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8월 11일, 소련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3호 (Vostok III) 발사
1962년 8월 11일에는 소련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3호 (Vostok III)가 발사됐다.
소련의 인류 최초 유인 우주비행 실현계획 보스토크 계획 (Vostok Project, 러: Восто́к)은 1960년대 초 소련에 의해 지구 궤도에 발사된 유인 우주선의 이름이며,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을 실현한 계획이다.
발사에 사용된 보스토크 로켓 (정식 명칭: A1)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인 R-7을 개량한 것이다. “보스토크”는 “동쪽”을 의미하는 러시아어의 일반 명사이다.

– 보스토크 계획 (Vostok Project)
.시작: 1961년
.종료: 1963년
.첫 비행: 1960년 5월 15일
.마지막 비행: 1963년 6월 16일
1961년 4월 12일의 1호를 시작으로 1963년 6월 16일의 6호까지 총 6번의 발사가 이루어졌다.
원래 13호까지의 발사계획이 잡혀있었으나 미국이 추진중이던 2인승 제미니 계획에 대항하기 위해 취소되어 버리고, 2인승이었지만 억지로 사이즈를 키워 3인승으로 전환한 보스호드 계획으로 변경된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에 충격을 먹은 미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머큐리 계획에 올인했지만, 결국 유인 우주비행 타이틀도 소련이 약 25일 앞서서 기록했다.
그나마도 미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은 16분의 비행에 그쳤을 뿐이었다.

○ 역사
구소련의 1인승 우주선으로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서 지구를 끼고 도는 궤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1961년 4월 12일에 발사된 보스토크 1호에는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탄 채 89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고 108분 뒤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이어서 구소련은 보스토크 6호까지 유인우주비행 실험을 했다.
보스토크 1호는 바로 유리 가가린이 탑승한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이었다.
발사에서 귀환까지 108분이라는 짧은 우주 나들이였다.
비행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그 유명한 “지구는 푸르다”. 여기에 덧붙여서 ‘신은 없었다’라는 말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와전된 것이며 가가린 본인은 독실한 러시아 정교회 신자였다.
유리 가가린이 말했다.
“우주는 매우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 유리 가가린 (1961년 4월 12일자 이즈베스티야와의 인터뷰 中)

보스토크 2호는 게르만 티토프를 태우고 25시간 동안 머무르면서 촬영 및 무중력 상태에서의 실험 등을 실시했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3, 4호를 동시에 발사하여 랑데뷰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5km까지 근접하는데 성공했다.
5, 6호 발사시에는 4km까지 근접하였으며, 보스토크 6호에는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탑승하고 있었다.
2022년 현재도 생존하며, 11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통합 러시아당 소속으로 러시아 하원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도 진출했다.
원래 13호까지의 발사계획이 잡혀있었으나 미국이 추진중이던 2인승 제미니 계획에 대항하기 위해 취소되어 버리고, 2인승이었지만 억지로 사이즈를 키워 3인승으로 전환한 보스호드 계획으로 변경된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에 충격을 먹은 미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머큐리 계획에 올인했지만, 결국 유인 우주비행 타이틀도 소련이 약 25일 앞서서 기록했다.
그나마도 미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은 16분의 비행에 그쳤을 뿐이었다.

- 사출식 귀환
보스토크 시리즈의 대기권 재돌입체는 상당히 특이한데, 나중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완전한 구형 재돌입체를 사용한다.
사실 이 공 모양 재돌입체는 재진입열과 압력조건을 무사히 견뎠기에 대기권 재진입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구형 모양의 특성상 양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탄도 재진입을 하게 된다.
게다가 낙하위치가 바람에 따라 제멋대로 변해버리는 위험성이 있었다.
반면 미국이 사용한 원추형 캡슐은 자세를 바꾸어 어느 정도 낙하점을 조정할수 있기 때문에 훨씬 안정성이 높았다.
소련도 이후 소유즈 우주선에서는 종 모양 디자인을 채택해 미국처럼 바닥면을 평편하게 만들어 재진입시 안정성을 높이게 되었고, 방향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귀환시 소련의 우주인들은 이 구형 캡슐을 타고 대기권에 재돌입하다가 대기권에 들어와서는 우주선 캡슐에서 사출좌석으로 튕겨져 나와 낙하산으로 지상에 착륙하게 된다.
7,000m 상공에서 캡슐에서 사출된 후 4,000m 상공에서 낙하산을 펴고 지상까지 내려오게 된다.
이러한 사출좌석 및 낙하산을 이용한 방식은 당시에는 당연히 소련이 철저히 비밀로 하였기에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가가린이 캡슐을 탄 채 지상에 착륙했다고 주장했다.
사출되어 낙하산을 타고 귀환했다는 사실은 훗날 소련이 붕괴된 후 뒤늦게 밝혀지게 되었다.
가가린의 비행이 세계적인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소련이 착륙 방법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국제 항공 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유인 우주 비행은 발사할 때와 마찬가지로 착륙시에도 사람이 우주선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태여야 하므로, 이 규정에 따르면 가가린을 비롯한 보스토크 우주 비행사들의 비행은 유인 우주 비행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규정은 소련의 주장에 따라 채택된 것이었다.

○ 목록
보스토크 1호 (1961년 4월 12일 발사,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 2호 (1961년 8월 6일 발사, 게르만 티토프)
보스토크 3호 (1962년 8월 11일 발사, 안드리안 니콜라예프)
보스토크 4호 (1962년 8월 12일 발사, 파벨 포포비치)
보스토크 5호 (1963년 6월 14일 발사, 발레리 비콥스키)
보스토크 6호 (1963년 6월 19일 발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