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7월 13일,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de Rivera, 1907 ~ 1954) 별세
프리다 칼로 드 리베라 (스: Frida Kahlo de Rivera, 1907년 7월 6일 ~ 1954년 7월 13일)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공산주의자이다.
–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de Rivera)
.출생명: 마그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이 칼데론 (스: Magdalena Carmen Frieda Kahlo y Calderón)
.출생: 1907년 7월 6일, 멕시코시티 Coyoacán
.사망: 1954년 7월 13일, 멕시코시티 Coyoacán
.직업: 화가, 전기 작가, 조각사, 작가
.사조: 초현실주의, 마술적 사실주의
.부모: 길레르모 칼로, 마틸다 칼데론 이 곤살레스
.배우자: 디에고 리베라 (1929 ~ 1939, 1940 ~ 1954)
.주요 작품: Still Life – Pitahayas, The Two Fridas
출생 시의 이름은 마그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이 칼데론 (스: Magdalena Carmen Frieda Kahlo y Calderón)이다.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후에는 주로 프리다 칼로로 불렸다.
○ 생애 및 활동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기예르모 칼로는 독일계였다.
독일인 아버지가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한다.
스탈린주의자인 아버지와 평화주의자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프리다 칼로는 주로 멕시코의 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와 멕시코의 토속 문화를 결합한 화풍을 창시한 것과 멕시코로 망명했던 레프 트로츠키와의 인연, 그리고 사춘기 시절에 버스가 전철과 충돌하는 교통 사고를 겪은 지체장애인 화가로 유명하다.
활발한 공산주의의 지지자로 10월 혁명의 주역이며 제4인터내셔널의 지도자였던 트로츠키와도 만난 적이 있다.
멕시코의 화가이자, 혁명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녀의 선천적인 골반기형으로 고통받은 삶을 그린 《프리다와 유산》, 《헨리포드 병원》 등이 있다.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출생, 1913년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쇠약해지는 장애가 생겼다.
1925년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와 오른쪽다리, 자궁을 크게 다쳤다.
1925년 연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와 21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하였다.
1939년 11월 디에고와 이혼했다.
1940년 디에고와 다시 결혼을 하였다.
1954년 7월 13일 폐렴이 재발하여 사망하였다.
2015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과 소마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전시했다.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디에고 작품을 비롯해 총 150여 점이 전시되었다.
○ 화풍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는 초현실주의와 멕시코 라는 두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프리다 칼로는 초현실주의로 분류되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픈생활과 남편으로 인해 상처입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했고, 유럽의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멕시코의 전통에 근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의 소재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지만 비사실적이라는 점에서는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그러나 창의적 상상과 무의식적 표현을 추구하는 초현실주의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즉 초현실적이긴 하나, 주류 초현실주의와는 동떨어져 있다.
작가 생활을 시작한지 12년만인 1938년 멕시코시티대학 갤러리 그룹전을 가졌다.
이 전시에서 앙데르 브르통의 주목을 받고, 루브르 박물관이 그녀의 자화상을 구입해 최초로 루브르에 입성한 중남미 여성작가가 됐다.
1939년 르누와 콜 갤러리의 멕시코전에서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셀 뒤샹 등으로 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 받았다.
칼로는 초기 산드로 보티첼리와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공부의 영향이 화풍에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그림은 점점 멕시코의 장식 미술, 당대에 유행하던 벽화 운동의 화풍을 따랐다.
그러한 변화에는 프리다 칼로 본인이 중앙아메리카의 신화, 문명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었고, 멕시코 전통의상을 즐겨입었다.
또한 그녀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녀는 멕시코의 고유의 상징이나 형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이것은 그녀가 그렸던 그림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또 멕시코 전통적인 문화 이외에도 프리다 칼로에게 멕시코는 혁명의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멕시코의 혁명적인 정치 상황은 예술 분야에 여러 운동들을 촉발시켰다.
멕시코 정부를 장악하고 있었던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는 당시 높은 문맹률로 인해 문자 교육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녀는 이미지를 이용한 대중 교화, 계몽 정책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디에고 리베라와 같은 당대의 화가들에게 벽화 작업을 지시하게 된다.
벽화 운동의 탄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운동의 본질적인 목적은 정치적 교화에 있었다.
하지만 벽화 운동은 미술가들에게 있어 멕시코적인 상징, 민중들의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하였다. 따라서 프리다 칼로의 경우에도 벽화운동은 정치적 내용보다는 개인적이고 멕시코의 전통에 뿌리를 둔 내용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 Solo exhibitions
8 February – 12 May 2019 –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at the Brooklyn Museum. This was the largest U.S. exhibition in a decade devoted solely to the painter and the only U.S. show to feature her Tehuana clothing, hand-painted corsets and other never-before-seen items that had been locked away after the artist’s death and rediscovered in 2004.
16 June – 18 November 2018 – Frida Kahlo: Making Her Self Up at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in London. The basis for the later Brooklyn Museum exhibit.
3 February – 30 April 2016 – Frida Kahlo: Paintings and Graphic Art From Mexican Collections at the Faber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s first retrospective of Kahlo’s work.
27 October 2007 – 20 January 2008 – Frida Kahlo an exhibition at the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Philadelphia Museum of Art, 20 February – 18 May 2008; and th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16 June – 28 September 2008.
1–15 November 1938 – Frida’s first solo exhibit and New York debut at the Museum of Modern Art. Georgia O’Keeffe, Isamu Noguchi, and other prominent American artists attended the opening; approximately half of the paintings were sold.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