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5일,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홍명희 (洪命憙, 1888 ~ 1968) 별세
홍명희 (洪命憙, 1888년 5월 23일 ~ 1968년 3월 5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가이다. 해방 후 1948년 월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 홍명희 (洪命憙)
별명: 호(號)는 벽초(碧初)
필명: 홍가인(洪假人) 또는 홍가인(洪可人)·백옥석(白玉石)
출생: 1888년 5월 23일, 조선 충청도 괴산군
사망: 1968년 3월 5일(79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노환으로 병사
경력: 소설가 출신 정치가, 조선로동당 명예대표고문위원
정당: 조선로동당
부모: 홍범식(부), 은진 송씨 부인(모), 조경식(계모)
배우자: 여흥 민씨 부인
자녀: 3남 3녀, 장남 홍기문(洪起文), 차남 홍기무(洪起武), 3남 홍기하(洪起夏), 장녀 홍주경(洪姝瓊), 차녀 홍무경(洪茂瓊), 3녀 홍계경(洪季瓊)
친인척: 홍승목(친조부), 조완구(고모부), 김일성(사위)
종교: 없음(무신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임기: 1948년 9월 9일 ~ 1953년 9월 9일
주석: 김두봉 북조선 국가원수
총리: 김일성 북조선 총리
본관은 풍산. 호는 벽초 (碧初), 필명은 가인 (假人) 또는 가인 (可人) · 백옥석 (白玉石)이다. 일생동안 소설창작, 언론활동, 정치활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1948년 9월부터 1962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부수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초대, 제3대 부위원장 (1948년 9월 – 1957년, 1958년 10월 – 1968년)을 역임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으며, 소설 《임꺽정》의 작가로 유명하다.

○ 생애 및 활동
- 생애
경술국치 직후 귀국하여 오산학교 (五山學校) · 휘문학교 (徽文學校)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20년대 초반에는 한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시대일보사 (時代日報社) 사장으로 재직 중인 1927년에 민족 단일 조직인 신간회 (新幹會)의 창립에 관여하여 그 부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회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의 주모자로 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좌익운동에 가담하고,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바로 월북하여 북한 공산당정권 수립을 도우면서 부수상 등 요직을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활동사항
그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장편소설의 하나로 손꼽히는 『임꺽정 (林巨正)』을 발표함으로써 문학사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1928년 『조선일보』에 첫 연재를 시작한 뒤 세 차례에 걸쳐 중단되었다가, 광복 직후 미완의 상태로 전 10권이 간행되었다. 조선 중기에 지방의 도둑으로 실록에 그 행적이 단편적으로 기술되기도 한 임꺽정의 이야기를 방대하게 그려내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밝힌 바 있듯이, 반봉건적인 천민계층의 인물을 내세워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 속에서 귀족계층의 계급적 우월성이 배격되고 오히려 천민의 활약을 당위론적인 측면에서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계급적 의식과 세계관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이 식민지 현실의 모순 그 자체보다도 봉건적인 체제모순에 더욱 비판적인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소설에서 다양한 삽화를 처리하는 서사적 기법과 풍부한 토속어의 구사력은 조선시대 사회상과 풍속을 재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문학적 태도를 확인해볼 수 있는 글로는 「신흥문예(新興文藝)의 운동 (運動)」 (문예운동, 1926.1.)이 대표적인데, 이 글에서 계급문학운동의 의미와 그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문학원류약론 (朝鮮文學源流略論)」 (청구학총, 1931.2.) · 「이조문학논의 (李朝文學論議)」 (삼천리문학, 1938.1.) 등의 고전문학 관계 논문이 있다.
그리고 「대 톨스토이의 인물과 작품」 (조선일보, 1935.11.23.∼12.4.) · 「문학청년들의 갈 길」 (조광, 1937.1.) · 「학창산화 (學窓散話)」 (박문, 1938.12.) 등의 글이 있다. 저서로는 수필집 『학창산화 (學窓散話)』 (조선도서, 1926)와 장편소설 「임꺽정」 (을유문화사, 1948)이 있다.
- 기념문학비 건립
1998년 10월 17일 벽초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에 의해서 홍명희 선생의 문학가로서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하지만, 홍명희의 월북사실을 문제삼은 괴산 재향군인회 등의 우파단체들의 반발때문에 1948년 월북했다는 문구가 삽입된 새로운 비문이 2000년 6월 12일 건립되었다.

○ 가계
증조부 : 홍우길(洪祐吉, 1809~1890), 이조판서 역임
조부 : 홍승목(洪承穆, 1843~1925), 병조판서 역임 / 생부는 홍우필(洪祐弼)
아버지 : 홍범식(洪範植, 1871 ~ 1910), 경술국치 때 자살
생모 : 은진 송씨(恩津 宋氏, 1871~1890) : 군수 송은로(宋殷老)의 딸; 오빠 송종면(宋鍾冕, 1866~?)
계모 : 조경식(趙璟植, 1876~1950) : 6.25 전쟁 중 우익 인사들에게 끌려가 살해 당함.
동생 : 홍성희(洪性憙, 1894~?) : 형 홍명희와 함께 월북.
동생 : 홍도희(洪道憙, 1903~1923)
동생 : 홍교희(洪敎憙, 1907~1922)
고모 : 홍정식(洪貞植, ? ~ 1945년 2월), 조완구(趙琬九, 1881 ~ 1950)에게 출가
처 : 여흥 민씨(驪興 閔氏, 1885~1953) : 민영만(閔泳晩, 1863~1916)의 딸
장남 : 홍기문(洪起文, 1903~1992) :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부원장
장자부 : 덕수 이씨
손자 : 홍석형(洪錫亨, 1936~?) :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으로 있다 숙청 당함.
손자 : 홍석중(洪錫中, 1941~) : 소설가
차남 : 홍기무(洪起武, 1910~?) : 초명 기은(起殷).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피체 투옥되었다 6.25때 탈출하여 월북함.
차자부 : 정경완(鄭庚婉 1920~?), 정인보의 둘째 딸
손자 : 홍석우
손자 : 홍석주
손녀 : 홍석매(1957~)
3남 : 홍기하(洪起夏, 1919~1920)
장녀 : 홍주경(洪姝瓊, 1921~?)
차녀 : 홍무경(洪茂瓊, 1921~?)
3녀 : 홍계경(洪季瓊, 1926~?)
1950년 1월 15일 그의 딸 홍영숙 [洪永淑, 또는 홍애연(洪愛姸)]이 김일성과 결혼하였는데, 맏딸 또는 둘째딸이라는 것으로 보아 쌍둥이인 홍주경과 홍무경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정된다.
홍명희의 조부 홍승목(洪承穆, 1843~1925)이 1867년에 작성한 직계 선조 계보 “풍산홍씨직파연보도 (豐山洪氏直派年譜圖)”가 있다. 부친이 생부 홍우필 (洪祐弼)로 나오므로 당시는 아직 홍우길의 양자가 되기 전이다.


참고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