그를 기념해 세운 리살 공원과 그의 동상이 있다.
마닐라에서 공개 처형 당했으며 그가 처형당한 곳은 후일 필리핀 독립 이후 ‘리살 공원’ (Rizal Park)이 세워졌다.
리살 공원 한쪽에는 호세 리살의 처형 장면을 재현해 놓은 동상들이 설치되고 후일 관광지화되었다.
그가 수감된 산티아고 요새 감옥 근처에는 호세 리살 기념관이 세워졌다.
.기념
수도 마닐라엔 그를 추모하는 리잘 공원 (Rizal’s park)이있으며 필리핀 정부군 의장대가 경계를 선다.
리잘을 성자로 추앙하여 리잘을 섬기는 소수의 종교집단이 있다. 리잘을 기념하는 날에 리잘공원에서 종교행사를 가진다.
필리핀의 대부분의 대학교에선 《리잘의 생애》라는 교과가 편성되어 있다. 이때 그의 어록 중 “총알 한 발이 흘리는 피보다도 잉크 한 방울이 더욱 강하다”란 발언을 강조한다. 폭력적인 억압을 상대론 무혈투쟁이 명분을 지키기 유리하여 승리할 거란 뜻.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의 말이 맞긴 했다.
필리핀의 1페소 동전의 인물은 리잘이다.
국영방송인 GMA에서 제작하고 송출되는 필리핀 국가 영상엔 리잘이 수감되어 《마지막 편지》를 쓰고 스페인 군인들에 의해 총살되어 순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필리핀 해군의 첫 방공호위함인 호세 리잘급의 초도함의 함명으로 사용되었다.
.기념일
12월 30일은 그가 처형 당한 날로 호세 리잘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라구나 주에서는 매년 리잘의 생일인 6월 19일 공휴일로 기념한다고 한다.
.기념지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의 로하스 거리(Roxas Street)에 그를 기념해 리잘 공원이 세워졌다. 리잘 공원 한 켠에는 호세 리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해 놓은 동상들이 설치 되고 훗날 관광지화가 되었다.
그가 수감된 산티아고 요새 감옥 근처에는 호세 리잘 기념관이 세워졌다.
리잘 주(州)의 주명도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필리핀의 국립경기장도 그를 기념한 리잘 기념 경기장(Rizal Memorial Stadium)이다. 스포츠단지 전체의 이름이 리잘 메모리얼 스포츠 컴플렉스 이며, 리잘 기념 경기장을 비롯하여 리잘 기념 야구 스타디움, 리잘 메모리얼 콜로세움, 리잘 기념 수영장 등 리잘을 기념하는 명칭의 경기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잘 다목적 아레나는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남편이자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의 아버지인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를 기념하기 위해 애칭인 니노이를 따 니노이 아키노 스타디움으로 변경되었다.
○ 평가
호세 리살 (스: José Rizal)은 의사, 저술가, 시인, 언론인, 교육가이며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이다.
스페인 치하에서 필리핀의 해방을 주창한 필리핀의 독립운동가였으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의 무장투쟁론에 반대하고 스페인의 개혁과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필리핀의 독립운동을 지도하였고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필리핀의 국가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간디, 타고르, 손문 등과 더불어 아시아 전역에 평화주의적 혁명 정신을 널리 퍼뜨린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대표 작품에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와 『훼방꾼 (El Filibusterismo)』, 시 ‘필리핀의 젊은이들에게’, ‘마지막 인사’가 있다.
이 외 수많은 소설, 에세이, 시, 희곡, 미술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생애와 작품은 끊임없이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재생되고 있다.
○ 작품 및 저서
대표 작품에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와 『훼방꾼 (El Filibusterismo)』, 시 ‘필리핀의 젊은이들에게’, ‘마지막 인사’가 있다.
- Novels
The Social Cancer (original title: Noli Me Tangere [Touch Me Not])
El Filibusterismo (The Reign of Greed)
Unfinished: Makamisa (After Mass)
- Plays
El Consejo de los Dioses (The Council of the Gods)
Junta Al Pasig (Along the Pasig)
San Euistaquio, Mártyr (Saint Eustache, the martyr)
Por Telefono (By Phone)
- Poems
El Consejo de los Dioses (The Council of the Gods)
Junta Al Pasig (Along the Pasig)
San Euistaquio, Mártyr (Saint Eustache, the martyr)
Por Telefono (By Phone)
- Musical Compositions
Kundiman ni Rizal
Alin Mang Lahi
Leonor
- Speeches and Petitions
In honor of two Filipino painters, Rizal’s toast to Luna and Hidalgo
Rizal’s speech delivered at Cafe Habanero
Petition of the town of Calamba
Order of the Marquis of Malinta
- Historical Commentaries
Ma-Yi
Tawalisi of Ibn Batuta
Filipinas Dentro de Cien Años (The Philippines A Century Hence)
Sobre La Indolencia De Los Filipinas (The Indolence of the Filipino)
Manila en el mes Diciembre, 1872 (Manila in the Month of December, 1872)
Historia de la Familia Rizal de la Calamba (The History of the Rizal Family of Calamba)
Los Pueblos del Archipelago Indico (The People of the Indian Archipelago)
La Politica Colonial on Filipinas (Colonial Policy in the Philippines)
Rizal’s Annotations to Morga’s 1609 Philippine History
- Letters and Petitions
Tribute to Blumentritt (written on the day of Rizal’s execution)
Sa Mga Kababaihang Taga Malolos (To the Young Women of Malolos)
A los Filipinos (To the Filipinos)
Rizal’s Letters (composed of correspondence to Blumentritt, Father Pablo Pastells, Marcelo del Pilar, and other activists)
- Articles and Essays
“El Amor Patrio” (The Love of Country)
“Come se gobiernan las Filipinas” (Governing the Philippine islands)
“Revista De Madrid” (Review of Madrid)
“Los Viajes” (Travels)
“La Verdad Para Todos” (The Truth for All)
“Unfortunate Philippines”
“Pensamientos De Un Filipino” (Reflections of a Filipino)
“Note on the Maremagnum”
“Los Agricultores Filipinos” (Filipino Farmers)
“Sa Mga Kababayan” (To My Countrymen)
“Una Visita A La Victoria Gaol” (A Visit to Victoria Gaol)
“A La Defensa” (To La Defensa)
“How to Deceive the Native Land”
“To Barrantes on the Tagalog Theater”
“Una Profanacion” (A Desecration/A Profanation)
“Verdades Nuevas” (New Facts/New Truths)
“Crueldad” (Cruelty)
“Diferencias” (Differences)
“Inconsequencias” (Inconsequences)
“Llanto Y Risas” (Tears and Laughter)
“Ingratitudes” (Ingratitude)
“Cosas de Filipinas” (Things About the Philippines)
“Sobre La Nueva Ortografia De La Lengua Tagala” (On The New Orthography of The Tagalog Language)
“A La Nacion Espanola” (To the Spanish Nation)
“Defensa Del Noli” (Reply to Barrantes’ Criticism of the Noli Me Tangere)
“Nameless”
“Let Us be Just”
“Philippine Affairs”
“More on the Negros Affair”
“Cowardly Revenge”
“A Reply to Mr. Isabelo de los Reyes’ Las Luchas de Nuestros Dias”
“How the Philippines is Governed”
“On the Calamba Incidents”
“Ang Mga Karapatan Ng Tao” (The Rights Of Man)
“Executives of the town of Calamba”
“Colonisation Du British North Borneo, Par De Familles De Iles Philippines” (Colonization Of British North Borneo By Families From The Philippine Islands)
“Proyecto De Colonization Del British North Borneo Por Los Filipinos” (Project Of The Colonization Of British North Borneo By The Filipinos)
“La Instruccion” (The Town Schools in the Philippines)
“La Mano Roja” (The Red Hand)
“Pobres Frailes” (Poor Friars)
“By-laws of the Association of Dapitan Farmers”
“Date for My Defense”
“Additions to My Defense”
“Manifesto to some Filipinos”
“The Philippines as a Spanish Colony”
“Notes on Melanesia, Malaysia, and Polynesia”
“Constitution of La Liga Filipina”
“La Vision Del Fray Rodriguez” (The Vision of Fr. Rodriguez)
“Estado de religiosidad de los pueblos en Filipinas” (The Religiosity of the Filipino People)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