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9일, 베트남 전쟁 ‘구정 대공세’ : 베트콩이 남베트남을 상대로 구정 공세 시작
웨스트모어랜드의 미군이 꽝찌 성에서 케산 전투를 벌이느라 베트남 중부 내륙으로 이동한 사이, 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은 베트남의 음력 설날 명절인 뗏 (Tết) 휴일에 이틀 동안 휴전을 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1968년 1월 30일 남베트남 전역에서 기습 공격을 시작하였다.
100 곳이 넘는 도시에서 공격이 이루어 졌으며, 주베트남 미군 사령부의 본부와 미국 대사관이 있던 사이공 역시 공격을 받았다.
구정 대공세 초기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고 상당 수의 지역에서 퇴각하여야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막강한 화력으로 응전하여 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이 과정에서 특히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전투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응우옌 왕조 시절의 수도였던 후에는 한 때 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의 베트남인민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미군은 도시 전체의 80%가 폐허로 변하는 포격을 퍼부으며 전투를 벌여 후에를 탈환하였다.
후에 전투 중 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 측이 후에에 살고 있던 비전투원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후에 학살에서 희생된 민간인의 수는 수 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 후 북베트남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의한 민간인 살해를 인정하였다.
북베트남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구정 대공세를 통해 잠시나마 남베트남의 주요 도시들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결국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그러나, 구정 대공세는 그 동안 전쟁 승리를 낙관하였던 미국 내 여론에 큰 충격을 주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