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월 30일, 노르웨이계 미국인 과학자 ‘컴퓨터 마우스의 발명자’ 더글러스 엥겔바트 (Douglas C. Engelbart, 1925 ~ 2013) 출생
더글러스 엥겔바트 (Douglas C. Engelbart, 1925년 1월 30일 ~ 2013년 7월 2일, 오리건주 출생)는 노르웨이/스웨덴계 미국인 발명가이다.
– 더글러스 엥겔바트 (Douglas C. Engelbart)
.출생: 1925년 1월 30일, 미국 오리건 포틀랜드
.사망: 2013년 7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애서튼
.배우자: 카렌 오리어리 (2008 ~ ), 발라드 엥겔바트 (1951 ~ 1997)
.자녀: 크리스티나 엥겔바트, 노만 엥겔바트, 게르다 엥겔바트, 다이아나 엥겔바트
.학력: 캘리포니아 대학교 (1955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1952년), 오리건 주립 대학교 (1948년) 등
.알려진 분야: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협업 소프트웨어, Interactive computing
.수상: 튜링상, 국립 기술혁신 메달, IEEE 존 폰 노이먼 메달, Lemelson–MIT Prize 등
그는 특히 컴퓨터 마우스의 발명자로 유명하다.
또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하이퍼텍스트, 네트워크 컴퓨터 등 인간과 컴퓨터 상호 작용 분야의 선구자이다.
○ 생애 및 활동
더글러스 엥겔바트 (Douglas C. Engelbart, 1925 ~ 2013)는 1925년 1월 30일 미국 오리건주에서 출생했다.
1948년 오레건 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1953년 UC 버클리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5년에는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전자공학을 전공,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레이더 기술자로도 활약하고 나중에는 미정부의 우주항공실험실에서도 일하며 경력을 쌓게된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필리핀의 무선전기 기사로 해군에 복무하던 시절, 버니바 부시 (Vannevar Bush)가 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As We May Think)’란 글에서 큰 영감을 받는다. 전쟁이 끝나고, 영감을 실현시키기 위해 UC 버클리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55년 박사학위를 받는다. 여기서 CALDIC을 만드는 데 관여 했으며 이후 1년간 박사 학위 논문에서 만든 기술을 상업화 하려는 저장기기 제조 회사를 설립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후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휴위 크레인과 함께 자기 논리 장치의 개발에 참여했다.
평소에도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스탠포드 연구소에서 자신만의 실험실인 증강연구센터를 차리게 된다. 이후 자신의 동료인 빌 잉글리시와 연구를 통해 1968년 최초의 마우스를 개발하게 되었다. 위에 그가 들고 있는게 바로 그것. 몸통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수직으로 맞물린 톱니바퀴로 커서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이 덕분에 GUI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후 개선을 통해 수많은 가정용 컴퓨터 함께 보급되었으나 정작 그는 1987년 특허가 만료되는 날까지 로열티를 받지 못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업적을 쌓는데 마우스 뿐만이 아니라 최초의 화상 원격 회의를 열고 인터넷 언어로 발전하게 되는 문자 기반 연결 이론 및 e메일이나 화상회의 등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 (ARPANET) 및 워드 개발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동안 업적을 인정받아 1997년 레멀슨-MIT 상과 튜링상을, 2000년에는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기여한 공으로 미국 국립 기술 훈장을 받았으며, 2005년 부터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3년 7월 2일 신부전으로 인해 88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 주요 업적
- 마우스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위한 XY 위치 지시기 (x,y position indicator for a display system), 통칭 마우스 (computer mouse)는 평면 위에서 2차원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 컴퓨터 입력장치이다. 손에 잡히는 정도의 크기의 마우스를 손으로 움직이면 컴퓨터 화면상의 화살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마우스에 달린 단추를 한 번 누르거나, 연속으로 두 번 누르면 화살표가 가리키는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동작을 실행시키는 식으로 입력 기능을 수행한다.
트랙볼(track ball)이라고 명명된 초기 형태의 마우스는 1952년 캐나다 해군의 군사 비밀 프로젝트인 DATAR(Digital Automated Tracking and Resolving)에 참여했던 톰 그랜스톤(Tom Cranston), 프레드 롱스태프(Fred Longstaff) 그리고 케년 테일러(Kenyon Taylor)에 의해 발명되었다. 여기에는 캐나다의 파이브 핀 볼링(five pin bowling)에서 사용되는 규격 구(球)가 쓰였고 비밀 군사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특허 출원되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우스는 스탠퍼드 연구소 (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e)의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그의 동료 빌 잉글리시 (Bill English)의 도움을 받아 1968년 발명하였다. 최초의 마우스는 기본적으로 나무 상자에 버튼이 하나 달렸고, 아래에는 2개의 바퀴가 달린 형태였다. 또한 90도 각도 양옆, 위아래 방향으로만 이동이 가능했다. 두 사람은 최초 모델이 뒷부분에 꼬리 같이 생긴 코드가 부착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보통 생쥐와 닮았기 때문에 이 장치를 마우스로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 하이퍼텍스트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초본문, 하이퍼본문)는 참조 (하이퍼링크)를 통해 독자가 한 문서에서 다른 문서로 즉시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이다. 주로 컴퓨터나 다른 전자기기들을 통해 표시된다. 하이퍼텍스트라는 낱말은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이자 철학자인 테드 넬슨이 처음 고안하여 쓰이게 되었다.’hyper (건너편의, 초월, 과도한)’와 ‘text’를 합성하여 만든 컴퓨터 및 인터넷 관련 용어로서, 파생텍스트라고도 한다. 인터넷과 결합하여 HTML의 주된 구성요소가 되었다. 기존의 문서가 순차적이면서 서열형 구조라면, 하이퍼텍스트는 링크에 따라 그 차례가 바뀌는 임의적이면서 나열형인 구조를 가진다. 즉, 출판된 책처럼 작가의 의도대로 사용자가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문서들을 어떠한 행위 (클릭)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하이퍼텍스트의 등장은 검색엔진과 더불어 정보습득의 새로운 장을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문학, 특히 하이퍼서사(하이퍼픽션)라는 새로운 예술장르를 탄생케 하였다. 웹이라는 것은 컨텐츠들이 하이퍼텍스트로 묶인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가 쓰인 기술들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HTML과 HTTP이다. HTTP는 하나의 프로토콜으로서, 이 통신규약을 이용해서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이 HTTP로 HTML 문서가 전달될 수 있다.
- 협업 소프트웨어
협업 소프트웨어, 혹은 그룹웨어 (groupware)는 여러 사용자가 각기 별개의 작업 환경에서 통합된 하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소프트웨어이다. 로터스 소프트웨어의 로터스 노츠 (Lotus Notes)가 그 효시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협업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증대되었다. 예를 들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일정을 기록함으로 인해 일정 기록이 매우 유용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룹웨어의 확장으로 협업 미디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여러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웹사이트 내의 정보를 생성하고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다. 협업 미디어의 예로는 위키와 슬래시닷 (slashdot)을 들 수 있다.
- 인터렉티브 컴퓨팅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