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4월 9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Sydney Opera House)를 설계한 예른 웃손 / 우드손 (Jørn Oberg Utzon, 1918 ~ 2008) 출생
예른 오베르 웃손 / 우드손 (Jørn Oberg Utzon, 1918년 4월 9일 ~ 2008년 11월 29일)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Sydney Opera House)를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한 덴마크의 건축가이다.
– 예른 웃손 / 우드손 (Jørn Oberg Utzon)
.출생: 1918년 4월 9일, 덴마크 쾨벤하운
.사망: 2008년 11월 29일, 덴마크 헬싱괴르
.배우자: 리즈 웃손
.자녀: 얀 웃손, 린 웃손, 킴 웃손
.저서: Sydney Opera House, Jørn Utzon Houses, Additiv arkitektur, Utzon’s Own Houses 등
○ 생애 및 활동
예른 웃손은 코펜하겐에서 선박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덴마크에서 자랐다. 195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설계 경기에서 그의 첫 국외 설계이며 출품작이 설계 기준에도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당선되었다. 그가 제출한 디자인은 예비 드로잉보다 약간 나은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에로 사리넨 (Eero Saarinen)은 그를 “천재”로 묘사하면서 다른 어떤 선택도 양도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에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는 그를 무시해버렸다.
여러 해 동안 웃손은 그의 원래 개념적인 설계에서 차차 주요한 변화들을 이끌어냈으며, 점차 두 개의 홀을 덮는 거대한 껍데기를 건설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는데 원래의 타원형의 껍데기를 구의 복잡한 부분들에 기초를 둔 디자인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웃손은 자신의 설계가 오렌지의 껍질을 벗기는 단순한 행위에서 따왔다고 했는데, 건물의 14개의 껍질은 다 결합하면 완벽한 구의 형상이 될 것이었다.
비록 웃손이 이 홀들의 실내에 대해 눈부신 계획을 갖고 있었더라도, 그는 그 디자인의 이 부분을 실현시킬 능력이 없었다. 1965년 중반에 로버트 애스킨 (Robert Askin)이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로 당선되어 자유당 주정부가 들어섰고, 웃손은 새 공공부문 장관인 데이비스 휴스 (Davis Hughes)와 갈등을 겪었다. 공사비용 초과를 억제하려고 했던 휴스는 웃손의 디자인, 스케줄, 예상비용 등에 의문을 가졌고 결국은 웃손에게 돈을 대는 것을 중단했고, 1966년 2월 수석 건축가에서 사퇴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웃손은 며칠 뒤 비밀리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페라 하우스는 결국 완공되었고, 1973년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개방되었다. 그러나 건축가는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고, “예른 웃손”이란 이름도 언급되지 않았다.
2003년 웃손은 시드니 대학교에서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디자인으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웃손은 자신이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여행하기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 학위를 수락했다. 웃손은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명예 훈작 (Companion of the Order of 오스트레일리아) 작위와 시드니 시의 열쇠를 받았다. 웃손은 또 2000년에 한 계약에서 오페라 하우스 (특히 리셉션 홀을)를 재설계하는데 참여하기로 했다. 또한 2003년에는 건축에서 최고의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
2006년 3월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웃손이 1966년 이래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무르지 않은 마지막 몇 년간 웃손에 의해 건설된 서쪽의 열주 (늘어선 기둥들) 증축부분을 개방했다. 웃손의 아들인 얀 (Jan)은 개관식에 대신 참석하여 자신의 아버지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먼 여행을 하기에는 지금 너무 늙었지만, 그는 오페라하우스에 살고 숨 쉬고 있으며, 창조자로서 그는 그것을 보고 눈을 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7년 6월 29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2008년 11월 29일, 웃손은 일련의 수술 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결국 그는 완성된 오페라 하우스를 직접 보지 못한 채 별세했다.
○ 건축 작품
– 완공된 주요 프로젝트들
워터타운, 덴마크 본홀름 스바네케 , 1949-1951
건축가의 자택, 덴마크 Hellebæk, 1950-1952
Middelboe house, 덴마크 Holte , 1953-1955
Kingohusene, courtyard housing, 헬싱괴르 (Helsingør), 1956-1960 image
Elineberg Housing, 스웨덴, 헬싱보리 (Helsingborg), 1954-1966. Built by Swedish partners Erik and Henry Andersson
Planetstaden housing project, 스웨덴 룬드 (Lund), 1956-1958. Built by Swedish partners Erik and Henry Andersson.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1956-1973
Fredensborghusene, 마당 주거, 덴마크 프레덴스보리 (Fredensborg), 1959-1965
Melli 은행, 이란 테헤란, 1959-1960
Hammershøj care centre, 덴마크 헬싱괴르, 1962-1966. Built by Birger Schmidt. image
Semtex Brynmawr, 1967-2001.
Bagsværd 교회, 덴마크 Bagsværd, 1968-1976
Espansiva building system, 조립식 독신가정 주택들, 덴마크, 1969
Can Lis, 건축가의 자택, 스페인 마요르카, 1971-1973
쿠웨이트 국회,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 1972-1984
Paustian 가구점, 덴마크 코펜하겐, 1985-1987
Can Feliz, 스페인 마요르카, 1991-1994
– 지어지지 못한 프로젝트들
고등학교, 덴마크 헬싱괴르, 1958-1962
건축가의 자택,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Bayview, 1963-1965
예술가 아스게르 요른 (Asger Jorn)를 기념하는 박물관, 덴마크 실케보르 (Silkeborg), 1963
극장, 스위스 취리히, 1964-1970
Jeita 극장, 레바논, 1968.
Stadium, Jedda, 사우디아라비아, 1969
– 저술
Arkitektur (magazine), Copenhagen 1947 #7-9, essay Tendenser i nutidens arkitektur by Jørn Utzon and Tobias Faber
Arkitektur (magazine), Copenhagen 1970 #1, essay Additiv arkitektur by Jørn Utzon
Zodiac 5 (magazine), Milan 1959
Zodiac 10 (magazine), Milan 1962, essay Platforms and Plateaus: Ideas of a Danish Architect by Jørn Utzon
Zodiac 14 (magazine), Milan 1965
Sigfried Gideon: Space, Time and Architectur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7
Kenneth Frampton: Studies in Tectonic Culture. Cambridge, Mass. & London: MIT-Press, 1995.
Françoise Fromonot: Jørn Utzon, The Sydney Opera House. Corte Madera, California: Gingko Press, 1998.
Richard Weston: Utzon – Inspiration, Vision, Architecture. 덴마크: Edition Bløndal, 2002.
J.J. Ferrer Forés: Jørn Utzon. Obras y Proyectos. Works and Projects. Spain: GG 2006.
○ 시드니오페라하우스 건축 이야기
시드니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의 상징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 하나로 손 꼽힌다. 1940년대 말, 오페라와 콘서트를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의 필요성을 절감한 시드니 시민들은 주 정부에 극장 설립을 의뢰했다.
뉴사우스웨일즈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1957년 국립 오페라 하우스 설계를 공모했고, 이 공모전에는 전 세계 32개국에서 232점의 작품이 응모 했는데, 그 중 덴마크 건축가 예른 웃손 (Jørn Oberg Utzon, 1918 ~ 2008)의 설계가 최종 선정되었다.
그러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건설 기간과 공사비에 문제가 있었다. 원래 2년으로 예정 되었던 건설기간이 16년으로 연장되었고, 건축비용은 원래 350만 달러였지만 최종적으로 5,700만 달러가 예상되었다. 공사비가 증가한 것은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지붕을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 현실적인 공사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각계의 기부금과 오페라하우스 복권을 발행하여 추가 예산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공사비보다 15배가 추가 되었음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964년 정부가 바뀐 후 새 정부는 우드손에게 실내 공사비를 줄일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우드손이 한마디로 이를 거부하자 건축주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우드손을 건설에서 제외하고 세 명의 젊은 오스트레일리아 건축가 홀 · 토드 · 리틀모어사에게 작업을 맡겼던 것이다. 우드손은 시드니를 떠나면서 다시는 자신이 설계한 오페라하우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공사는 엄청난 파문으로 일그러졌지만 16년이 흐른 후 서로 다른 높이의 하얀 조개껍질 열 개 (가장 높은 것은 68미터)가 시드니 하늘에 솟아올랐다.
지붕은 무게가 15만 8,000톤이고 곰팡이가 슬지 않아 닦을 필요가 없는 스웨덴 타일 100만여 개로 덮었다.
조개껍질 지붕 아래에는 2,679석을 갖춘 콘서트홀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식 오르간이 설치 되었다. 1973년 10월 20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되어 더욱 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우드손은 자신이 공언한 대로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도 논란이 무척 많았지만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4000여 년 동안이나 세계의 경이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그러하리라고 믿습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