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0월 17일, 독일의 언론인•정치인 빌리 아이흘러 (Willi Eichler, 1896 ~ 1971) 별세
빌리 아이흘러 (Willi Eichler, 1896년 1월 7일 ~ 1971년 10월 17일)는 독일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다.

– 빌리 아이흘러 (Willi Eichler)
.출생: 1896년 1월 7일, 독일 베를린
.사망: 1971년 10월 17일, 독일 본
.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공직: 독일 연방의회 의원 (1949 ~ 1953)
.연인: 수잔느 밀러
.주요저서: 독일 사회민주주의 100년
빌리 아이흘러 (Willi Eichler, 1896 ~ 1971)는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사회민주당(SPD) 소속의 정치인, 이론가다.
그는 독일 사민당이 마르크스주의 계급정당에서 대중정당 및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민정당으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고데스베르크 프로그램 (Godesberg Program, 1959년)’의 핵심 기안자이자 설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아이흘러의 주요저서로 Das Parlament als Repräsentant der Öffentlichkeit im Rundfunk, in: Die Freiheit des Rundfunks, München, 1956; Grundwerte und Grundforderungen im Godesberger Grundsatzprogramm der SPD, Bonn,1962; Hundert Jahre Sozialdemokratie, Bonn, 1973. ‘독일 사회민주주의 100년’, 李泰永 譯, 중앙교육문화, 1989: Sabine Lemke-Müller: Ethischer Sozialismus und soziale Demokratie. Der politische Weg Willi Eichlers vom ISK zur SPD. Bonn 1988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 정치입문
상인집안에서 태어난 아이흘러는 1922년부터 괴팅겐의 철학자 레오나르드 넬손 (Leonard Nelson)의 비서로 일했다.
1923년에 독일사회민주당에 입당한다.
넬손의 추종자로 넬손이 만든 국제사회주의자투쟁동맹의 방침에 따르다가 사회당민주당으로부터 1926년 출당된다.
1932/33년에 아이흘러는 나치반대 투쟁을 위해 국제사회주의자투쟁동맹이 만든 일간지 ‘Der Funke’의 편집인을 역임한다.
1932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독일 공산당과 독일사회민주당의 공동선거운동을 위한 활동으로 많은 유명지식인과 학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 망명
1933년 프랑스로 이주한다.
루테티아 그룹 (Lutetia-Kreis)에 속해 히틀러 독재에 대항하는 인민전선의 형성을 시도한다.
후에 영국으로 가서 다시 독일사회민주당에 합류한다.

- 귀환이후
1946년 그는 독일로 돌아와서 독일사회민주당 재건에 참여한다.
동시에 ‘정신과 행동’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그가 사망하는 1971년까지 발행자를 지낸다.
또한 1951년까지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한다.
정치 경력으로는 사민당 중부라인지역 대표와 1947/48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의원을 지냈다.
1946년에서 1968년까지 독일사민당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슈마허 사후에는 대표의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고데스베르크 강령 준비위원회 대표를 지냈으며, 1947/48년에는 영국군정의 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독일 경제 재건에 관한 일을 했던 프랑크푸르트의 경제자문위원회의 위원도 역임했다.
1949년에서 1953년까지 연방의원을 지냈으며, 1952년부터는 언론, 방송, 영화관련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다.
아이흘러는 전후 독일사회민주당의 영향력있는 강령이론가 중의 하나였으며,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초안작성과 수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에 독일 사회민주당 관련 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공동대표로 일했다.
1971년 10월 17일, 본 (Bonn)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장례식에서는 당시 연방총리였던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 주요 생애와 업적
- 초기 활동과 ‘사회주의전투동맹 (ISK)’ 리더십
출생과 초기 생애: 베를린의 평범한 우체원 가정에서 태어나 상업 교육을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19년 독일 사민당 (SPD)에 입당했다.
레오나르트 넬슨과의 만남: 철학자 레오나르트 넬슨 (Leonard Nelson)의 개인 비서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넬슨이 이끌던 단체가 사민당에서 제명된 후, 1926년 ‘국제사회주의전투동맹 (ISK)’을 창당하는 데 참여했다.
ISK 의장 취임: 1927년 넬슨이 사망한 후 ISK의 의장직을 승계하였으며, 반파시즘 성향의 일간지 《더 푼케 (Der Funke, 불꽃)》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나치즘에 격렬히 저항했다.
- 반나치 저항 운동과 망명 생활 (1933 ~ 1945)
해외 저항 운동 전개: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비밀리에 독일 내부로 반나치 정보지인 ‘라인하르트 서한 (Reinhart-Briefe)’을 배포하며 저항 운동을 지속했다.
영국 망명과 BBC 활동: 1938년 프랑스에서 추방된 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BBC에서 독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반나치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다. 이 시기 런던에서 ‘재영 독일 사회주의 조직 연합’을 창설하는 데 기여했다.
- 전후 복귀와 사민당(SPD) 재건
독일 귀국: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 독일로 돌아와 사민당(SPD) 재건에 본격적으로 동참했다. 1946년부터 1968년까지 사민당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당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의정 활동: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의회 의원(1947~1948년)을 거쳐, 제1대 독일 연방의회 (Bundestag) 의원 (1949~1953년)을 역임했다.
- 고데스베르크 강령 (1959)의 주역과 가치주의 사회주의
고데스베르크 프로그램의 설계자: 그는 사민당 내 강령 준비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당 강령을 제정하는 논의를 주도했다.
이념적 대전환: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투쟁 노선과 전면적인 국유화 정책에서 벗어나, 자유·정의·연대 (solidarity)라는 윤리적·가치적 토대 위에 선 ‘민주적 사회주의 (Democratic Socialism)’를 확립했다. “가능한 한 경쟁을, 필요한 만큼 계획을”이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이 강령을 통해 SPD는 서독 대중에게 수용 가능한 집권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게 된다.
- 후기 활동 및 저술
이론지 《새로운 사회 (Die Neue Gesellschaft)》를 창간하여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말년에는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Friedrich-Ebert-Stiftung)의 상임 이사로 활동하며 정치 교육에 헌신했다.
1971년 10월 17일 본 (Bonn)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장례식에서는 당시 연방총리였던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 저서
- 주요 단행본 및 저서
Weltanschauung und Politik. Reden und Aufsätze 세계관과 정치: 연설과 논문집 : 아이흘러의 정치적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한 가장 대표적인 저서. 1967년
Willi Eichlers Beiträge zum demokratischen Sozialismus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빌리 아이흘러의 기여 : 그의 사후에 사상적 유산을 정리하여 발간된 선집. 1979년
Hundert Jahre Sozialdemokratie 사회민주주의 100년 : 독일 사민당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역사를 다룬 글. 1962년
Individuum und Gesellschaft im Verständnis demokratischer Sozialisten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이해한 개인과 사회 :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를 논한 글
- 편집 및 주요 참여 문서
빌리 아이흘러는 단독 저서 외에도 언론인이자 사민당의 핵심 이론가로서 역사적인 문서들을 주도하고 편집했다.
고데스베르크 강령 (Godesberger Programm, 1959년): 사민당이 마르크스주의 계급 정당에서 대중 정당 (Volkspartei)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 프로그램으로, 아이흘러가 이 강령의 초안 위원회 의장을 맡아 실질적인 집필을 주도했다.
소치알리스티셰 봐르테 (Sozialistische Warte): 나치 정권 시절 프랑스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발행했던 비판적 사회주의 잡지다.
가이스트 운트 타트 (Geist und Tat): 1946년 독일 귀환 이후 그가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했던 월간 정치·문화 잡지다.
- Main Works
Das Parlament als Repräsentant der Öffentlichkeit im Rundfunk, in: Die Freiheit des Rundfunks, München, 1956.
Grundwerte und Grundforderungen im Godesberger Grundsatzprogramm der SPD, Bonn,1962.
Hundert Jahre Sozialdemokratie, Bonn, 1973. ‘독일 사회민주주의 100년’, 李泰永 譯, 중앙교육문화, 1989.
Sabine Lemke-Müller: Ethischer Sozialismus und soziale Demokratie. Der politische Weg Willi Eichlers vom ISK zur SPD. Bonn 1988.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