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창설
북대서양 조약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프: Organisation du Traité de l’Atlantique Nord, OTAN) 또는 북대서양 동맹은 국제 군사 기구로 1949년 4월 4일 체결된 북대서양 조약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 기구는 회원국이 어떤 비가입국의 공격에 대응하여 상호 방어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집단 방어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벨기에의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최고사령관 또한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벨기에는 유럽 및 북아메리카의 회원국 중 한 곳이며, 2020년 3월 기준으로 30개국이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21개국이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의 회원국이며 15개국이 개별적으로 제도화된 대화 및 회담의 가입국이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의 군사 지출비는 세계 전체 군사 지출비의 70%을 차지한다. 회원국의 방어 비용은 GDP의 2&를 차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 북대서양 조약 기구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약칭: NATO
.표어: Animus in consulendo liber
.결성: 1949년 4월 4일
.유형: 군사 동맹
.본부: 벨기에 브뤼셀
.위치: 유럽 및 아메리카
.활동 지역: 유럽, 아메리카, 아프가니스탄, 인도양
.회원: 30개국
.공식 언어: 영어, 프랑스어
.웹사이트: nato.int
북대서양 조약 5조는 회원국이 무장 공격을 당한 회원국에 대해 어떤 지원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9·11 테러 이후 처음이자 유일하게 이루어졌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것이었다. 이후 북대서양 조약 기구는 추가적인 역할의 범위를 넓혀 작전을 수행했다. 이라크에 교관을 파견하고, 해양 방어 작전을 지원하였으며,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973호에 따라 2011년 리비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여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다. 덜 잠재적인 4조는 회원국 간의 회담에 따라 결정되는데 총 5번 주최되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3년 터키가 처음 발령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시리아 내전에 대하여 터키가 2번 주최했다. 2014년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문제로 폴란드가 주최했으며 터키가 2015년 ISIL의 위협에 맞서 다시 개최하였다.

○ 역사
NATO는 이후 동서냉전 체제하에서 서방국가들의 집단적 안전보장체제 구축의 모델로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대항하는 대표적 상징으로서의 위상을 지녀왔는데 그 본질은 군사동맹이었다.
북대서양 조약 체약국으로 구성되는 NATO는 회원국 간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파동을 겪기도 했는데, 프랑스는 1966년 3월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하다가 통합 군사 조직에서 탈퇴하였고, 그리스는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과 관련된 NATO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1974년 4월에 통합 군사 조직에서 탈퇴하였다가 1980년 10월에 다시 복귀했다.
초기 NATO의 조직은 상설기관으로 최고기관인 각료이사회와 사무국, 그리고 그 아래의 전문·보좌 기관과 통합군사기구로 구성되었다. 각료이사회는 회원국 외무·재무·국방 장관 및 관계장관으로 구성되는 최고기관으로 연 2회 이상의 정례회합을 가지며, 각국의 대통령·총리·수상이 개인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산하에 핵방위문제위원회·방위계획위원회·핵기획 그룹 등의 전문기관이 설치되어 그 보좌를 받으며, 보조기관으로 대사급 상설이사회가 설치되었는데, 사무총장이 의장을 겸임하고, 회의방식은 만장일치제를 채택하였다. 전문기관 중 핵방위문제위원회는 프랑스 · 룩셈부르크 ·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회원국 국방장관으로 구성되어 NATO의 핵전략을 결정하였고, 방위계획위원회는 회원국 국방장관으로 구성되는 최고군령기관으로 통합군사조직을 통할하며, 핵기획 그룹은 1966년 12월 방위계획위원회와 동시에 설치되었는데 프랑스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회원국방장관으로 구성되었다. 방위계획위원회는 통합군사조직의 최고통수기관이며 그 아래 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 (SHAPE), 대서양해군사령부 (ACLANT), 해협연합군사령부, 3기구를 관할하였다. SHAPE는 북대서양 최고사령부라고도 칭하는데, 각료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1951년 4월 발족하였다. 방위 범위는 영국·프랑스·포르투갈을 제외한 서유럽 전역과 영국영공이며, 전시에는 최고사령관이 유럽 지역의 육·해·공 3군이 작전권을 행사하였다. 산하에 북유럽군·중부유럽군·남부유럽군·영국반공군·기동부대·조기경계기동대 등 6개 사령부를 두었다. ACLANT는 상비병력은 없지만 훈련시·전시에는 회원국 해군이 전속되었다. 방위범위는 영국·프랑스 해협과 잉글랜드 연안을 제외한 미국 연합수역에서 유럽·아프리카 연안수역까지, 즉 위도상으로는 북극에서 적도까지였다. 해협연합사령부는 해협연합군 사령관과 해협연합군 항공대 사령관의 지휘 아래 영국·프랑스 해협과 북해남부의 방위를 담당하였다. 설립 당시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나 프랑스가 통합군사조직에서 탈퇴하자 브뤼셀로 이전하였다.
NATO는 1990년대에 들어서 딜레마에 봉착하기도 했는데, 1991년에는 나토 회원국에 대해 즉각적으로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개선되어, 미래의 나토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그 해에 바르샤바조약국들은 동맹관계를 청산하는 데에 합의했고, 소련의 공산당은 정부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으며, 1991년 후반에 소련은 해체되었다. 바르샤바 조약 기국가 붕괴된 후, 나토는 나토 회원국뿐만 아니라 이전에 바르샤바조약을 체결한 나라들도 포함하는 북대서양협력회의를 결성했다. 이 기구는 두 개의 국가 집단 사이의 연대를 강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91년에 나토는 유럽에 대한 핵무기 공급을 80%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토는 1992년에 소속군이 유럽의 비회원국들에게 평화유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군사적인 역할이 커지도록 했다.
나토는 1994년 2월 소속 항공기가 유엔이 지정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비행 금지 구역을 침범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전투기 4대를 격추함으로써 처음으로 전투행위를 수행했다. 또한 1994년에는 대부분 과거에 공산국가였던 20개국이 평화를 위한 동반자라고 하는 나토와의 연대 기구에 가입하였고, 군사적으로도 참여하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