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2월 20일, 쿠르드어 시인 딜다르 (Dildar, 1919 ~ 1948) 출생
딜다르 (쿠: Dildar, 1919년 2월 20일 ~ 1948년)는 쿠르드어 시인 겸 정치 운동가였다. 키르쿠크 주 키르쿠크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바그다드로 이사 가서 법을 공부했다. 그 후 그가 쓴 시들은 쿠르드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생애 및 활동
- 출생과 학업
Dildar는 1918년 2월 20일 오스만 제국의 Mosul Vilayet에 위치한 Koy Sanjaq 마을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그는 란야 (Ranya)에서 학교를 다녔고 키르쿠크 (Kirkuk)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바그다드로 이주했다.
법을 공부하며 시를 썼다.
- 문체
그의 시 중 다수는 정량적 리듬과 단운율을 갖춘 고전 쿠르드어 스타일로 작성되었다.
그의 시는 아르빌과 바그다드의 Ronākī 및 Galawēz 문학 저널에 게재되었다.
게다가 그는 쿠르드 시에 낭만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 법
그는 1945년에 졸업해 가난한 사람들과 농부들을 변호하고 쿠르드족 문제 전반을 옹호하기 위해 변호사로 일했다.

- 정치적 활동
그는 1938년에 새로 결성된 히와당 (Hîwa Party)에 가입했는데, 이 당은 “통합되고 자유로운 쿠르드족을 추구하는 법적으로 인정된 최초의 쿠르드족 조직”이 되었다.
Dildar는 이란 정부에 반대하는 Qazi Muhammad가 이끄는 혁명에 참여하기 위해 이란의 쿠르디스탄으로 이주했으며, 이로 인해 이란에서 체포를 당했다.
- 감옥
체포된 후 그는 이란의 감옥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1938년에 “오 적”을 의미하는 “Ey reqîb”라는 시를 썼으며 교도관을 언급하고 쿠르드족이 살아 있으며 쿠르드족을 위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좌절감 표현과 쿠르디스탄 점령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대결은 “Ey reqib”를 쿠르드족의 자유 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 죽음과 유산
딜다르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아르빌 (Erbil)에 묻혔다.
그는 자신의 시 “Ey Reqîb”가 쿠르드 국가로 채택되는 것을 보기 원했다.
Ey Reqîb는 1946년에 단명한 마하바드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처음으로 연주되고 불려졌다.
오늘날 이 노래는 쿠르드 지역의 공식 국가로 연주되고 있으며 쿠르드 4개 지역의 쿠르드족이 널리 채택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