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12월 28일,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Eduard Strauss, 1835 ~ 1916) 별세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Eduard Strauss, 1835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 제국 빈 레오폴트슈타트 ~ 1916년 12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는 오스트리아의 경음악 작곡가이다.
–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Eduard Strauss)
.출생: 1835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 제국 빈 레오폴트슈타트
.사망: 1916년 12월 28일 (8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국적: 오스트리아
.직업: 작곡가, 지휘자
.부모: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마리아아나 슈트라임
.형제자매: 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1825~1899), 형 요제프 슈트라우스 (1827~1870), 누나 안나 (1829~1903), 누나 테레사 (1831~1915) 형 페르디난드 (1834; 생후 10개월만에 사망)
.자녀: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3세, 차남 요제프 2세 에두아르트 아나 슈트라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4남이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동생이기도 하다.
애칭은 ‘에디 (Edi)’. 훗날 지휘자로 활동하며 슈트라우스 가문의 마지막 음악가가 된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1910 ~ 1969)와 구별하기 위해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1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 생애 및 활동
빈 근교의 레오폴트슈타트 (지금은 빈 시에 편입됨)에서 태어났고, 외교관으로 성장하라는 아버지의 뜻 때문에 각국의 언어들과 정치학 등을 배웠다. 하지만 형들처럼 역시 주 관심사는 음악이었고, 음악 이론과 작곡, 하프와 바이올린 등의 악기 연주법을 배웠다.
사교계 데뷰는 1855년에 했는데, 무도악단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비교적 화려하게 출발한 형들과 달리 큰형 슈트라우스 2세가 이끌고 있던 슈트라우스 악단의 하피스트로 간소하게 출발했다. 지휘 활동은 1861년에, 작곡 활동은 186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마찬가지로 왈츠와 폴카, 카드리유, 행진곡 등 무도음악 위주의 작품들을 써냈다.
1870년에 둘째형 요제프가 과로사한 뒤, 오페레타 작곡에 주력하려던 큰형 요한 2세의 부탁을 받아 슈트라우스 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동시에 형들과 대립을 취하던 칼 미하엘 치러의 최대 경쟁 상대로도 부각되었고, 빈 사교계의 인기를 양분하다시피 했다.
1882년에는 요한 2세의 후임으로 황실무도회 음악감독이 되어 무도음악 작곡가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차지했는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국외 순회 공연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하지만 1899년에 요한 2세가 세상을 떠나고 세기가 20세기로 바뀌면서 점차 ‘시대에 뒤떨어짐’ 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1901년 2월 13일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악단을 해체하고 자신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작곡과 지휘를 비롯한 일체의 음악 활동에서 손을 뗐지만, 1906년에는 슈트라우스 집안의 과거를 회고하는 ‘기억들 (Erinnerungen)’ 이라는 책을 내기도 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19세기의 ‘좋았던 시절’ 을 그럭저럭 잘 마무리한 음악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1907년 10월에 형들의 것까지 포함한 자필보 상당수와 악기를 불쏘시개로 써버렸다. 이 때문에 요한 2세, 요제프의 미발표 작품과 편곡물 대다수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는데, 자세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악보를 소각장에 싣고가는 데 일곱 대의 마차가 필요했다는 증언을 감안하면 최대 100만 장에 이르는 악보가 잿더미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에두아르트는 ‘기억들’에서 이 분서 행위에 대해 병약했던 작은 형 요제프와 생전에 맺은 밀약이라면서 ‘우리 둘 중 하나가 일찍 죽어서 아내가 과부가 될 경우 아내의 부양을 위해 살아남는 형제에게 저작권과 소유권을 넘겨주고, 또 슈트라우스 가문의 후계자들이 음악 활동을 끝낼 때 제3자가 표절이나 도용 등을 못하게 만들기 위해 악보를 없애버리기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합의문 자체는 실존하지도 않은 상태이고 에두아르트 자신만의 일방적 주장이라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소 양상은 달랐지만, 20세기에도 프란츠 레하르와 오스카 슈트라우스를 비롯한 이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계속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던 터라 지나치게 성급하고 경솔한 ‘과거청산’ 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1907년의 분서 이후에는 거의 자택에만 칩거하면서 여생을 보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지병인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유해는 유언에 따라 궁정무도회 감독의 정복이 입혀진 뒤 아버지와 형들이 묻혀 있는 빈 중앙 묘지에 안장되었다.
○ 주요 작품들
헬레나 카드리유 (Helenen-Quadrille op.14)
빠른 폴카 ‘무료 열차!’ (Bahn frei! op.45)
빠른 폴카 ‘전속력으로’ (Mit Dampf op.70)
빠른 폴카 ‘위아래로’ (Auf und davon op.73)
왈츠 ‘멋진 영혼들’ (Fesche Geister op.75)
왈츠 ‘공론’ (Doctrinen op.79)
프랑스풍 폴카 ‘아모르의 인사’ (Amors Gruß op.83)
왈츠 ‘원고’ (Manuscripte op.90)
왈츠 ‘대학생 무도회’ (Studenten-Ball-Tänze op.101)
왈츠 ‘유람여행’ (Lustfahrten op.177)
카르멘 카드리유 (Carmen-Quadrille op.134)
왈츠 ‘판결’ (Verdicte op.137)
프랑스풍 폴카 ‘프라하의 인사’ (Gruß an Prag op.144)
파티니차 왈츠 (Fatinitza-Walzer op.147)
왈츠 ‘인생은 정말 아름다워’ (Das Leben ist doch schön op.150)
프랑스풍 폴카 ‘전화’ (Telephon op.165)
빠른 폴카 ‘제멋대로’ (Außer Rand und Band op.168)
왈츠 ‘발차 신호’ (Glockensignale op.198)
빠른 폴카 ‘가볍고 얇은’ (Luftig und duftig op.206)
프랑스풍 폴카 ‘친애하는 친구’ (Chère amie op.223)
빠른 폴카 ‘기꺼이!’ (Mit Vergnügen! op.228)
빠른 폴카 ‘제동을 걸지 않고’ (Ohne Bremse op.238)
왈츠 ‘유쾌한 이들을 위하여’ (Für lustige Leut’ op.255)
빠른 폴카 ‘속달 우편으로’ (Mit Extrapost op.259)
왈츠 ‘미르테의 마법’ (Myrthenzauber op.272)
참고 =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