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4일, 영국의 군인•시인 윌프레드 오언 (Wilfred Edward Salter Owen, MC, 1893 ~ 1918) 별세
윌프레드 에드워드 솔터 오언 (Wilfred Edward Salter Owen, MC, 1893년 3월 18일 ~ 1918년 11월 4일)은 영국의 시인이자 군인으로 생을 마쳤다.
– 윌프레드 오언 (Wilfred Owen)
.본명: 윌프레드 에드워드 솔터 오언 (Wilfred Edward Salter Owen)
.출생: 1893년 3월 18일, 잉글랜드 슈롭셔 주 오스웨스트리
.사망: 1918년 11월 4일 (25세), 프랑스 썽브흐롸스 꺄날
.국적: 영국
.직업: 시인
.참전: 1차 세계대전
영국의 시인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로, 전쟁 중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시를 많이 썼다.
휴전 1주일 전에 전투에서 사망한 비운의 사나이다.
가장 유명한 시는 Dulce et decorum est로, 이외에도 지그프리드 사순과의 교류가 많이 알려져있다.
○ 생애 및 활동
잉글랜드 슈롭셔 주 태생인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을 다룬 주요 시인들 중 한 명이다. 참호와 독가스전의 공포에 대한 그의 전쟁 관련 시들은 주로 그의 멘토였던 시그프리드 서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당대의 전쟁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과 이전에 저술된 애국적 내용의 시들의 삭막한 대조에 기초한다.
대표작으로 ‘고귀한 영예’, ‘전사한 젊은이들을 위한 송가 (Anthem for Doomed Youth)’가 있다. ‘전사한 젊은이들을 위한 송가’는 영국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전쟁 레퀴엠’을 작곡할 때 가사로 사용되었다.
1915년 10월 21일 입대한 후 7개월 간 에식스 주에 있는 헤어 홀 캠프에서 훈련받았다.
1916년 6월 4일 맨체스터 연대의 소위로 배치받았다. 처음에 오언은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부하들을 무시했고 모친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무표정한 바보들’ 이라고 쓰곤 했지만 트라우마틱한 경험을 겪고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포탄 구멍에 빠지고 며칠 동안 무의식상태로 방치되어 뇌진탕을 앓았다. 그 후 신경 쇠약을 진단받았고 에든버러에 있는 크레이그록하트 전쟁 병원에 입원했다.
이때 오언의 여생에 큰 영향을 준 시그프리드 서순의 영향을 받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에든버러의 예술 문학 모임에서 사람들을 사귀었고 에든버러 빈민 지역에 있는 타인캐슬 고등학교에서 잠시 일했다.
11월 힘들지 않은 근무는 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퇴원한다. 노스요크셔 주 스카보로에서 만족스럽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1918년 3월 리펀에 있는 사령부대로 배속된다.
리펀에 있는 동안 그는 시작을 했고 리펀 대성당에서 25번째 생일을 기념하기도 했고 그 후 프랑스 전선에 복귀한다.
오언은 제1차 세계 대전 휴전 협정이 맺어지기 1주일 전인 1918년 11월 4일, 상브르-와즈 (Sambre-Oise) 운하 도하작전 중에 전사했고 중위 계급이 추서됐다.
모친은 종전일인 11월 11일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한다.
오언은 프랑스 오드프랑스 노르주에 매장됐다.
○ 참호전의 비참함, 독가스전의 공포, 전쟁의 허망함 등 노래
전쟁 중 발표된 시는 보통 전쟁을 고무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이 많은데 오언의 시는 죽어서 뒤틀어진 전우의 시체를 옆에 두고 싸워야하는 참호전의 비참함, 독가스전의 공포, 전쟁의 허망함 등을 노래했다.
- 허무 (Futility)
“저 병사를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라./햇빛은 그를 부드럽게 깨웠다./고향에서는, 씨 뿌리는 일이 남아있다고 속삭이면서/ 프랑스에 와서도 눈이 쌓이는 오늘 아침까지/ 언제나 태양은 그를 깨웠다./이제 무엇이 그를 깨울 수 있는지/저 친절한 태양은 알고 있으리라.
태양이 어떻게 씨앗을 싹트게 하는지 생각해보라./ 차가운 별의 진흙도 깨운 적이 있다./그토록 어렵게 만들어진 팔다리, 아직도 민감하고 따듯한 허리/ 너무 굳어 움직일 수 없는가?/이렇게 되려고 진흙이 크게 자란 것인가?/오! 무엇이 이 얼빠진 햇볕으로 하여금 애를 써서/ 대지의 잠을 깨우게 했는가?“ (허무, Futility. 전문)
○ 전사한 젊은이들을 위한 송가 (Anthem for Doomed Youth)
‘전사한 젊은이들을 위한 송가’ (Anthem for Doomed Youth)는 윌프레드 오언의 대표작이다. 이 시는 후에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전쟁 레퀴엠’을 작곡할 때 가사로 사용되었다.
“가축처럼 죽어간 저들에게 조종은 어떤 것인가?/오직 소총의 괴물 같은 분노/ 오직 장총이 발사하는 빠른 총소리만이/ 그들의 성급한 기도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이제 그들을 조롱하는 소리는 없다. 기도나 종소리도 없다./애도의 소리조차 없다. 저 합창 소리를 제외하고는/울부짖는 포탄들의 날카롭고 정신을 빼는 합창/또 슬픔에 잠긴 출생지에서 부르는 나팔 소리 말고는.
그들 모두를 잘 보내기 위해 어떤 촛불이 들려지겠는가?/ 소년들의 손이 아니라 눈동자에 들려서/작별을 고하는 성스러운 불길로 빛나리라./소녀들의 이마에서 발하는 창백함이 관을 덮는 천이 되리라/그들이 손에 든 꽃은 참는 자들의 슬픔이 될 것이요/천천히 내리는 황혼은 내려지는 차양이 될 것이라.”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