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3일, 우루과이의 제46대 대통령 호세 무히카 (José Alberto Mujica Cordano, 1935 ~ 2025) 타계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스: José Alberto Mujica Cordano, 1935년 5월 20일 ~ 2025년 5월 13일)는 우루과이의 정치인이다.
무히카는 2025년 5월 13일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José Alberto Mujica Cordano)
.출생: 1935년 5월 20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사망: 2025년 5월 13일 (89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국적: 우루과이의 기 우루과이
.정당: 광역전선
.배우자: 루시아 토폴란스키
.자녀: 없음
*우루과이의 제46대 대통령
.임기: 2010년 3월 1일~2015년 3월 1일
.부통령: 다닐로 아스토리
.전임: 타바레 바스케스(45대) / 후임: 타바레 바스케스(47대)
2010년 3월 1일부터 우루과이의 대통령직에 취임을 했지만 2015년 3월 1일에 후임자로 지목된 타바레 바스케스에게 정권을 이양해주고 퇴임했으며, 정권의 일선에서 물러나 그의 고향인 몬테비데오에서 농사를 하면서 1987년식 비틀 자동차를 타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 생애 및 활동
무히카는 1935년 5월 20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840년에 우루과이로 온 바스크 이민자의 후손으로써 이민자 조상의 본적은 무히카의 비스카이나 지역이다.
1935년 5월 20일에 몬테비데오 주의 파소 데 라 아레나 구역에서 데메트리오 무히카 테라와 루시 코르다노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할아버지의 고향에서는 카우디요 아파리시오 사라비아에 대항하는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병사들이 훈련받았다.
그의 외조부 역시 국민당 (우루과이), 특히 에레리스모의 추종자였다. 그는 여러 차례 시의원으로 봉직했으며 루이스 알베르토 데 에레라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의 외가는 이탈리아 리구리아 출신 이민자였다. 외할아버지 안토니오의 성 ‘코르다노’는 리구리아 지방의 제노바 주 폰타나부오나 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외할머니 파울라의 조렐로 가족의 본향인 라팔로도 리구리아 근처였다.
무히카의 어머니는 카르멜로에서 태어났는데 이 곳에서 포도를 재배해던 그녀의 부모님은 에스트레야 시의 땅 5헥타르를 사서 포도 농장을 꾸렸다.
작은 농장의 주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무히카가 6살이던 1940년, 죽기 전에 도산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동네의 공립 학교에서 초중등 교육을 수료했다.
기본 과정을 마치자 무히카는 알프레도 바스케스 아세베도 학교의 예비학교에 입학했으나 과정을 마치지는 않았다.

13세부터 17세에 이를 때까지 자전거 경주를 연습하여 여러 클럽과 모든 종목에서 대표 선수로 뛰었다.
1960년대에 도시 게릴라 조직인 투파마로스에서 활동한 게릴라 전사 출신이다. 투파마로스 국민해방운동 (스: Movimiento de Liberación Nacional-Tupamaros; MLN-T)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우루과이에서 활동한 도시 유격대이다. 지도자 라울 센딕 안토나시오와 투파마로스 전체는 서로 분리 불가능한 관계에 있었다.
1970년대에 군사 정권이 들어선 후 14년간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도 다른 투파마로스 조직원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 활동 준비를 하였다.
1985년 민정 이양 후 석방되었으며, 민중참여운동 (Movimiento de Participación Popular, MPP)에 참여하였다.
1994년 하원의원, 1999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사이 엘 페페(El Pepe)라는 별칭으로 특유의 인기를 모았다.
그의 노력으로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참여운동을 비롯한 중도 좌파 계열 정당의 연합체인 광역전선 (Frente Amplio, FA)의 지지를 받은 후보 타바레 바스케스가 큰 승리를 거두어 당선되었으며,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광역전선은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2005년 ~ 2008년 바스케스 대통령 행정부의 농목축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인기가 높은 그는 2008년 12월, 광역전선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선거에서는 그와 중도 우파 계열의 국민당의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전 대통령이 격돌하였다.

그는 과거 게릴라 조직에서 활동하는 등 급진 좌파의 이미지가 매우 강했으나, 당선되면 시장 개방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공약하는 등 지나친 좌파적인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2009년 10월 25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47.96%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으며, 11월 29일 2차 투표에서 52.6%의 득표율로 라카예 후보를 제치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2010년 3월 1일 타바레 바스케스에 이어 우루과이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2010년 6월 3일 우루과이 정부가 공개한 관보에 따르면 따르면 무히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신고한 전 재산은 폭스바겐의 1987년식 비틀 자동차 한 대뿐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생활을 하며 정치적 비리가 한 번도 없는 정치인이다.
2015년 3월 1일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호세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 이후 검소한 생활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을 자가용으로 가지고 있고, 평범한 집에서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고 전했다. 2018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그가 브라질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것이라 주장했으며, 2019년에는 그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비유하여 강하게 비판했다.
무히카는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할머니라는 발언을 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호세 무히카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비판하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를 지지했다.
무히카는 2025년 5월 13일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