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20일,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피에르 멜빌 (Jean-Pierre Melville, 1917 ~ 1973) 출생
장피에르 멜빌 (프: Jean-Pierre Melville, 1917년 10월 20일 ~ 1973년 8월 2일)은 프랑스의 영화 감독이다.

– 장피에르 멜빌 (Jean-Pierre Melville)
.본명: 장피에르 그룸바크 (Jean-Pierre Grumbach)
.출생: 1917년 10월 20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73년 8월 2일 (55세), 프랑스 파리
.직업: 영화 감독
.부모: 줄스 그룸바크, 베르테 그룸바크
.배우자: 플로렌스 웰시 (1952 ~ 1973)
.저서: Melville on Melville, Choice of arms
전직 레지스탕스로 제 2차 세계대전때 샤를 드 골이 런던에서 조직한 자유프랑스군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종전 후 1946년 <광대의 24시간>이라는 다큐를 연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알랭 들롱 등과 같은 50~70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흔히 ‘감독들의 감독’이라 불리운다.
195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재능있는 영화감독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적인 배경, 카이에 뒤 시네마 그룹에 의해 생긴 비평적 분위기, 막스 오퓔스, 장-피에르 멜빌과 브레송 같은 유럽 작가들의 등장은 혁신적인 분위기를 가능케 했다.
장-피에르 멜빌은 프랑스 독립영화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데뷔작에서부터 잘 드러났는데, 초기에는 문학을 각색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것은 누보로망 작가들의 영향력이기도 하였고, 뒤라스와 같은 이들은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장-피에르 멜빌에게는 누벨바그의 감독들이나 문인 감독들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장-피에르 멜빌이 누벨바그의 감독들이나 누보로망 작가들과 노선이 달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멜빌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소설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가 추구한 것은 갱스터 장르의 새로운 완성이다. 1960년대 중반에 선보인 세편의 작품은 이러한 야심에 도달한 작품들이다. 또한 각각의 영화에서 서사적 기능을 중시했기에 전달에 용이한 스타들을 기용하였다.
장 폴 벨몽도가 주연한 (1963), 리노 벤튜라가 주연한 <두 번째 숨결 : Le Deuxi me Souffle> (1966) 그리고 알랭 들롱이 주연한 <사무라이 : Le Samourai>(1967)가 그 예이다. 1930년대에 그는 미국 스릴러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워왔다.
갱스터영화의 신화학은 사회적인 연구 기반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왜곡된 반영이야말로 진실을 전하는 수단이다. 멜빌은 실제적인 삶의 초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스타 이미지를 빌려 시간을 잃어버린 신화학을 세워나갔고, 비극적 형상을 통해 갈등을 채워갔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후에 멜빌의 영화가 프랑스영화의 고유한 것으로 남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유럽 시장을 겨냥한 상업적인 마인드가 멜빌의 영화에는 있었다.
물론 할리우드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마지막 영화인 <불타는 마약단 : Dirty Money> (1971)에서 설정한 알랭 들롱과 카트린 드뇌브의 콤비는 유럽인들에게도 매혹적인 선택이었다.

○ 생애 및 활동
프랑스 파리 출생. 프랑스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인 그는 1930년대 미국 스릴러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웠으며, 작가 허먼 멜빌을 좋아하여 이름까지 멜빌로 바꾸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6년에 영화제작사를, 1949년에는 촬영소를 설립하여 단편 영화와 장편 영화들을 독립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바다의 침묵>(1947)이나 <무서운 아이들>(1948) 같이 소설을 각색한 작품들을 주로 제작했다.
특히 프랑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장 콕도의 소설 <앙팡 테리블 (무서운 아이들)>을 영화화하면서 프랑스 영화계의 전면에 부상한다.
그 후 멜빌은 20년 동안 지적이고 자극적인 범죄영화를 만들어왔다.
1955년 갱영화 <도박꾼 밥>을 선보인 뒤부터는 하드보일드 영화 제작에 몰두하였다.
장 피에르 멜빌은 누벨바그의 감독들이나 문인 감독들과는 다른 전략을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누벨바그의 감독들이나 누보로망 작가들과 노선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갱스터라는 자신만의 영화언어를 통해 유럽영화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가 추구한 것은 갱스터 장르의 새로운 완성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선보인 세편의 작품은 이러한 멜빌의 야심에 도달해있는 작품들이다.
장 폴 벨몽도를 주연으로 내세운 <밀고자>, 리노 벤츄라가 주연한 <두번째 숨결>, 알랭 들롱 주연의 <사무라이>(1967)가 바로 그 작품이다.
갱스터 영화의 신화학은 사회적인 연구기반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왜곡된 반영이야말로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멜빌은 스타 이미지를 빌려 시간을 잃어버린 신화학을 세워나갔고, 비극적 형상을 통해 갈등을 채워나갔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후에 멜빌의 영화가 프랑스영화의 고유한 것으로 남는 데 크게 기여한다.
멜빌의 초기 영화는 1950년대 말 프랑스 영화계를 휩쓸었던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자신이 직접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에 소설가로 출연하기도 했다.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은 <형사>(1972)를 유작으로 남기고 1973년 세상을 떠났다.

○ 작품 목록
바다의 침묵 (1949)
무서운 아이들 (1950)
이 편지를 읽을 때 (1953)
도박사 봅 (1956)
레옹 모랭 신부 (1961)
밀고자 (1963)
페르쇼가의 장남 (1963)
두번째 숨결 (1966)
한밤의 암살자 (1967)
그림자 군단 (1969)
암흑가의 세 사람 (1970)
리스본 특급 (1970)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