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월 27일, 핀란드 내전 (Suomen sisällissota) 시작
핀란드 내전 (핀: Suomen sisällissota)은 핀란드 대공국이 러시아 제국에서 독립하며 신생 핀란드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내전이다.
핀란드 내전은 제1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일부였다. 내전 주체는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적군과 반사회주의적 핀란드 원로원이 이끄는 백군이다.
적군을 지지하는 준군사조직 적위대는 산업 노동자와 전원 노동자로 이루어졌으며 핀란드 남부 주요 도시와 산업 중심지를 장악했다.
백군을 지지하는 준군사조직 백위대는 농민과 중상류 계급으로 이루어져 핀란드 중부와 북부 전원 지대를 장악했다.
1917년 러시아 치하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핀란드 사회는 빠른 인구 증가, 산업화, 비도시화 등 혼재해 있었고 광범한 노동운동이 발생하고 있었다. 핀란드 정치와 행정 체계는 민주화와 근대화에서 불안정한 단계에 있었지만, 사회경제적 환경과 민족문화적 인민 상태는 점차 개선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말미암아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자 좌익 핀란드 노동운동계와 핀란드 보수세력 사이 긴장이 고조하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독립을 선언했으나 국가 분열을 막지 못했고 내전으로 치달았다.
적군은 소비에트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지원 받아 1918년 2월 총공세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백군은 3월에 역공을 시작했고, 4월에 독일 제국 육군 병력이 백군에 증원되었다. 핀란드 내전에서 결정적 군사행동은 탐페레 전투, 비푸리 전투, 헬싱키 전투, 라흐티 전투가 있다. 앞 두 전투는 백군이 이겼고, 뒤 두 전투는 독일군이 이겨서 모두 반공주의 세력이 승리하였다. 적군과 백군 모두 테러리즘을 일삼았다. 또 포로수용소에서 질병과 기아로 많은 적군이 죽었다. 핀란드 내전 동안 총 39,000여 명 죽었으며, 그 가운데 핀란드인이 36,000여 명이었다. 당시 핀란드 총인구가 3,000,000명이었으므로 인구 1.2%가 죽었다는 의미다.
내전 종료 후 핀란드는 독일 제국 보호 속에서 러시아 영향력을 물리쳤다. 보수적인 핀란드 원로원은 핀란드 왕국을 세우려 했으나 서부전선에서 독일이 패배하며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결과 핀란드는 민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핀란드 내전은 수년에 걸쳐 핀란드 국민을 분열시켰으며 핀란드 역사에서 가장 격렬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핀란드 사회는 중도정치와 종교문화를 통한 장기적인 사회적 타협, 그리고 1차대전 종전 후 경제적 부흥을 통해 재통합되었다.
1918년 핀란드 내전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는 “자유 전쟁(the Freedom War)”, “교우 전쟁(the Brethren War)”, “핀란드 혁명(the Revolution)”, “계급 전쟁(the Class War)”, “적군의 난(the Red Rebellion)” 등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