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6월 18일,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 / 막심 고리끼 (Maxim Gorky, 1868 ~ 1936) 별세
막심 고리키 / 막심 고리끼 (Maxim Gorky, 러: Макси́м Го́рький, 1868년 3월 28일 / 율리우스력 3월 16일 ~ 1936년 6월 18일)는 러시아의 작가로,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 (러: Алексе́й Макси́мович Пешко́в)이다.
1868년 볼가 강 연안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난 속에 각지를 방황하며 거의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다. 이 시기의 체험은 뛰어난 명작으로 평가되는 자전적 삼부작 어린 시절 세상 속으로 나의 대학에 아프고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892년 마카르 추드라로 문단에 데뷔했고, 1895년 첼카시를 발표해 큰 명성을 얻었다.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과 같은 황금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도시 빈민과 부랑자, 노동자의 삶과 의식을 대담한 낭만적 문체로 그려냄으로써 20세기 초 러시아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가폰 신부가 이끄는 시위에서 강력한 대정부 성명을 발표하여 곧바로 투옥되었으나 세계 지식인들의 대대적인 항의로 석방, 1907년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이후 귀국할 때까지 7년간 어머니와 자전적 삼부작 이탈리아 이야기 등의 작품을 쓰면서 러시아 혁명을 적극 지원했다.
1917년 볼셰비키의 폭력성과 권력욕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갈등을 일으킨 그는 레닌의 비호 아래 소련 정부와 타협하고 문화예술인 보호와 문화재건 운동에 앞장섰으나, 1921년 신병 치료 명목으로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망명 아닌 망명 생활에 들어간다.
1932년 완전 귀국하여 소련 작가동맹 초대 의장을 맡았고 스탈린과의 내적 갈등 속에서 클림 삼긴의 생애를 집필하던 중 1936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 막심 고리키 / 막심 고리끼 (Maxim Gorky)
.본명: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
.출생: 1868년 3월 28일 (율리우스력 3월 16일), 러시아 제국 니즈니노브고로드
.사망: 1936년 6월 18일, 소련 모스크바주
.직업: 소설가
.국적: 러시아 제국→소련
.장르: 소설, 희곡
볼가 강 연안에 있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사환·접시닦이·제빵 기술자 등 온갖 일을 하였다.
1892년 자신의 첫 작품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였다.
1895년 《러시아의 부》 지에 《체르카시》를 발표하여 크게 절찬을 받았고 이어서 〈오를로프 부부〉 등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1905년 사회 민주당에 가입하였으나 제정 러시아 군대의 민중 학살 사건에 항의한 것 등으로 인해 회원에서 제명되었고 곧 투옥된다.
1906년 세계 지식인들의 석방 요청에 의해 석방된 후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1913년 귀국하여 《유년 시대》 등을 집필하는 한편, 무산 계급 작가 양성 지도에 힘을 쏟았다.
1932년 소련 작가 동맹 제1회 대회 의장에 취임, 후진 작가의 육성과 노동자 지식인들을 위해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부하린 등이 고리키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이 재판은 다른 대숙청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조작 재판의 혐의가 짙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창조한 최초의 사람으로서, 소련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개요
러시아 제국-소련의 대문호이다. ‘고리키’는 필명이며,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 (Алексей Максимович Пешков)이다.
공산국가의 예술 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꼽히며 톨스토이-체호프 등이 활약했던 러시아 제국의 문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장악한 소련 문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개인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제대로 수료할 수가 없었으나, 학구열과 열정으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한 소설가이다.
이 때문에 상류층 아니면 중산층 가정에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교양 교육을 받아온 선배 러시아 소설가들과 다르게 구성과 문체가 투박하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정치 성향 때문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경우에는 고리키의 글이 역겨운 쓰레기라고 대놓고 디스하였으나, 솔제니친 못지 않게 반소련 감정이 강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설가로써의 역량은 훌륭하지만 기초교양이 부족한 이유로 표현력이나 글 구성력이 많이 제한을 받는다고도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빨갱이 작가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부터 6월 항쟁까지 고리키의 서적은 금서였다.
특히 혁명운동을 묘사한 몇몇 작품들이 문제였는데, 정치에 아무것도 모르던 홀어머니가 혁명운동에 뛰어든 아들을 보고 혁명성을 각성한다는 내용의 ‘어머니’는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고 한다.
다만 검열의 눈을 어떻게 피했는지는 몰라도 일본어판을 중역한 듯 한 ‘유년시대’는 청소년 문고에 가끔 끼워지기도 했다.
이후 많은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 생애 및 활동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고 4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11세에 고아가 되었다.
술에 취한 외조부가 상습적으로 모친과 자신을 폭행했던 것 때문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으며 경제적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12세에 카잔으로 가출하면서 5년간 떠돌이로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19살에는 자살 시도도 벌였다. 이때의 경험은 자서전인 ‘유년시대’와 ‘세상속으로’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고리키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책이 손에 잡히는대로 읽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좋은 책과 나쁜 책을 확실히 구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여행으로 얻은 견문과 습작을 통해 필력을 얻은 고리키는 성인이 되자 신문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신문 기자로서 그는 러시아 제국의 모순과 하류계급의 참혹한 생활상을 세세하게 폭로하고, 틈틈히 소설도 쓰면서 명성을 얻어갔다.
초창기의 그는 정제되지 않은 글쓰기로 혹평을 얻었으나 그의 순수한 태도에 감격을 받은 평론가들의 지도로 글쓰기를 다시 배울 수 있었다 한다.
당시 생존해 있던 대문호 안톤 체호프나 레프 톨스토이의 부인과도 안면을 트고, 혁명세력과 어울리게 되었고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끌던 볼셰비키와도 밀접하게 교류하게 되었다.
그의 희곡 “밑바닥에서”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상영되면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자선 사업을 벌이며 가난한 어린이들과 실업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었다 한다.
톨스토이도 181cm의 거구였는데 고리키는 그를 훨씬 능가하고 있으니 얼마나 거구였는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고리키의 키는 193cm.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이지만 반체제 활동으로 인하여 영구제명당하기도 했다.
그에 대하여 동조하던 선배작가 안톤 체호프는 제명을 반대하다가 그렇다면 나도 나간다며 스스로 아카데미를 탈퇴했다.
이런 가운데, 고리키는 반체제-운동권작가로 찍혀 결국 여러번 체포되었고, 결국 이탈리아 왕국으로 자의반 타의반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망명지에서도 그는 계속 혁명 운동을 지원하였다.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으로 사면령을 받자 러시아에 돌아왔다.
1917년 10월 혁명이 발생해 그의 동지들이 정권을 잡았으나, 곧 볼셰비키 정권의 언론탄압과 폭력성에 염증을 느끼고, 이들을 비판하는 논설을 썼다.
1921년 자신의 친구인 시인 구밀료프가 체카 (KGB, NKVD의 전신)에 반혁명죄로 처형당하자, 고리키는 이해 다시 폐결핵을 핑계로 다시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났다.
이렇게 10여년간 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파시스트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자 이탈리아에 있는 것도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어졌다.
이때 이오시프 스탈린은 고리키에게 귀국해 줄 것을 요청했고, 생활의 어려움에 지친 고리키는 이를 수락하여 1931년 10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다시 소련으로 귀국하였다.
소련에 귀국한 그는 스탈린 체제의 정당성으로 활용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특히 고리키가 태어난 니즈니노브고로드도 고리키시로 개명되면서 소련시대 내내 고리키 시로 불려졌다.
어렸을 적 외조부와 외삼촌들에게 학대당했던 상처가 강했던 고리키는 스탈린의 농업집단화 당시 농촌의 어린 소년들이 학교에서 세뇌받은 대로 자신들의 집단농장을 반대하던 자신들의 아버지들을 반동분자라고 신고해서 숙청당하게 하는 일을 영웅적인 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농업집단화 (콜호스) 계획이 시작된 후 몇년 후 1934년 세르게이 키로프 암살 사건으로 대숙청이 시작되면서 소련 사회에 암운이 드리우자, 고리키는 사실상의 가택연금상태에 접어들었다.

1936년 고리키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서 관은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운구했다.
1938년 NKVD 전 부장인 겐리흐 야고다의 숙청 당시 죄목 중 하나가 고리키의 독살이었는데, 이것이 만들어진 죄목인지, 혹은 스탈린의 암살음모를 실행한 야고다가 죄를 뒤집어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굴라크를 찬양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사실 처음에는 소련 정부에서 일부러 고리키에게 백해 운하를 파는 굴라크 노동자들이 좋은 옷을 입고 책을 읽으며 정신을 연마하는 곳 쯤으로 보이게 꾸며서 보여준 덕택에 고리키는 당시에는 굴라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고리키가 굴라크를 찬양하는 글도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스크바 지하철 건설 과정에서 징발된 굴라크 죄수들 절반 가까이가 픽픽 죽어나가니 그에게도 실상이 계속 감추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고리키는 자신이 굴라크를 찬양했던 글을 쓴 걸 후회하면서 스탈린에게도 비판적인 말을 했으나, 소비에트 체제 정당성의 상징으로 내세워져 자기 이름이 도시에 붙을 정도였던 고리키는 스탈린이 숙청한 보리스 필냐크, 다닐 하름스, 이삭 바벨 등처럼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연금에 머물렀고 고리키 본인은 스탈린에게 쓴소리를 하고도 비교적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고리키가 소년 수감자들을 배신하고 그 소년 수감자들은 처형되었다 라는 루머 역시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는데, 소련 노동교화소는 아무도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혹한지에 노동력을 조달하려는데 숨은 목적이 있었지, 무슨 일본군 포로수용소 수준으로 일부러 수용자를 학대하던 시설까지는 아니었다.
1932년 완전 귀국하여 소련 작가동맹 초대 의장을 맡았고 스탈린과의 내적 갈등 속에서 클림 삼긴의 생애를 집필하던 중 1936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 희곡 작품
20세기초에 <밑바닥>, <별장의 사람들>, <태양의 아들>, <야만인>, <적 (敵)> 등 일련의 희곡을 썼는데 그 중에도 <밑바닥>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상연되어 그 명연출과 함께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에고르 불르이초프와 다른 사람들> (1931)과 <도스티가에프와 다른 사람들> (1932)은 등장인물과 시대가 하나인 연결성을 가지며, 전자가 차르 (러시아 제국 황제)의 전제 정치를 타도한 1917년 2월의 군중의 노래소리로 막을 내리고 있는 데 반하여 후자는 정세가 어수선한 6월에서 10월에 걸쳐 전개되며 볼셰비키의 정권탈취 소식과 함께 끝나고 있다.
특히 희곡 《밑바닥에서》 (러: На дне) 또는 《밑바닥》, 《밤주막》은 막심 고리키의 대표적 희곡이다. 제나름의 과거를 짊어진, ‘옛날에는 사람이었던’ 몰락한 인간들이 하루하루 생활의 중압감에 신음하고 있는 밑바닥 생활이 그려져 있다. 값싼 여인숙에 나타난 순례하는 노인 루카는 절망에 허덕이는 밑바닥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환상에 가득 찬 정신적 구제의 처방전을 준다.
그러나 여인숙의 주거자들 사이에서 언쟁 끝에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여권을 갖고 있지 않는 루카는 감쪽같이 꼬리를 감춰 버리고 만다. 노름꾼인 사친은 약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루카 노인과 같은 거짓이 필요할지 모르나 강한 자에게 있어서는 진실이야말로 인간의 신(神)이라고 부르짖는다. 인류의 미래를 믿는 고리키의 내심의 부르짖음이 사친의 독백을 통해 뚜렷이 울려 퍼진다.
1902년 모스크바 예술좌에서 초연되어 크게 히트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상연되고 있는 러시아 연극의 고전적 작품이다.

○ 작품 목록
주요 작품으로 ‘유년시대’, ‘세상속으로’, ‘나의 대학’, ‘어머니’, ‘가난한 사람들’, ‘밑바닥에서’ 등이 있다.
- 작품 목록
첼카쉬 : Chelkash (Челкаш), novelette, 1895
말바 : Malva, short story, 1897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 Creatures That Once Were Men, stories in English translation (1905)
26명의 남자와 한 소녀 : Twenty-six Men and a Girl, short story, 1899
포마 고르제예프 : Foma Gordeyev/The Man Who Was Afraid (Фома Гордеев), novel, 1899
세사람 : Three of Them (Трое), novel, 1900
밑바닥에서 : The Lower Depths (На дне), 1902
어머니 : The Mother (Мать), novel, 1907
어느 쓸모없는 인간의 삶 : The Life of a Useless Man, novel, 1907
독백 : A Confession (Исповедь), novel, 1908

이탈리아 이야기 : Tales of Italy, stories, 1911-1913
어린 시절 : My Childhood (Детство), Autobiography Part I, 1913–1914
세상속으로 : In the World (В людях), Autobiography Part II, 1916
시의적절치 않은 생각들, 혁명과 문화에 대한 소고 / 시의적절치 않은 생각들, 혁명과 문화. 1917년 소고 : Untimely Thoughts, articles, 1918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 My Recollections of Tolstoy, 1919
나의 대학 : My Universities (Мои университеты), Autobiography Part III, 1923
러시아 순례 : Through Russia, stories, 1923
아르따모노프가의 사업 : The Artamonov Business (Дело Артамоновых), novel, 1927
끌림 쌈긴의 생애 : Life of Klim Samgin (Жизнь Клима Самгина), unfinished novel series:
레닌 : V.I. Lenin (В.И. Ленин), reminiscence, 1924–1931
대답없는 사랑
악몽 (Революция и культура Статьи)
질타 (Несвоеременные мысли3аметки о революц)
적 (敵, Склонение)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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