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3월 23일, 스페인의 총리•사회운동가로 일명 ‘스페인의 레닌’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Francisco Largo Caballero, 1869 ~ 1946) 별세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스: Francisco Largo Caballero, 1869년 10월 15일 ~ 1946년 3월 23일)는 스페인의 정치인이자 노동조합원이었다.

–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Francisco Largo Caballero)
.출생: 1869년 10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
.사망: 1946년 3월 23일, 프랑스 파리
.묘지: 프랑스 파리 뻬흐 라쉐스 묘지, 스페인 마드리드
.국적: 스페인
.정당: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자녀: 프란시스코 라르고 칼보
.담당 공직: 스페인 전쟁부 장관 (1936 ~ 1937)
스페인 사회노동당 (PSOE) 과 노동자총연맹 (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의 역사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1936년 ~ 1937년 스페인 제2공화국의 총리를 지냈다.

○ 생애 및 활동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Francisco Largo Caballero, 1869 ~ 1946)는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렸던 미장공 출신의 급진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1869년 10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했다.
1925년 노동자총동맹 지도자가 되었으며, 1936년 9월부터 총리직과 전쟁부 장관을 맡았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공산주의자와 비 (非) 공산주의자 간에 ‘(스페인) 내전 속 내전’이 일어나 자신이 이끌던 내각이 궁지에 몰리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네그린 정부가 들어서자 정치적으로 고립된 그는 1939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6년 3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 부록: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 (스: Guerra Civil Española, 에스파냐 공민 전쟁)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인 국제 여단이 반파시즘 진영인 인민 전선을 지원하고,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 그리고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집권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프랑코파를 지원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아울러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교회와 왕당파는 프랑코파를 지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화국 정부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였으나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과 지원국 소련 측에는 비행기를, 스페인 반군 측에는 가솔린을 팔았다.
내란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는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또한 내전 후에도 승리한 반란군 측은 반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및 보복을 시작했다.
심지어는 영아를 조직적으로 유괴해 인신 매매까지 자행하였다.
스페인의 총통이 된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일인독재정치를 계속하였다.
또한 프랑코의 사후 (死後)에 부르봉 왕조가 복고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