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4월 5일, 미국의 배우 그레고리 펙 (Eldred Gregory Peck, 1916 ~ 2003) 출생
앨드리드 그레고리 펙 (Eldred Gregory Peck, 1916년 4월 5일 ~ 2003년 6월 12일)은 미국의 배우이다. 본명은 앨드리드 그레고리 펙 (Eldred Gregory Peck)이다.

–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
.본명: 앨드리드 그레고리 펙 (Eldred Gregory Peck)
.출생: 1916년 4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라호이아(La Jolla)
.사망: 2003년 6월 12일 (향년 87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국적: 미국
.직업: 배우
.학력: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UC 버클리 영문과
.활동: 1941년 – 2000년
.종교: 가톨릭
.가족: 그레고리 펄 펙(1886~1962), 버니스 메이 아이레스(1894~1992)
.배우자: 그레타 쿠코넨(1942 결혼–1955 이혼), 베로니크 파사니(1955 결혼–2012 사망)
.자녀: 4남 1녀, 손주 5남 2녀
열정적인 태도로 단호한 행동을 실천하는 남성성 넘치는 권위 혹은 사회 도덕과 전통적 가치의 대변인을 주로 연기해 전후세대에게 울림을 주었다. 미국과 미국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구현했던 상징으로 여겨진다. 많은 출연작들이 인간의 가능성과 사회적 현실 사이의 복잡성과 모순, 가족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배우 본인과 거의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배우 자신과 밀착된 인물들이 많았다.
“모든 배우들의 위엄있는 아버지.” – 스티븐 스필버그
“펙은 배우들에게 있어서 성실과 정직의 아이콘이다.” – 커크 더글러스
“가장 완벽한 신사였다.” – 폴리 버건

○ 생애 및 활동
어린 시절을 캘리포니아 라 호야 (La Jolla)에서 보낸 펙은 6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는 재혼한 방문판매원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약사인 친부는 야근이 잦았던 탓에 한동안 친할머니 손에 컸다. 10살 때 로스 앤젤레스의 세인트 존스 밀리터리 아카데미 (St. John’s Military Academy)로 보내져 4년을 보내며 자기수련법을 익혔으며 권위 있는 인물 존재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다. 이후엔 아버지 밑에서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주립 샌디에이고 교육대학에 입학했지만 아버지의 열렬한 염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UC 버클리 영문학과와 pre-med로 편입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던 중 연극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는데 연극 특유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동체 분위기에 끌려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pre-med 과정은 그만두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을 엘드리드에서 그레고리로 바꾸고 뉴욕으로 향했다. 일 년만에 순회공연에서 작은 역할들을 따내게 되었고 1942년 “The Morning Star”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해냈다.
펙이 출연했던 연극 대다수는 인기가 없어 금방 막을 내리곤 했지만 펙은 1944년 Vladimir 역을 따내며 영화판에 데뷔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평단의 차가운 반응을 받았지만 두 번째 주연작인 <천국의 열쇠> (1944)에서 과묵한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연기로 아카데미상에서 처음 후보 지명이 되었다.
곧 펙은 조셉 코튼보다 출연료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발탁된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 (1945)로 당대의 섹스심벌이 되었다. 펙은 <로마의 휴일> (1953) 처럼 로맨틱한 역도 잘 어울렸다.

존 웨인의 배역을 이어받은 킹 비더 연출의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1946)에서의 부도덕하고 차가운 인물, <황색 하늘>(1948)의 착한 무법자도 잘 소화해냈다. <권총왕 (The Gunfighter)>(1950) 역시도 존 웨인을 위해 기획된 영화였지만 펙이 대신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엘리아 카잔의 <신사협정 (Gentlemen’s Agreement)>(1947)의 필 그린 (Phil Green)처럼 도덕적 신념이 확고한 인물상은 펙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완고한 한편 잘 보살피기도 하는 가부장상은 (1949), <모비 딕>(1956)이나 <나바론의 요새> 같은 강인한 남성성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앵무새 죽이기>(1962) 이후 역할이 고착화 됐다. 인종차별, 도덕적 정의란 주제를 작은 서부 시골마을 변호사가 겪는 개인적 갈등과 비인간적 조건에 처한 타인을 향한 인류애를 통해 강렬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펙이 출연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는데 아이들의 삶을 묘사하고 가족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연기에 다변화를 주려고 노력한 결과 스릴러, 전쟁물, 서부극 출연이 많아졌다. 그 예가 <맥아더>(1977)와 나치 전범을 연기한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이다.
80년대엔 TV와 영화를 병행했다.
1991년 <케이프 피어>를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거의 물러났으나 85세 때 소극장과 대학을 돌며 배우, 아버지, 유명인사로서의 삶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003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출연 작품
천국의 열쇠, 1944
The Yearling, 1946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 1947 – 필 그린 (Phil Green) 역 – 1947년 11월에 개봉했으며 그해 폭스의 최고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고, 1948년 전체 흥행 8위를 차지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정오의 출격(Twelve O’Clock High), 1949
로마의 휴일, 1953
모비 딕, 1956
아름다운 질투(Designing Woman), 1957 – 로맨틱 코미디. 빈센트 미넬리(Vincente Minnelli) 연출. 포커를 좋아하며 노동자 계층과 어울리는 스포츠 전문 기자(Mike Hagen)와 예술명사들을 대상으로 옷을 디자인하는 상류층 여성(Marilla Brown Hagen, 로렌 바콜)이 만난지 일주일 만에 결혼을 결심하지만 사는 세계가 너무 달라 충돌한다. 여기에 부패한 권투 프로모터(Martin Daylor)의 협박이 얽히면서 일이 더 꼬인다. 돌로레스 그레이(Dolores Gray)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며, 조지 웰즈(George Wells)는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다.
거대한 서부(The Big Country), 1958 – 찰턴 헤스턴, 캐롤 베이커 등 출연.
나바론의 요새, 1961
케이프 피어, 1962
서부 개척사, 1962
The Plains(1851) 챕터에서 프로 도박사로 나와 데비 레이놀즈와 엮인다.
앵무새 죽이기, 1962
오멘, 1976
브라질에서 온 소년(The Boys from Brazil), 1978 – 요제프 멩겔레 역
프랭클린 J. 샤프너 연출. 악마의 씨, 스텝포드 부인들로 유명한 아이라 레빈의 원작 SF 스릴러 소설을 영화화했다. 로런스 올리비에, 제임스 메이슨, 우다 하겐 등에도 출연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