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6월 19일, 미국-영국 채무협정 체결 : 미국에 대한 영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채무를 46억 달러로 확정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전쟁 배상 문제는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의 피해와 함께 미국에서 빌린 전쟁 채무를 독일로부터 배상을 받아 상환할 생각이었다.
1차대전 승전국 프랑스와 영국은 전비 지출로 빚더미에 앉게 됐다. 두 나라는 영연방 등 각자의 해외 식민지에서 병력과 물자를 징발해 썼지만 미국에 진 빚만 프랑스 40억 달러, 영국 46억 달러였다. 전후 베르사이유 조약(1919.5.7)으로 승전국들은 독일 영토를 조금씩 나눠 챙겼지만, 절실히 원한 건 빚을 갚고 경제를 재건할 현금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독일에 귀속시킨 조약 231조에 근거, 물적 손실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국 미국 정부 역시 의회의 배상요구 압력이 거셌다. 1921년 5월 1일, 미-영-프 주도의 배상위원회는 독일에 1,320억 마르크의 배상액을 전액 금으로 지불할 것을 결정,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거기에는 물론 독일 재무장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자는 의도도 반영됐다.
영국이 독일의 해외 식민지를 점령한 것에 비해 프랑스는 라인강을 프랑스의 안전을 위해 독일과 완충지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결과로 독일에 할양했던 알자스와 로렌을 비롯하여, 자르 탄광지대의 프랑스 양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요구는 영국과 미국의 조정으로 타협안으로 만들어졌다.
1923년 6월 19일에 체결된 영국-미국 채무협정으로 확정된 영국의 전쟁 부채는 46억 달러, 1926년 4월 26일 체결된 미국-프랑스 채무협정에 의해 확정된 전쟁 채무는 40억 달러였다.
두 나라의 채무만 해도 벌써 86억 달러였고, 나머지 국가들까지 합하면 100억 달러였다.
게다가 윌슨은 미국 하원으로부터도 거액의 배상금을 독일에 요구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