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월 10일,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도널드 커누스 (Donald Ervin Knuth, 1938 ~ ) 출생
도널드 어빈 커누스 (Donald Ervin Knuth, 1938년 1월 10일 ~ )는 미국의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이며,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의 명예교수이다.
– 도널드 커누스 (Donald Knuth)
.출생: 1938년 1월 10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국적: 미국
.분야: 수학, 컴퓨터 과학
.배우자: 낸시 질 카터(1961년 결혼 ~ )
.자녀: 아들 존 마틴 커누스 (1965년 ~ ), 딸 제니퍼 시에라 커누스 (1966년 ~ )
.소속: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 대학: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B.S., M.S.),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Ph.D.)
.지도 교수: 마셜 홀
.지도 학생: 레오니다스 J. 김바스, 마이클 프리드먼, 스캇 김, 본 프렛, 로버트 세지윅, 제프리 비터, 안드레이 브로더
.주요 업적: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예술, TeX, METAFONT, 커누스-모리스-프랫 알고리즘, 커누스-벤딕스 완성 알고리즘, MMIX, 로빈슨-셴스테드-커누스 대응
.수상: 그레이스 머리 호퍼 상 (1971), 튜링상 (1974)
미국 과학 훈장 (1979), IEEE 존 폰 노이먼 메달 (1995), 하비 상 (1995), 교토상 (1996), 컴퓨터 역사박물관 펠로우 (1998), 왕립 학회 펠로우 (2003), 패러데이 메달 (2011), BBVA 재단 지식 프론티어 상 (2010), 튜링 강연 (2011) 등
본인의 홈페이지 FAQ에 의하면, 그의 성을 Ka-NOOTH (IPA: [kəˈnuːθ])라고 읽는다. 한글 표기는 ‘크누스’로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국제 음성 기호(IPA) 표기에 따라 ‘커누스’로 표기하고 있다. 한자 이름은 고덕납 (중간: 高德纳, 정: 高德納, 병: Gāo Dénà 가오더나)이며, 이는 “커누스” (→가오)와 “도널드” (→더나)를 중국어 발음으로 음역한 것이다.
○ 생애와 업적
도널드 커누스 (Donald Knuth)는 1938년 1월 10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작은 인쇄소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커누스가 후에 전자출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닌 듯싶다. 아울러 그의 부친은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고, 커누스도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할 때 물리 전공과 음악 전공 사이에서 고민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보였지만 오히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일찍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리 글을 익히면 학교에 들어가서 지루해한다는 주변의 조언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세 살이 되기 전에 밀워키 공립도서관의 “책벌레 클럽” 최연소 회원이 되었다. 심지어는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가 문이 닫히는 줄도 모르고 있었고, 불이 꺼지자 창문가에 앉아서 계속 책을 읽었다고 한다. 결국 부모가 그를 찾아 나섰고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힌 그를 발견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역 TV 방송국에서 진행한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일화도 유명하다. 후원사의 브랜드 이름인 ‘Zeigler’s Giant Bar’에 들어 있는 알파벳을 사용해서 최대한 많은 단어를 만드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대회였다. 커누스는 약 4,500개의 단어를 찾아냈는데 당시 주최 측에서 만들어 놓은 단어는 2,500개였다고 한다. 우승 상품은 우승자의 교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모두 나눠줄 정도로 많은 양의 사탕 (캔디바)이었다.
물리와 음악 중 어느 것을 전공할지 고민하던 그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케이스 공과 대학 Case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물리 전공 장학금을 제안받으면서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한 후에 그는 물리를 싫어하게 된다.
“2학년이 되면 물리 전공자는 용접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했습니다. 나는 용접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리학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학이 있었습니다! 2학년 수학 수업 중에는 오늘날 이산 수학이라고 부르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논리와 정수에 관해 배웠죠. 나는 그것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는 커누스는 그렇게 해서 알골 컴파일러를 혼자 만들게 되었다. 컴퓨팅 센터에서 일하고, 졸업 논문도 써야 하고, 학교 잡지 편집일도 하면서, 틈틈이 밴드부에서 연주도 하던 그에게 컴파일러를 만들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케이스 기술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인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 Caltech으로 이동하는 동안 컴파일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차로 이동하면서 그는 하루에 100마일 (160킬로미터)씩 운전했고, 모텔에 머무르는 동안 컴파일러 코드를 작성했다. 그가 코드를 완성한 것은 그 해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서였다고 한다.
커누스는 케이스 공과 대학을 학사이면서 석사로 졸업했다. 그의 뛰어난 실력에 감탄한 학과 교수들이 특별히 석사 학위도 수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합론 combinatorics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그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알려진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으로 진학했다.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있으면서 그는 알골 컴파일러 개발로 인연을 맺은 버로우즈와는 기술 자문 일을 계속 유지했다. 아울러 컴파일러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참여했다. 그의 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를 찾는 회사들이 늘어났고, 심지어는 커누스가 원하는 액수를 무조건 들어주겠다는 곳까지 나타날 정도였다고 한다.
1963년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때마침 그의 인생관을 충족시켜 줄 제안이 들어왔다. 출판사인 애디슨-웨슬리 Addison-Wesley에서 컴파일러에 관한 책을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박사 2년 차에 접어들었던 커누스는 신혼 4개월째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애디슨-웨슬리의 제안이 너무 반가웠고 바로 그날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전반적인 구성안을 작성했다. 이때가 1962년 1월이었고, 이렇게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아름다운 세계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아름다운 세계>는 1권이 나오는 데 6년이 걸린다. 다행히 애디슨-웨슬리 출판사는 이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고 커누스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었다. 그래서 커누스는 책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1962년 여름에 그는 석 달 만에 포트란 컴파일러를 만들었다. 이 일로 그가 받은 액수는 15,000불이었는데 당시 조교수의 연봉보다 많았다고 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수학 분야뿐만 아니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였다. 1969년에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 과학과 정교수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이어갔다.
커누스는 그레이스 호퍼상 (1971), 튜링상 (1974), 미국 과학 훈장 (1979), 폰 노이만 메달 (1995), 하비상 (1995), 교토상 (1996), 패러데이 메달 (2011)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질 커누스 여사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아들 존 마틴 커누스 (1965년생), 딸 제니퍼 시에라 커누스 (1966년생) 두 자녀가 있다. 루터교 주일학교 교사로 종교적이었던 수학자, 컴퓨터 사이언티스트이다.
상당한 오르간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 업적
커누스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책인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의 저자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의 1권은 커누스가 28세일 때 지은 것이다. 알고리즘 분석 분야를 실질적으로 창조했으며, 이론 컴퓨터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기초적인 중요한 공헌을 했다. 조판 시스템과 메타폰트 폰트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문학적 프로그래밍 (literate programming)의 개념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는 수준 높은 프로그래머였으며, geek 유머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그가 쓴 책에서 오타나 실수를 찾아내면 상금으로 2.56 달러를 주는데, 왜냐하면 “256 센트가 16진수로 1.00 달러이기 때문”(256 = 0x100)이다. (예외도 있는데 3:16 Bible Texts Illuminated라는 책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는 사람에게 걸린 현상금은 3.16달러이다. 이 책은 성경 각 편의 3:16의 주석으로만 되어 있으며, 성경 구절을 멋진 글씨체로 표현했다고 한다.) . 구체수학이라는 공저에서도 오타나 실수를 찾을 때 상금을 준다는 비슷한 유머가 있다. 소프트웨어의 버전번호는 3, 3.1, 3.14와 같은 방식로 π로 수렴한다. 메타폰트의 버전 번호는 같은 방식으로 e에 수렴한다.
취미 생활로는 음악을 즐기며 특히 오르간 연주를 즐긴다고 한다 (실제로 커누스의 집에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고 한다). 다만 연주실력이 썩 훌륭하지는 않다고 한다. 커누스는 또한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약 1975년부터 1990년 1월 1일까지만 이메일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그때 사용해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평생 동안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우편만 사용한다고 한다. 커누스는 우편물을 “배치 모드 (batch mode)”로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3개월 동안 받은 우편물을 하루 만에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 어록
내 (앨런 케이)가 스탠퍼드에서 AI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시절 (1960년대 후반) 매년 추수감사절 때마다 가졌던 행사 가운데 하나는 그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방 (Bay area)에서 연구 프로젝트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과 프로그래밍 경연대회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상품은 칠면조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제는 주로 매커시가 출제하였지요. 한 해는 커누스가 그 대회에 참가해서 가장 빠른 시간에 프로그래밍을 실행시킨 사람에게 주는 상과 알고리즘을 가장 빨리 실행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을 모두 휩쓸었습니다. 그는 윌버 (Wilbur) 시스템이라는 원격 일괄 시스템을 이용해 최악의 시스템에서 그것을 해 내었지요. 그는 간단하게 모든 참가자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그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는 하루에 기계와 5분을 보낼 수 있으면 꽤 운이 좋은 경우였죠. 프로그램이 작동하도록 만들고 싶으면 프로그램을 정말로 제대로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에 글을 새기듯이 프로그래밍을 배웠습니다. 그냥 그것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기만 하면 됩니다. 난 그렇게 프로그래밍을 익혔습니다.” — 앨런 케이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