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2월 18일, 미국의 엔지니어•사업가로 노스럽 그러먼 설립자 잭 노스럽 / 잭 노스롭 (John Knudsen “Jack” Northrop, 1895 ~ 1981) 별세
잭 노스럽 / 잭 노스롭 (John Knudsen “Jack” Northrop, 1895년 11월 10일 ~ 1981년 2월 18일)은 미국의 항공사업가이자 설계자이다. 1939년 노스럽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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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크누센 “잭” 노스롭 (John Knudsen “Jack” Northrop)
.출생: 1895년 11월 10일,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사망: 1981년 2월 18일
.성별: 남성
.국적: 미국
.경력: 사업가, 항공 설계자
.활동 기간: 1939년 ~
.소속: 노스롭
잭 노스롭은 미국의 항공사업가이자 설계자로, 항공제작사인 노스롭 (현 노스롭 그루먼)의 창업자이다.
1939년 잭 노스롭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처음으로 회사 ‘노스롭’을 설립했고, 1985년 델라웨어주에서 ‘노스롭 주식회사’로 법인전환했다.
노스롭사는 1994년 별개의 기업이었던 그루먼과 합병하여 현재의 ‘노스롭 그루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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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및 활동
잭 노스럽 (John Knudsen “Jack” Northrop)은 1895년 11월 10일,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에서 자랐다.
- 항공업계 입문
항공업계서 첫 직업은 1916년 ‘로헤드 (Loughead Aerospace) 사’에서 설계사로 일한 것이다.
1923년에는 더글러스 사에 취직해 ‘더글러스 월드 크루저’ 등의 항공기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1939년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항공기 제작사 ‘노스롭’을 설립했다.
1939년 잭 노스롭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처음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1985년 델라웨어주에서 노스롭 주식회사로 법인전환했다.
노스롭사는 1994년 별개의 기업이었던 그루먼과 합병하여 현재의 노스롭 그루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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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익기의 개발
잭 노스롭의 평생 꿈이라 할 수 있던 것이 바로 전익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이 나치독일에 패전할 것을 우려하여, 미국 본토에서 독일을 폭격하기 위해서 10000마일 (=약 16000km)의 항행거리를 가지는 초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을 요구했다. 이에 노스롭은 전익기만이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치 독일이 전익기 Ho229 를 만들어 내는 동안 잭 노스롭도 N1M과 N9M라는 전익기를 제작했다.
그렇게 개발이 시작된 것이 YB-35였는데, 하지만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완성하긴 했지만, 쓸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프로펠러의 한계로 인해서 안정성이 떨어지며 결국 미군에게 채택되지 못하고 모두 스크랩처분 되었다.
이렇게 실패로 끝나나 했지만, 노스롭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 왔다. 바로 냉전의 시대가 시작됨에 따라 소련을 견제할 수단이 필요해 졌고, 미국은 다시 한번 초장거리 폭격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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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롭은 신규 기술인 제트 엔진을 장착한 YB-49를 개발을 시작했는데, 본체는 기존에 개발된 XB-35를 바탕으로 개발을 했다. 하지만, XB-35 가 태생적으로 제트 엔진용이 아니었다 보니 구조적인 문제가 많았다. 결국 시험 비행중 사고가 발생하였고, 미군은 이 비행기의 개발 지원을 포기했다.
결국 노스롭은 평생 꿈꾸던 전익기 개발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은퇴했다. 또한, 그가 만든 회사인 노스롭 그루먼도 전익기의 개발을 포기했다.
그런데, 레이더와 대공 미사일 발전으로 U-2 격추 사건으로 고고도 비행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고, XB-70이나 SR-71 같은 초고속 비행 역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스텔스라는 개념이었다. 결국 노스롭 그루먼사는 잭 노스롭의 유산인 XB-35와 YB-49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스텔스 전익기 개발을 진행했고, 결국 B-2 전략 폭격기를 완성시켰다.
1979년경 노스롭 그루먼사는 비밀리에 잭 노스롭을 초대하여 당시 최고기밀로 취급되던 B-2의 목업 (mock-up)을 보여 주었다. 그는 비록 육체적, 정신적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오래전 자신의 염원이었던 전익기를 목업이나마 보게 되고서는, “어째서 신이 지난 25년간 나를 살려놓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Now I know why God has kept me alive for 25 years”)라는 감상을 남겼다. 이 일화는 잭 노스롭이 실제로 B-2의 미니어쳐 목업을 살펴보는 장면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공개되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위 문구는 상기된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 있던 잭 노스롭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방명록에 적은 내용이다.
잭 노스롭은 B-2 의 완성을 본 뒤 약 1년후인 1981년 2월 18일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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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익기 개발에 일생을 바친 노스럽
오늘날 세계적 방산 업체인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 Corporation)의 전신 중 하나인 노스럽의 창업자 잭 노스럽 (Jack Northrop)은 전익기의 장점을 일찌감치 깨닫고 개발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1929년에 만든 X-216H 실험기는 자세 제어용 미익이 달려있어서 완벽한 전익기로 볼 수 없지만, 이렇게 터득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41년 7월 3일 완벽한 전익기인 N-1M 비행에 성공했을 만큼 그는 시대를 선도했다.
잭 노스럽은 전익기가 급격한 기동을 요하는 전투기 같은 소형기보다 탑재량이 많은 장거리 대형기에 적합한 구조임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즈음 미 육군 항공대 (현 공군)는 10,000파운드의 폭탄을 탑재하고 10,000마일을 비행할 수 있는 차세대 폭격기의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노스럽은 전익기 형태의 폭격기를 당국에 제안했고 이것이 눈길을 끌어 1941년 11월 XB-35의 개발을 승인받았다.
잭 노스럽은 실험을 위해 크기를 1/3로 축소한 N-9M 제작을 시작으로 본격 개발에 나서 1946년 XB-35 제작을 완료했다.
실험용으로 총 15기가 제작되었으나 경쟁에서 B-36에 패했고 2기가 제트 엔진을 장착한 YB-49로 개조되어 1947년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비행이 불안정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고 1기가 추락하는 사고까지 당한 후 YB-49 개발은 1950년 완전히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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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하늘에 떠있는 연과 달리 비행기는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자세 제어가 어렵다는 것은 실용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고 이로 인해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경영에서 물러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컴퓨터, 플라이 바이 와이어를 비롯한 각종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YB-49 실험을 통해 전익기가 스텔스 구현에 적합한 형상임을 알게 되었던 점도 부활할 수 있었던 단초였다.
1970년대 말 미국이 차세대 폭격기 개발을 시작하자 전익기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하우를 보유한 노스럽이 계약자가 된 것은 당연했다.
1980년 개발팀이 잭 노스럽을 찾아가 당신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며 B-2 모형을 선물로 주자 그는 “왜 신이 나를 25년 더 살게 했는지 오늘 알게 되었다”며 감격해 했다.
이처럼 B-2는 수많은 실패의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이 있었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산 무기 개발 과정을 보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닦달하고 실패하면 문책만 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비리는 당연히 발본색원해야 하지만 연구나 개발 중 발생하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좋은 무기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전익기에 일생을 바친 잭 노스럽에게서 배워야 할 부분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다. (남도현 군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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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나무위키,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