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8월 30일, 제2차 빈 중재 (Vienna Awards)로 루마니아의 영토인 트란실바니아의 절반이 헝가리의 영토로 편입
빈 중재 (Vienna Awards, 독: Wiener Schiedsspruch)는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 1920년 트리아농 조약으로 잃은 헝가리 왕국의 영토를 평화적으로 돌려준 두 차례의 사건이다.
제1차 빈 중재는 1938년에 일어났고 제2차 빈 중재는 1940년에 일어났다.
현재의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영토에 속해 있는 지역을 얻은 헝가리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중재는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무효화되었으며 헝가리는 얻은 영토를 모두 잃었다.

- 제1차 빈 중재
이 중재로,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남슬로바키아와 남자카르파탸 (카르파티아 루테니아, 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1938년 11월 2일 헝가리에게 양도했다.
정부 일원의 일부는 군사 행동을 촉구했지만 헝가리 수정주의는 주로 역사적 경계를 평화롭게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간기 동안 헝가리는 영토를 주장하는 주변 국가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취약했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헝가리 왕국의 영유권 주장과 1920년 트리아농 조약 개정을 지지했다. 나치 독일은 이미 라인란트 재무장과 안슐루스을 통해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했던 상태였다.
첫 번째 빈 협상은 대부분 헝가리인이 거주하는 남부 슬로바키아와 남부 카르파티아 루스의 영토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하여 헝가리로 반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헝가리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잃었던 영토 일부를 되찾았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또한 스피스와 오라바 지역의 작은 땅을 폴란드에 할양했다.
1939년 3월 중순, 아돌프 히틀러는 헝가리에게 공식적으로 1938년 12월부터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로 알려진 카르파티아 루스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것은 헝가리 영토를 북쪽으로 폴란드 국경까지 확장하여 1772년 제1차 폴란드-리투아니아 분할 이전에 존재했던 헝가리-폴란드 공통 국경과 제1차 세계 대전과 트리아농 조약 및 생제르맹 조약 이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 일부를 복원했다.
헝가리가 카르파티아 루스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한 지 6개월 후인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폴란드 정부와 수만 명의 폴란드 군인 및 공군이 헝가리와 루마니아로 대피했으며 그곳에서 프랑스와 프랑스로 이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47년 파리 조약은 빈 중재을 무효로 선언했다.

- 제2차 빈 중재
이 중재로,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은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절반 (북트란실바니아로 알려짐)을 1940년 8월 30일 헝가리에게 양도한다.
이 결정은 순전히 독일의 전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헝가리 편을 들은 것이다.
트리아농 조약의 주요 항목인 트리아농 지역에 다민족 국가를 구현하는 것은 양국에서 대규모 이주를 발생시켜 오래된 사회, 경제적 규모를 붕괴시켰다.
제2차 빈 중재에 더하여, 1940년 9월 7일 루마니아는 크라이오바 조약으로 불가리아에게 남도르부자 지역을 양도한다.
이 지역은 1913년 불가리아의 제2차 발칸 전쟁의 패배로 루마니아가 가져갔던 지역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