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월 29일, 대한민국 시인•평론가 천상병 (千祥炳, 1930 ~ 1993) 출생
시인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본관은 영양 (潁陽), 호는 심온 (深溫), 2남 2녀 중 차남이다.
– 천상병 (千祥炳)
.출생: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
.사망: 1993년 4월 28일 (63세), 대한민국 서울에서 간경화로 병사
.직업: 시인, 문학평론가, 아동문학가
.국적: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중퇴
.종교: 개신교 → 천주교 (세례명 : 시몬)
.필명: 아호는 심온(深溫)
.장르: 시문학, 수필, 평론, 동화
.배우자: 목순옥
.자녀: 없음
대한민국의 문학인이자 시인이다.
〈귀천〉을 비롯한 여러 명시를 남긴 현대 문학계의 거성으로, 대체로 순수한 마음으로 인생을 노래하는 시를 남겼다. 그에 걸맞게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수차례 전기고문을 당한 탓에 이후 30여년의 세월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았다.
술, 그 중에서도 특히 막걸리를 즐겨 마셨으며 문학계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대단한 주당이자 기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장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보이는 그의 어록과 기행만 모아 보아도 책 몇권은 쓸 수 있을 정도이다.
○ 생애 및 활동
일본 효고현 [兵庫縣] 히메지시 [姬路市]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귀국하여 마산에서 성장하였다. 1955년 마산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43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2년 목순옥 (睦順玉)과 결혼하여 비로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 뒤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천상병의 문단 활동은 마산중학교 5학년 때인 1949년 7월 죽순 (竹筍)에 시 「공상 (空想)」 외 1편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6·25 중에는 송영택(宋永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작품’ (新作品)을 발간, 여기에 시를 발표하였다.
이어 1952년 문예 (文藝)지에 시 「강물」· 「갈매기」 등으로 추천을 받았고, 1953년 같은 잡지에 평론 「사실의 한계: 허윤석론 (許允碩論)」, 1955년 『현대문학』에 「한국의 현역대가 (現役大家)」 등을 발표하였다.
가난과 무직, 주벽, 무절제한 생활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천상병은 1971년 문우들의 주선으로 제1시집 『새』를 뒤늦게 발간하였다. 그 뒤 제2시집 『주막에서』(1979)와 제3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제4시집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제5시집 『요놈 요놈 요이쁜 놈』(1991)을 펴냈다.
그밖에 저서로 3인 시집 『도적놈 셋이서』(1989), 시선집 『귀천 (歸天)』(1989)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1991), 문학선 『구름 손짓하며는』(1985),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1990),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 등이 있다. 유고집으로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1993)와 수필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1994)가 있다.
1993년 4월 28일 간경화로 별세했다.
– 작품세계
천상병의 시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서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순수성을 되비쳐 보여준다. 동심에 가까운 이러한 순진성은 가난과 죽음, 고독 등 세상사의 온갖 번거로움을 걸러내고 있으며 일상적인 쉬운 말로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1945년 일본에서 귀국, 마산에 정착했다. 1949년 마산 중학 5년 재학 중 당시 담임 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1950년 미국 통역관으로 6개월 근무하였으며, 1951년 전시 중 부산에서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하였다. <문예>지 평론 “나는 겁하고 저항할 것이다”를 전재함으로써 시와 평론 활동을 함께 시작하였다. 1952년 시 ‘갈매기’를 <문예>지에 게재한 후 추천이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1954년 서울대 상과대학을 수료하였으며, 1956년 <현대문학>지에 집필을 시작으로 외국서적을 다수 번역한 바 있다. 1964년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약 2년 간 재직하다가 1967년 동백림 사건(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 시립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 사이 유고시집 <새>(조광)가 발간되었으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유고시집이 발간된 특이한 시인이 되었다. 1972년 친구 목순복의 누이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한 후 1979년에 시집 <주막에서>(민음사),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오상사)를, 1985년에 천상병 문학선집 <구름 손짓하며는>을, 1987년에 시집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일선)을 출간했다. 1988년 간경화증으로 춘천 의료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도중,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통고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였다.
1989년 시집 <귀천>(살림), 공동시집 <도적놈 셋이서>(안의), 1990년 수필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강천), 1991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놈>(답게), 1993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을 간행하였다.
○ 시 모음
귀천 _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 하리라
갈대 _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갈매기 _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이 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강물 _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구름 _ 천상병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 수놓네.
길 _ 천상병
가도가도 아무도 없으니
이 길은 無人의 길이다.
그래서 나 혼자 걸어간다.
꽃도 피어 있구나.
친구인 양 이웃인 양 있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꽃의 생태여
길은 막무가내로 자꾸만 간다.
쉬어가고 싶으나
쉴 데도 별로 없구나.
하염없이 가니
차차 배가 고파온다.
그래서 음식을 찾지마는
가도가도 無人之境이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참 가다가 보니
마을이 아득하게 보여온다.
아슴하게 보여진다.
나는 더없는 기쁨으로
걸음을 빨리빨리 걷는다.
이 길을 가는 행복함이여.
나는 행복합니다 _ 천상병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
텔레비젼의 희극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나의 가난은 _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난 어린애가 좋다 _ 천상병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날개 _ 천상병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눈_ 천상병
고요한데 잎사귀가 날아와서
네 가슴에 떨어져간다.
떨어진 자리는 오목하게 파인
그 순간 앗 할 사이도 없이
네 목숨을 내보내게 한
상처 바로 옆이다.
거기서 잎사귀는
지금 일심으로
네 목숨을 들여다보며 너를 본다.
자꾸 바람이 불어오고
또 불어오는데
꼼짝 않고 상처를 지키는 잎사귀
그 잎사귀는 눈이다 눈이다.
맑은 하늘의 눈 우리들의 눈 분노의
너를 부르는 어머님의 눈물어린 눈이다.
들국화 _ 천상병
신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막걸리 _ 천상병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 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 _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봄을 위하여 _ 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회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약속 _ 천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을 가도 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밤에 _ 천상병
수만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하늘에,
하나, 둘, 셋, 별이 흐른다.
할아버지도
아이도
다 지나갔으나
한 청년이 있어, 시를 쓰다가 잠든 밤에……
오월의 신록 _ 천상병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푸른 것만이 아니다 _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은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실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는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한가지 소원(所願) _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들어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 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컷 살았나 싶다.
별다를 불만은 없지만,
똥 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 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