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1월 5일, 대한민국의 아동 문학가 이원수 (李元壽, 1912 ~ 1981) 출생
이원수 (李元壽, 1912년 1월 5일 ~ 1981년 1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아동 문학가이다. 본관은 월성 이씨다.
○ 생애 및 활동
경상남도 양산 출신. 1930년 마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함안 가야금융조합에 근무하다가 상경, 1945년 경기공업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어 출판계로 전직하여 1947년 박문출판사 편집국장, 1960년 삼화출판사 편집장 등을 역임하고, 1965년 경희여자초급대학 강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문학 단체에도 적극 참여하여 조선프로레타리아문학동맹 아동문학부 맹원으로 활동했으나, 동란 후에는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6년 동요 「고향의 봄」이 방정환(方定煥)에 의하여 『어린이』에 뽑힘으로써 문단에 나와 윤석중(尹石重) 등과 ‘기쁨사’ 동인이 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외형률 중심의 재래식 동요에서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 동시를 개척하여 「헌 모자」· 「보리방아 찧으며」· 「교문 밖에서」· 「찔레꽃」· 「이삿길」· 「양말사러 가는 길」 등 자유동시를 확립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장편동화 및 아동소설(소년소설)을 확립하는 데 선구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숲속나라」(1948)는 최초의 장편동화의 시도이며, 『오월의 노래』(1954) 등은 본격적인 소설적 구성과 표현을 구사한 작품이다.
작품활동 외에도 끊임없이 비평 활동을 하면서 비평 부재의 아동문학계에 아동문학이론을 확립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에 걸쳐 신문·잡지를 통하여 시평·월평·작가론을 계속 발표하며 아동문학의 본질에 관한 기초이론을 전개하였다. 1966년에는 『교육자료』에 10회에 걸쳐서 「아동문학입문」을 연재하였다.
이원수의 작품은 초기의 율동적이며 감각적인 경향에서, 1940년대 동시 「어머니」 (『아이생활』, 1943.9)에 나타난 바와 같은 저항적 현실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경향으로 변천하였다. 6·25동란 이후에는 동요·동시보다는 동화·아동소설에 주력, 현실을 직시한 고발적 사실주의 아동소설을 발표하였다.
이원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동은 세속적 의미의 불행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전기의 동요·동시로부터 「숲속나라」·「라일락언덕」·「신의 합창」 등에 나오는 불행한 아이들이 현실적 불행을 인내와 끈기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약사
1912년 1월 5일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북정리에서 태어남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소파 방정환이 만든 잡지인 《어린이》에 당선되었다. 이 동요는 홍난파의 작곡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
1927년 〈기쁨사〉의 동인이 되어 활발한 동요 창작을 했다.
1935년 당시 근무하던 직장인 함안 금융조합의 조합원들과 결성한 문학모임 ‘독서회’사건으로 1년간 옥고.
1936년 6월, 오빠생각의 작가인 최순애와 결혼
1947년 박문출판사의 편집국장으로 4년간 일함
1949년 동화 〈숲속의 나라〉를 《어린이나라》에, 소년소설 〈5월의 노래〉를 《진달래》에 연재, 동요와 함께 동화·소년소설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국 전쟁 때, 경기공업학교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렸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면복권됨.
1952년 대구로 피난하여 《소년세계》를 창간하여 편집 주간으로 3년간 근무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 창립 부회장으로 추대됨
1956년 아동 월간지 《어린이 세계》 주간을 맡음
1971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 역임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수상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
1981년 구강암으로 별세(향년 69세).
1984년 이원수 문학전집(전 30권, 웅진) 출판.
○ 평가
그는 외재율 중심의 재래적 동요에서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 동시를 개척하고 산문문학으로서 장편동화와 아동소설을 확립하며 부단한 비평활동을 통한 아동문학 확립에의 기여 등 문학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된다.
- 친일 행적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두 편, 자유시 한 편, 수필 두 편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용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발표했다. 1942년 8월에 실린 친일 동시 《지원병을 보내며》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표현했으며, 자유시에서는 농민시 형식을 빌려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편지글 형식을 써서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화예술 중 연극영화 부문에 선정되었다.
○ 상훈과 추모
1970년 ‘고마우신 선생님상’을 받았고, 1973년 한국문학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78년 예술원상(문학부문),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아동문학본상)을 받았다. 1968년 마산 성호공원에 「고향의 봄」 노래비와 1984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 주요 작품
그의 작품은 초기 〈고향의 봄〉·〈비누 풍선〉 등과 같이 율동적이며 감각적인 경향에서 1940년대 동시 〈어머니〉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현실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경향으로 변천되었다.
《고향의 봄》
《겨울나무》
《엄마 없는 날》
《꼬마 옥이》
《숲속 나라》
《민들레의 노래》
참고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