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4월 14일, 독일의 동물 상인 ‘현대 동물원의 아버지’ 칼 하겐베크 (Carl Hagenbeck (1844 ~ 1913) 별세
독일의 동물 상인, 칼 하겐베크 (Carl Hagenbeck (1844년 6월 10일 ~ 1913년 4월 14일)는 ‘현대 동물원의 아버지’라 불린다.
1848년 생선 중개상이었던 칼 하겐베크의 아버지, 클라우스 고트프리트 칼 하겐베크가 상어그물에 우연히 걸린 물개 여섯 마리를 ‘인어’라 표현하며 전시해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된 하겐베크 동물원(독일 함부르크 슈텔링겐)은 이제 세계적 수준의 잘 알려진 동물원이 되었다. 오늘날, 하겐베크 동물원은 수많은 볼거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원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서구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서커스 산업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각종 동물을 전시하거나 묘기를 부리게 했으며 심지어 기형 인간 등을 전시하기도 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야만적 요소가 다분했다.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관람객이 몰려들었고 서커스 산업 종사자들은 호황을 누렸다.

○ 생애 및 활동
독일의 동물 상인 칼 하겐베크가 1844년 6월 10일,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역시 작은 이동동물원을 운영했다.
하겐베크는 사냥꾼을 고용하고 동물원과 서커스단에 동물들을 공급해 주면서 아버지의 사업도 물려받았다.
유럽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그는 1870년대와 80년대에 실론 (지금의 스리랑카) 등 오지의 다양한 민족들과 동물들을 모아서 대대적인 순회공연에 나섰다.
이후 하겐베크는 동물을 때리고 혹독하게 다루는 당시의 훈련방식이 잔인하고 불필요하다며 새로운 동물훈련방식을 도입했다.
그의 훈련방식은 성공해 점차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서커스단 등으로 확산됐다.
또 동물들을 철책 우리에 가두지 않고 동물들의 자연습성에 맞는 동물원을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동물원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야외동물원의 원형이 되었다.

그 역시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으나 새로운 동물원 운영방식이었다.
구하기 쉽지 않은 이국 동물들의 포획에 성공하면서 ‘하겐베크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독일 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그린란드와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을 전시해, 학자들의 학문적 욕구와 대중의 관심에 화답했다.
그는 함부르크 근처의 슈텔링겐에 동물원을 개장했는데, 이곳에서는 동물들을 철책우리 대신 해자를 만들어 관람객의 관점에서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구분 없이 공존하는 파노라마 형태의 배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동물원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야외동물원의 원형이 되었다.
하겐베크의 동물 거래, 하겐베크의 사람 전시, 하겐베크의 서커스, 하겐베크의 동물공원은 독일의 식민지지배, 함부르크의 상업적 힘, 인류학/인종학/생물학의 제국주의적 힘, 감금에 대한 미학적 해결 등의 한 표현만으로 압축하기는 어렵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동물이 살던 실제 환경을 만들어 동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실제처럼 어울려 보이는 배경 속에 동물들과 토속 원주민들을 집어넣어 ‘인간과 동물이 자연상태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환상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려던 것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