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26일, 중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 린위탕 / 임어당 (林語堂, 1895 ~ 1976) 별세
린위탕 / 임어당 (林語堂, 1895년 10월 10일 ~ 1976년 3월 26일)은 중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이다.
푸젠 성 (福建省) 룽치 (龍溪)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하이의 세인트 존스 대학 (聖約翰大學)을 졸업하고, 베이징 칭화 학교 (北京淸華學校)의 영어 교사가 되었다. 1919년 하버드 대학에 건너가 언어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얻었으며 1921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예나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하고 1923년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로 베이징 대학, 베이징 여자 사범대학 교수를 지냈다. 1926년에는 샤먼으로 옮겨 샤먼 대학 문학장, 1929년 이후 상하이 둥우 대학 영어 교수를 지냈으며 1932년에는 유머 잡지 ‘논어’를 발행하여, 그 당시의 중국 사회를 풍자·비판하였다. 영어를 가지고 수필도 쓰고 중국의 고전을 영어로 번역하여 중국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였다. 1935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서 살면서,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 1953년 UN총회 중국 대표 고문, 1954년 싱가포르 난양 대학 창립에 참여하였고 1966년 타이완으로 이주 후 1967년 홍콩 중문대학 교수. 대표 저서 ‘생활의 발견’ 生活的藝術)에서 생활 속의 철학을 풀이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국제적 인물로 꼽힌다. 저서에 ‘북경호일’, ‘폭풍우 속의 나뭇잎’, ‘경화연운’ 등이 있다. 1968년에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강연한 일도 있다. 그 이외에 국어라마자를 개발했다.
1976년 3월 26일, 홍콩에서 사망하였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 석학 (碩學)으로, 흔히 ‘세계의 지성’, ‘자유사상가’ 등으로 대변된다.
중국 복건성에서 가난한 목사 집안 출신으로 태어나 상하이 성 요한대학 (聖約翰大學) 졸업 후 미국 하버드 대학과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그는 40세 때 쓴 자서전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표명했다.
“두 다리로는 동서 (東西)의 문화를 밟고, 한 마음으로 우주의 문장을 평 (評)한다.”
과연 그는 동서양의 문화를 하나의 도가니에 용해시켜 독자적 (獨自的)인 세계를 구축 했으며, 그 안에서 생겨난 사상과 문학을 세계를 향해 열정적으로 쏟아낸 대인 (大人)이었다.
임어당 사상의 중추를 이루는 것을 크게 분류하면, ‘자유사상’, ‘자연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동양을 대표하는 유머리스트 (humorist)이지만, 그의 유머는 단순한 익살이나 해학에 그치지 않고, 항상 인간애를 내포한다.
“행위는 공자를 숭상하고, 사상은 노장 (老壯)에 근본을 둔다.”
“문장은 유머러스해야 하지만, 그 사람됨은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평생 동안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다.

– 린위탕 / 임어당 (林語堂)
.본명: 임옥당 (林玉堂)
.출생: 1895년 10월 10일, 중국 Banzai, Fujian, Zhangzhou
.사망: 1976년 3월 26일, Hong Kong
.배우자: Lin TsuiFeng (1919 ~ 1976)
.자녀: Lin Tai-yi, Adet Lin, Lin HsiangJu
임어당 (林語堂)은 중국의 세계적 작가ㆍ번역가ㆍ교육자ㆍ풍자가로 1895년 10월 10일 중국 복건성 (福建省) 용계현 (龍溪縣) 아모이 근교에서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본명은 임옥당 (林玉堂).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하다가 1966년 대만의 대북시 교외에 거주하였다. 중화민국 작가회 회장(70) 역임. 생전에 약 40권의 영어 저서를 집필하여 17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홍콩의 ‘퀸 메어리 병원’에서 폐렴으로 1976년 3월 26일사망했다.
그는 상해(上海) 요한(聖約翰)대학 졸업. 하버드대학ㆍ라이프치히대학에 유학하여 언어학을 전공, 북경(北京)대학ㆍ북경여자사범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정부의 탄압으로 아모이(厦門)대학으로 옮기고 뒤에 우한(武漢) 정부에 들어갔다.
1927년 이래 상해에 잇으면서 문필을 업으로 하고, 특히 1932년 이래 <논어(論語)> <인간세(人間世)> <우주풍(宇宙風)> 등의 소품문 잡지를 주재, 소위 유묵(幽黙) 문학을 범람시켰다.
산문집으로 <전불집 (翦拂集)> <대황집 (大荒集)>이 있다. 또 [챠이나 크리틱스] [뉴욕 타임즈]에 기고, 예리한 평론가로서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1936년 도미 (渡美), 중국의 문화를 논한 <아 국토 아 국민 (我國土 我國民)>(1936), 장편소설 <북경호일 (北京好日)>(1939)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들었다. 그 밖에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1937), <북경호일>의 속편 <폭풍 속의 나뭇잎>(1941) <눈물과 웃음 사이> (1943), <침과대단 (枕戈待旦)>(1945) <미국의 지혜> (1950) 등 영문 저술이 많으며, 언어학 논문집으로는 <어언학 논총 (語言學論叢)>, <문예대사전> (학원사.1969)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임어당 (林語堂)은 1895년 중국 복건성 (福建省) 용계 (龍溪)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중국에 있는 미션계 상해 (上海) 세인트존즈 대학을 마친 뒤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 (言語學)과 음운학 (音韻學)을 연구하고, 1923년 북경대학 (北京大學) 교수를 지냈고, 노신 (魯迅)ㆍ주작인 (周作人) 등과 함께 어록사 (語綠社)에 가입, 무한정부(武漢政府) 외교부 비서가 되어 반봉건 투쟁에 나서는 한편, 급진적인 문필 (文筆)을 펴기 위해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영문 (英文)으로 저술한 것이 많은데, 중국문화를 서유럽에 소개하는 <나의 조국, 나의 민족>과 <생활의 발견> 등이 특히 유명하다.
임어당 (林語堂)의 이러한 폭 넓은 학식과 동서 고전 및 언어의 자유로운 구사 등이 장점이어서 전후에는 유네스코 예술문학부장 일도 했다. 임어당 (林語堂)은 세계적인 문명비평가ㆍ작가 등으로 소개되었음은 물론, 세계적인 명작을 수록하는 <모던 라이브러리>에 그의 저작이 <동양의 지혜>라는 제하 (題下)에 출판된 것을 보아도 그의 명성이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겸손하게도 자기는 심원 (深遠)한 사상가도 아니고, 또 박학다식하지도 않다고 <생활의 발견> 서문에 썼거니와, 그러면서도 중국인 특유의 관능적인 무엇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적인 교양을 조화시키는 저자의 놀라운 통찰과 다식 (多識)에 압도된다.
중국의 소설가ㆍ문명비평가. 원이름은 위탕 (玉堂). 푸젠성 (福建省) 룽치 (龍溪)의 가난한 목사 집안 출신. 상하이 (上海)의 성 요한대학 (聖約翰大學) 졸업 후 베이징 칭화학교 (北京淸華學校) 영어교사가 되었다. 1919년 하버드대학에 유학, 언어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1921) 예나, 라이프치히 두 대학에서 수학했다. 1923년 귀국하여 국립 베이징대학 영문학 교수가 되었는데, 음운학 (音韻學)을 연구하는 한편 루쉰 (魯迅) 등의 어사사 (語絲社)에 가담하여 평론을 썼다.
1926년 군벌정부의 탄압을 피하여 아모이 (厦門)대학 문과 주임, 이듬해 우한정부 (武漢政府)에 가담하여 그 외교부 비서가 되었다. 1932년 유머와 풍자를 주장하는 [논어], 1934년 소품문지 (小品文誌) [인간세 (人間世)] 등을 창간, 소품문을 유행시켰으며, 1935년 <아국토아국민 (我國土我國民)>을 쓰고, 이듬해 영국으로 가서 <생활의 발견> (1938) 등으로 중국문화를 소개하였다. 소설 <북경호일 (北京好日)> (1937) <폭풍 속의 나뭇잎> (1941) 등에서는 근대중국의 고민을 표현하였다. 영문 저작으로는 모국문화의 옹호, 중국문으로는 모국의 속물성 (俗物性)을 풍자하였으며, 뛰어난 세계문화 창조에는 상식ㆍ이성 (理性)ㆍ생활감정 등을 교묘하게 조화하는 중국정신이 유효하다는 주장은 미래소설 《The Unexpected Island》(1955)에도 잘 나타나 있다.

중국어와 영어로 다양한 작품을 많이 쓴 중국의 작가. 1930년대에 사회 풍자를 주로 다루고, 서구식 저널리즘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어 잡지를 여러 권 창간했다.
중국 그리스도교 장로회 목사의 아들로 린위탕은 성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20대 초반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고 영어교수가 되었다. 1919년에 그는 미국과 유럽으로 가서 하버드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진보된 학문을 공부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계속 교편을 잡으면서 여러 영어잡지의 편집자로 일하는 한편 중국어 문학잡지에 수필을 기고했다. 중국에서 린위탕의 작가 생활이 절정에 도달한 것은 그가 논어 (論語)라는 잡지를 창간한 1932년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중국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유형의 서구식 풍자잡지였다. 이 반월간지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곧 2개의 출판물을 더 선보였다.
1935년에 린위탕은 수많은 영문저서 가운데 첫 번째인 <나의 조국 나의 국민 (My Country and My People)>을 출판했다. 출판 즉시 대성공을 거둔 이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오랫동안 중국에 대한 권위있는 교과서로 간주되었다. 이듬해 대중적 요구에 부응하는 역사 이야기와 소설을 쓰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가, 빠른 속도로 책을 써냈다. 이 시기에 출판된 저서로는 <북경호일 (北京好日)> (1937)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 (1940) <폭풍 속의 나뭇잎 (A Leaf in the Strome)> (1941) <중국과 인도의 지혜 (The Wisdom of China and India)> (1942) 등이 있다.
린위탕은 1943년과 1954년에 잠시 중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때마다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런 논쟁은 문학에 대한 그의 견해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공산당의 문학 비평가들은 대부분 순수 선전과 사회 교육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자기 표현으로서의 문학을 지지했다. 2번째 중국 여행이 실패로 끝난 뒤, 그는 미국에 남아서 중국 역사와 철학에 대해 더 많은 책을 썼다. <중국 명작 단편집> (1952)을 비롯하여 그가 영어로 번역한 중국 문학의 걸작들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유주의자로 불리며 세계정부를 제창하였다. 1970년 6월, 제37차 국제 펜클럽 대회 참석차 한국에 왔었다.
이 시기 저서로 <눈물과 웃음 사이> (1943) <미국의 지혜> (1950), <임어신중영사전 (林語新中英辭典)>, <주홍문>, <중국 명작 단편집> (1952) 등이 있다.

○ 저서
주요저서로 1935년에 첫 번째 저서 <나의 조국 나의 국민 (My Country and My People)>을 출판한 이래 <북경호일 (北京好日)> (1937),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 (1940), <폭풍 속의 나뭇잎 (A Leaf in the Strome)> (1941), <중국과 인도의 지혜 (The Wisdom of China and India)> (1942), <눈물과 웃음 사이> (1943), <미국의 지혜> (1950), <임어신중영사전 (林語新中英辭典)>, <주홍문>, <중국 명작 단편집> (1952) 등이 있다.
- Works by Chinese or published in China
(1928) Jian Fu Collection (Shanghai: Bei Hsin Book Company)
(1930) Letters of a Chinese Amazon and War-Time Essays (Shanghai: Kaiming)
(1930) Kaiming English Books (Three Volumes) (Shanghai: Kaiming)
(1930) English Literature Reader (Two Volumes) (Shanghai: Kaiming)
(1930) Kaiming English Grammar (Two Volumes) (Shanghai: Kaiming)
(1931) Reading in Modern Journalistic Prose (Shanghai: Oriental Book)
(1933) A Collection of Essays on Linguistics (Shanghai: Kaiming Book)
(1934) Da Huang Ji (Shanghai: Living)
(1934) My Words First Volume (Sing Su Ji) (Shanghai Times)
(1935) Kaiming English Materials (Three Volumes) co-written by Lin Yutang and Lin you-ho (Shanghai: Oriental Book Co.)
(1935) The Little Critic: Essays Satires and Sketches on China First Series: 1930-1932 (Shanghai: Oriental Book Co.)
(1935) The Little Critic: Essays Satires and Sketches on China Second Series: 1933-1935 (Shanghai: Oriental Book Co.)
(1935) Confucius Saw Nancy and Essays about Nothing (Shanghai: Oriental)
(1936) My Words Second Volume (Pi Jing Ji) (Shanghai Times)
(1966) Ping Xin Lun Gao e (Taiwan: Wenxing Bookstore)
(1974) A Collection of Wu Suo Bu Tan (Taiwan: Kai Ming Book Company)

- Works in English
(1935) My Country and My People, Reynal & Hitchcock, Inc., (A John Day Book)
(1936) A History of the Press and Public Opinion in China, Kelly and Walsh
(1937) The Importance of Living, Reynal & Hitchcock, Inc., (A John Day Book)
(1939) The Wisdom of Confucius, Random House, The Modern Library
(1939) Moment in Peking, The John Day Book Company
(1940) With Love & Irony, A John Day Book Company
(1941) A Leaf in the Storm, A John Day Book Company
(1942) The Wisdom of China and India, Random House
(1943) Between Tears & Laughter, A John Day Book Company, a plea for the West to change its plans for the post world war order, ((1945), published in London by Dorothy Crisp & Co Ltd.)
(1944) The Vigil of a Nation, A John Day Book Company
(1947) The Gay Genius: The Life and Times of Su Tungpo, A John Day Book Company
(1948) Chinatown Family, A John Day Book Company
(1948) The Wisdom of Laotse, Random House
(1950) On the Wisdom of America, A John Day Book Company
(1951) Widow, Nun and Courtesan: Three Novelettes From the Chinese Translated and Adapted by Lin Yutang, A John Day Book Company
(1952) Famous Chinese Short Stories, retold by Lin Yutang, The John Day Book Company, reprinted 1952, Washington Square Press
(1953) The Vermilion Gate, A John Day Book Company
(1955) Looking Beyond, Prentice Hall (Published in England as The Unexpected Island, Heinemann)
(1958) The Secret Name, Farrar, Straus and Cudahy
(1959) The Chinese Way of Life, World Publishing Company
(1959) From Pagan to Christian, World Publishing Company
(1960) Imperial Peking: Seven Centuries of China, Crown Publishers
(1960) The Importance of Understanding, World Publishing Company
(1961) The Red Peony, World Publishing Company
(1962) The Pleasures of a Nonconformist, World Publishing Company
(1963) Juniper Loa, World Publishing Company
(1964) The Flight of Innocents, Putnam’s Publishing Company
(1964) Lady Wu, Putnam’s Publishing Company
(1967) The Chinese Theory of Art, Putnam’s Publishing Company
(1972) Chinese-English Dictionary of Modern Usag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and McCraw
(1928-1973) Red Chamber Dream

○ 부록
– 임어당 고거 (林語堂故居)
임어당 (林語堂)의 가장 유명한 한마디 중 “강연은 여성의 치마와 같아서 짧을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이 해학적인 한마디는 몇십년전에 나온 말로서, 문단에서의 효시가 되었다. 임어당은 비단 유머 (Humor) 번역 뿐아니라, 유머 문학을 제창하고 있는데, 영문서적으로 이름을 날린 해외의 중국 작가로서, 언어학자, 철학가, 문학가, 여행가 및 발명가를 역임한 근대 중국 학자이다. 1966년 임선생은 대만으로 돌아와 정착하였는데, 이 양옥집은 그가 직접 설계한 중국 사합원과 서양식 미학이 결합된 건축물로서, 푸른 기와에 하얀색 담과, 아치형 회랑은 모던한 느낌과 클래식한 미를 융합시켰다. 그는 이 주택을 “집에 정원이 있고, 정원에 건물이 있으며, 건물에 정원이 있고, 정원에 나무가 있으며, 나무에는 하늘이 있고, 하늘에는 달이 있으니, 그 얼마나 유쾌하지 않은가”라고 묘사했다. 베란다는 임선생이 생전에 자주 가던 곳으로, 저녁을 먹은 후, 임선생은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해가 저무는 관음산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 임어당_생활의 발견
언젠가 林語堂은 잎담배를 물고 유연하게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니! 아마도 ‘내가 존재하기에 나는 생각한다’이겠지. 저녁노을에 아름다운 구름이 있고 호수에 드리운 그림자는 꿈처럼 청명하고 늦가을의 살진 게는 더욱 맛있는데 도 대체 어디에 불만이 있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인 특유의 여유와 관능과 시적인 이교도 정신이 서구의 추상적인 논리중심 철학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살아있음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Living)이라는 영어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우리가 숨쉬고 있음을 축복하는, 땅을 위한 기도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 문학, 문화, 심지어 국민성에 이르기까지 글쓴이의 해박한 지식을 총망라하면서 기지와 유머를 곁들여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책은 수필의 형식을 빌렸지만 구절구절이 주옥같은 언어들로 꿰어진 한편의 거대한 시라고 볼 수 있다.
이뿐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성도 현실감보다 이상(꿈)이 지나치면 혁명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이 둘 사이를 조화하는 유머가 필요하다. 문화의 발전을 위해 적당량의 시적 감수성도 첨가되어야 하고, 인생은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기에 우리에겐 역설적으로 유머가 요구된다. 인간을 위해 전쟁을 시작한 사람은 묘하게도 가장 용기 없고 유머의 자질이나 깊이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즐거운 철학, 사유의 단순함이 없으면 꿈의 노예가 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다.
논리는 논쟁을 부르고 논쟁은 투쟁으로 이어지기에 林語堂은 진지함보다 가벼움을 찬양한다. 가장 서툰 글쟁이는 온갖 추상적이고어려운 단어를 늘어놓지만 가장 완숙한 글쟁이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료하게 쓴다.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 노자와 장자의 노장사상, 그리고 陶淵明을 비롯한 중국의 사상가와 문학작품들을 군데군데 인용해 자기 글의 품격을 높이고 중국의 문화와 전통을 서구에 소개하는 林語堂은 그에 못지 않게 몇몇 미국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털어놓는다. 서구보다 중국에 가까운 그 시인들은 에머슨, 소로, 휘트먼이다. 에머슨과 林語堂은 닮은 점이 많다. 기독교의 도그마를 거부하고 자연과 우주의 신을 믿은 것, 개인의 홀로서기와 조국의 지적 독립이라는 긍지를 고취한 것, 그리고 둘 다 수필을 많이 썼으나 시인으로 불리는 것. 물론 에머슨이 좀더 물질보다 정신을 강조했지만.
주와 만물의 이치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깨닫고 인간의 삶에꼭 필요한 물질은 얼마만큼일까를 스스로 발견하기위해 도끼 하나를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갔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林語堂이 반겨맞는 수필가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 솔직한 현실주의,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기 위한 은둔은 그가 미덕으로 삼은 중용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林語堂은 휘트먼을 가장 좋아한다. 추상보다 현실, 하늘보다 땅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은 영혼 못지 않게 육체를 중시했다. 지나치게 논리를 추구하는 서양사상의 자리옆에 일상과 관능을 중시하는 중국사상을 나란히 놓으려던 林語堂에게 휘트먼은 매력을 던진다. 본능과 육체를 거리낌없이 찬양했기 때문이다.
또한 풀잎의 강한 생명력을 개인의 존엄성과 연결시켜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진 휘트먼의 생각은 공자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다를 게 없다.
육체와 본능을 축복하기에 林語堂은 먹는 행위를 지적 행위보다 우선시키고 요리법을 중시한다.
“중국에서 식물학이나 동물학이 발전하지 못한 원인은 학자들이 물고기를 보면 냉정하게 관찰해야 하는데 우선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을까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인 그 부인이 사회의 비리를 파헤쳐 사회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한들 가스불을 켜놓고 바삐 먹어대는 10분간의 식사라면 그게 무슨 의미있는 삶인가.”
논리보다는 상식, 사물의 정의보다는 인간의 도리를 앞세우는 그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가장 큰 미덕으로 보았다. 공산주의도, 극우파도 싫었던 그에겐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인간이 소중했다.
중용은 기회주의나 회색분자가 아니고 작용과 반작용의 미묘한 조화와 균형을 의미한다. 우리가 감각과 관능을 일깨우고 중용의 눈을 지니고 우리 삶이 길어야 고작 70년이며 흙에서 낳아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으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는게 이 책의 핵심이다.
“어리석기도 어렵고 현명하기도 어렵지만 현명함을 얻은 후 어리석은 경지로 들어서기는 정말 어렵다.”(18세기, 정판교의 말)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고, 가장 뛰어난 웅변은 말을 더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던 노장사상은 역설과 아이러니로 논리를 해체시키고 무위와 소요를 미덕으로 삼아 당대의 유교사상과 대립을 보였던 중국의 사상이다. 그런데 유교에 비해 노장사 상이 이 책에서 훨씬 돋보이는데 이것은 혹시 林語堂 자신이 그토록 내세우는 중용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여기서 이 책이 쓰였던당시를 잠깐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는 이념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공산주의의 획일적인 논리가 싫어 조국을 등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시 세계는 정복욕과 야심을 거창한 논리로 미화시킨 일본과 독일의 파시즘이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키던 때였다. 또 미국의세가지 악덕에서 예를 들었듯이 그는 능률의 숭상, 정확성의 추구, 성공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국가를 점점 신경질과 불행속으로 몰아넣어 인간이 과학과 기계문명의 창조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서구문화가 너무 압도됐기에 동양문화가 강조되었듯이 이런 고조된 분위기를 순화시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대논리가 강조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이 오늘날까지도 이 책을 읽어야할 고전으로 만드는 이유다. 대립과 갈등과 투쟁은 여전하고 기술문명에 대한 맹신은 높아지고 경쟁의식은 부추겨져 오늘날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있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허둥대고 있지는 않은가. “봄 비가 오면 책읽기에 좋고, 여름 비는 바둑두기에 좋고, 가을 비는 오래된 가방이나 서랍을 뒤지기에 좋고, 겨울 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 『봄 바람은 술이요, 여름 바람은 차(茶), 가을 바람은 연기며 겨울바람은 생강과 같다.” 경쟁의식에 시달릴 때, 외로울 때, 실패할 때, 누군가가 미울 때, 질투를 느낄 때, 욕심을 느낄 때, 가족이나 연인의 죽음을 겪을 때, 그리고 왜사는지 이유를 모를 때 이 책은 옛친구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다독거려 준다. _ 權澤英(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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