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7일, 독일의 총통 카를 되니츠를 대신하여 알프레트 요들이 프랑스 랭스에서 연합군에게 항복 서명해 독일 3제국 멸망
1944년 12월 16일,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서방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예비 병력을 모아 벌지 전투를 시작하나, 서방 연합군의 주요 보급 항구인 앤트워프 항구를 점령할 수는 없었다. 1월, 공세는 어떠한 전략적 목표로 이루지 못한 채 실패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독일군과 연합군은 방어선 근처에서 교착 상태를 이루었다. 1945년 1월 중순, 소련군은 폴란드 지방에서 공세를 시작하며 비스툴라-오데르 공세로 독일 본토로 진격하고, 동프로이센 공세로 동프로이센를 점령했다. 2월 4일,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은 얄타 회담에서 만났다. 그들은 전후 독일 점령에 동의하고, 소련은 일본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2월, 소련은 실레지아 공세와 동포메라니안 공세를 시작하고, 서방 연합군은 독일 본토로 진격하며 라인 강을 점령했다. 3월, 서방 연합군은 라인-루르의 북부와 남부를 점령하며 루르 포위전으로 B 집단군을 포위시키며, 소련은 빈 공세를 시작한다. 4월 초, 서방 연합군은 마침내 이탈리아로의 공세가 성공하며 독일 서부로 진격하며, 소련군은 4월 말 베를린 공방전을 시작하며, 4월 25일에는 연합군과 소련군이 엘베 강에서 만났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애인 에바 브라운과 동반자살하였고, 5월 7일 독일 국회의사당을 방어하던 독일군이 항복하며 독일 3제국은 멸망했다.
1945년 5월 7일, 독일의 총통 카를 되니츠를 대신하여 알프레트 요들이 프랑스 랭스 (Reims)에서 연합군에게 항복 서명을 했다.
랭스 (Reims)는 프랑스 그랑테스트 마른주의 도시이며,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30km에 위치했다.
각국의 대통령은 이 기간 동안 몇몇이 바뀌었다. 4월 12일,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사망하고,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4월 28일에 이탈리아 파르타잔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틀 후, 히틀러는 자살하고, 대제독 칼 되니츠가 총리를 승계받았다.

독일군은 이탈리아에서 4월 29일에 항복했다. 독일의 항복문서는 5월 7일 랭스에서 서명되었고, 5월 8일 (모스크바 시간으로 5월 9일)에 베를린에 비준되었다. 독일 중앙집단군은 5월 11일 프라하 공세까지 저항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군은 1945년 4월 말까지 필리핀에서 필리핀 전투과 레이테 만 해전에서 승리한다.
1945년 1월 루존 상륙과 3월에는 마닐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루존에서 계속되었으며, 민다나오 섬을 비롯한 필리핀의 다른 섬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저항했다.
1945년 5월, 호주군은 보르네오 전투를 시작하며 섬을 점령했다.
영국, 미국, 중국은 북부 버마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5월 23일에는 영국군이 양곤을 점령했다.
중국은 1945년 4월 6일부터 6월 7일까지 서후난 전투로 반격을 시작했다.
미군은 일본 본토로의 진격을 시작하여, 3월에는 이오 섬을 점령하고, 6월 말에는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미군의 폭격기는 일본 본토 공습을 시작하고, 미군 잠수함은 봉쇄 조치를 시작했다.

7월 11일에는, 연합군의 지도자가 포츠담 회담을 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이전 회담의 협정을 확인하고, 특히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한 대안은 신속하고 완전한 파괴”라고 발표했다.
이 회담 중에 영국은 선거를 시작하고, 클레멘트 애틀리 내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포츠담 협정을 무시하였고, 이에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
두 폭탄이 터진 사이, 소련군은 얄타 회담의 조건에 따라 만주 전략공세작전으로 만주로 진격하며 관동군을 항복시키고, 만주와 청진 등 한반도 북부를 점령했다.
또한, 소련군은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를 점령했다.
원자 폭탄의 무서운 위력에 놀란 일본은 결국 1945년 8월 15일, 항복하였고 일본의 항복문서는 1945년 9월 2일 미군 전함 USS 미주리 (BB-63)에 서명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은 끝이 났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