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2월 13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을 소비에트 연방에서 추방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러: 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1918년 12월 11일 ~ 2008년 8월 3일)은 러시아의 소설가, 극작가 및 역사가이다.
소련 육군 대위 시절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키도 한 그는 1945년 6월, 소련 육군 소령 진급하여 1945년 8월, 2차 대전 종전 후에도 소련군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1945년 11월에 투옥되어 10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다. 197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출생: 1918년 12월 11일, 소련 키슬로보츠크
.사망: 2008년 8월 3일 (89세), 러시아 모스크바
.직업: 작가
.장르: 소설
.수상: 노벨 문학상 (1970년)
.자녀: 익나트 솔제니친 (아들)
.주요 작품: 수용소 군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이며 20세기 문학사와 냉전시대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소련의 작가이자 역사가로 1918년 12월 11일 러시아 끼슬로보쯔끄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찐은 로스또프 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철학.문학.역사학 대학의 통신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포병 중대 장교로 참전해 두 개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2월, 솔제니찐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딸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8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모스끄바의 루비얀까 형무소에서부터 각지의 수용소를 체험했고, 형기가 끝난 1953년부터는 유형지에서 생활했다. 흐루쇼프의 집권과 스딸린 격하 운동의 영향으로 1956년 석방되었다. 랴잔에 정착한 그는 물리와 수학 교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첫 작품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하여 소련과 서방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흐루쇼프 실각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작품 출간이 거부당하고, 원고를 압수당했다.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당시에는 소련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상을 받으러 가지 못했다. 1974년 2월에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되었다.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1976년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버몬트주 캐번디시에 살면서 『붉은 수레바퀴』의 집필에 매달렸다. 1994년 5월, 2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3일 모스끄바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용소군도』는 솔제니찐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실명 작품인 동시에 200명이 넘는 다른 죄수들의 이야기와 기억과 편지들의 기록이다. 『수용소군도』 제1부와 제2부는 1967년에 이미 완성되었으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출판을 미루다가 원고 일부가 KGB에 발각되었다. 솔제니찐은 집필을 중단하고 남은 원고를 서방으로 밀반출시켰고 그 원고들은 1973년 12월에야 파리 YMCA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데 성공했다.
제3부와 제4부는 1974년, 제5부에서 제7부까지는 1976년 발표했다.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되어 3천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록문학이다.

○ 생애 및 활동
소비에트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에서 출생하여 로스토프 대학에서 물리 · 수학을 전공하면서 모스크바에 있는 역사 · 철학 · 문학 전문 학교의 통신 과정을 이수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소련군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장교로 참전하였다. 1962년 소련 문학 잡지인 ‘노비 미르’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련의 관료주의를 비판한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를 발표하여 논란의 초점이 되었다. 두 번째 단편이 발표되면서부터 보수파 평론가들은 “역사적 진실을 잘못 이해한 작품”이라고 비판을 가했으나, 이어서 스탈린 시대를 주제로 한 ‘암병동’과 ‘연옥 1번지’를 완성하였다. 두 작품 모두 국내 출판이 금지되어 외국에서 출판하였다. 위의 작품들이 서방에서 출판되자 정부와 소련 작가 동맹은 그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그 역시 이에 맞서는 공개 서한을 두 번에 걸쳐 작가 동맹에 보낸 바 있다.
1969년 11월에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으나 1970년 12월,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흐루시초프 정권에서 조치하는 사실상 명예 회복 조치도 받았다. 1971년 제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역사 소설 ‘1914년 8월’을 파리에서 출판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1973년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가 해외에서 발표되자 서독으로 추방되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 후 1994년에 러시아로 다시 돌아왔고, 같은 해 시베리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의 언어, 문학 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아들 익나트 솔제니친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솔제니친은 물질주의와 구 소련 체제 등을 함께 비판하며 전통적인 애국주의로의 회귀를 촉구해왔으며, 2008년 8월 4일 새벽, 90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러시아 언론들은 솔제니친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됐다며 애도하였다.
다른 작품으로 ‘자히르칼키타’, ‘사슴과 라겔리의 여인’, ‘오른손’ 등이 있다.

○ 정치적 성향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솔제니친은 시종일관 중도주의를 중요시하면서 공산주의를 비판하였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설 중 “공산주의는 아직도 치료할 수 없는 최악의 미치광이 병”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으며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매달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서구 비평가들로부터 반유대주의자이자 범슬라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85년 그는 미국 상원이 주재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의 저서 ‘1914년 8월’에서 반유태주의적인 분위기가 보인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의 의견은 전형적이었다. 그 누구도 작품을 읽지 않은 대신 한두 전문가 의견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소련에서 ‘1914년 8월’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나를 반애국주의자라고 매도한 것과 똑같았다.”며 혹평하기도 하였다.
1994년 러시아로 돌아온 후 그는 계획 경제체제에서 급격히 혼합경제체제로 경제 개혁을 단행한 보리스 옐친 행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1998년에는 옐친 행정부가 그에게 성 안드레이 페르보잔노보 훈장을 서훈하기로 하였음에도 그는 “몇몇 권력자들 때문에 러시아는 실패한 국가로 전락해버렸다.
나는 이 상은 수여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절했다.

○ 주요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1962년)
암 병동 (Раковый корпус, 서방에서는 1967년 출판, 소련에서는 1990년 출판)
제1원에서 (В круге первом, 서방에서는 1968년 출판, 소련에서는 1990년 출판)
수용소 군도 (Архипелаг ГУЛАГ, 서방에서는 1973 ~ 1975년 출판, 소련에서는 1989 ~ 1990년 출판)
붉은 수레바퀴 (Красное колесо, 1993년)
200년을 함께 (Двести лет вместе, 2001년 1부 출판, 2002년 2부 출판)

○ 평가
제국을 멸망시킨 작가. ― 뉴욕 타임스
솔제니친은 모범적인 고귀함과 극도의 용맹을 지닌 사람이다. 강력한 소설가이자 없어서는 안 될 역사가인 그는 동포들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소련인과 러시아 역사의 이름으로 기괴한 제도를 장엄하게 기소한 예술가, 도덕주의자다. ― 아서 M. 슐레진저 주니어 (미국 역사학자)
솔제니친의 비범한 정치와 지적인 위업은 포로수용소의 지옥에서 나와 현대사에서 도덕적, 기록적 힘이 비할 바 없는 책들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스페인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이반 투르게네프, 레프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와 같은 재능을 가진 문학적 천재다. ― 해리슨 세일스버리 (미국 비평가)
그는 우리의 유일한 살아있는 고전이다. ― 예브게니 옙투셴코
진정한 참된 애국자. ― 블라디미르 푸틴
솔제니친은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도덕적 전통이 끝나는 마지막 러시아 작가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전세계 문학의 관련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도 적어도 100년이상은 지속될 것이다. ― 독일의 소리

○ 수상
대조국전쟁 훈장 2등급 (1943년 8월 15일)
적성훈장 (1944년 7월 12일)
1941년에서 1945년까지 위대한 애국 전쟁에서 독일에 대한 승리에 관한 훈장 (1957년)
쾨니히스베르크 점령 훈장 (1958년)
프랑스 언론인상 (1969년)
노벨문학상[24] (1970년)
이탈리아 언론인 연합 Golden Cliché 상 (1974년 5월 31일)
프랑스 언론 ‘Le Point’ 선정 올해의 인물 (1975년)
템플턴상 (1983년)
랴잔시 명예 시민 칭호 수여 (1990년 9월 20일)
RSFSR 국가상 문학 부문 (1990년 12월)
로모노소프 황금 메달 (1998년)
사도 성 안드레이훈장 (수상거부, 1998년)
성 모스코프스키 왕자의 훈장 (1998년)
프랑스 도덕 정치 과학원 대상 (2000년 12월 13일)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명예 박사 (2003년)
성 사바 훈장 (2004년)
올해의 러시아 국가 혁신상 (2004년)
러시아 연방 국가상 (2006년)
불가리아 보테브상 (2008년)
루마니아의 별 훈장 1등급 대십자 (2008년)

○ 솔제니친 어록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죽음에 대한생활의 투쟁에서 나를 지키고 싶다. (1966)
진실에의 길을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이 길을 넓히는데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스탈린의 죄악을 덮어둘 수는 없다. 진리를 영원히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수백만 명의 인간에게 부당한 행위가 가해져 왔으며 이들은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 행위를 숨김으로써 젊은이들에게 미칠 도덕적인 영향에 대해 우리는 어째서 생각해서는 안 되는가? 이는 수백만 명의 인간이 또 다시 도덕적으로 진 구렁에 빠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1969)
훌륭한 작가는 제2의 정부와 같은 기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부이건 위대한 작가를 달가와 하지 않으며 소인 적인 작가만을 좋아할 뿐이다. (1968년 ‘지옥의 첫 순례’에서)
세계에서는 현재 우리 나라의 문학수준을 빈약하고 수준이하라고 평가하고 있다. 만약 진리에의 길이 지금처럼 너무 좁거나 폐쇄되지만 않았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조국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도 커다란 손실이다. (1967)
작가의 사명이란 어느 한국가나 다른 국가 체제에 봉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과 양심의 비밀, 죽음과 삶의 대결, 영혼의 고통에 대한 극복, 역사에 나타난 인류 진화의 법칙 등 범세계적이고도 영원한 것을 주제로 삼아야한다. (1967)
사회의 치부와 고민을 파헤치지 못하고 도덕적 · 사회적인 위험을 예고하지 못하는 문학활동은 문학이라 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허황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학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읽히지도 않을 것이며 낡은 휴지 쪽에 지나지 않는다. (1967)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