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3월 27일, 중국의 소설가로 중국 현대문학의 기초를 닦은 마오둔 (茅盾, 1896 ~ 1981) 본명은 심덕홍 (沈德鴻) 별세
마오둔 (茅盾, 1896년 7월 4일 ~ 1981년 3월 27일)은 중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평론가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학 공작자, 마오쩌둥주의 문학 공작자이다.

– 마오둔 (茅盾)
.본명: 심덕홍 (沈德鴻)
.출생: 1896년 7월 4일, 중국 자싱 시 우전 진
.사망: 1981년 3월 27일, 중국 베이징
.조부모: Shen Enpei
.분야: 소설가, 작가, 평론가
.정당: 중국공산당
.담당 공직: Minister of Culture of the PRC of China (1949 ~ 1965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50년부터 일어난 항미원조 운동에서 문화부 총책을 담당하였다. 마오쩌둥 집권 기간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부장이다.
5·4신문화운동 선구자의 한 사람,중국 현대문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저장성 퉁샹 현 (桐鄕縣) 출신으로 그는 10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1913년 베이징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1916년 졸업 후 상하이 상무인서관 편집부 근무, 이로부터 그의 문학 생애가 시작되었다. 1920년 [소설월보] 주간이 되었다. 동년 12월,정전둬 (鄭振鐸) 등과 문학연구회를 발기하여 성립시켰다. 제1차 국내 혁명전쟁 시기에 정치활동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국민당 중앙선전부 비서,우한 (武漢)의 중앙군사정치학교 교관, [민국일보] 주간으로 종사하였다.
대혁명 실패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 봄상하이로 돌아와 중국좌익작가연맹에 가입하였다. 1937년 이후, 우한에 가서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 이사를 맡았고,『문예진지』를 주편하였다. 1938년 겨울,신장 (新疆)으로 가서 신장 각족문화협회 연합회 주석을 맡았다. 1940년 5월 옌안 (延安)으로 갔으며, 1940년에 충칭 (重慶)으로 갔다. 뒤에 또 구이린 (桂林), 홍콩으로 가서 『대중생활』 편집위원을 맡았다. 1946년에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1949년 인민정부 성립 후,중국문련 부주석,중국작가협회 주석,문화부장,제1차 제5회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전국정치협상 회의 상무위원,제4,5회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의 직책을 맡았다. 문화대혁명 때는 영화화된 그의 소설 『임상점 (林家鋪子)』이 비판을 받았으며, 1981년에 세상을 떠났다.

○ 생애 및 활동
자는 안빙 (雁氷)으로, 본명은 심덕홍 (沈德鴻), 별명은 심안빙 (沈雁氷), 필명은 마오둔 (茅盾)이다.
신문학 작가이자 코민테른 혁명 작가, 문학 공작자, 항미원조 운동에서 문화부 총책을 담당하였다.
1896년 저장성 가흥에서 태어났으며 1914년 북경대학교 문과 (文科) 예과반에 들어간 뒤 소설과 비평을 발표했고, 1920년 5월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천두슈의 상하이 공산주의 소조를 거쳐 1921년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5년 ‘프롤레타리아트 예술론’이라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1921년부터 <공산당>, <소설월보>, <신청년> 등 문예 전선에서 제3인터내셔널 문학 진지 확보에 나섰고 상하이 상무인서관 편집원으로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아 직원 파업을 열기도 했다.
덩중샤, 취추바이, 궈모뤄 등과 함께 상하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26년에는 선전 공작의 주축으로 마오쩌둥의 비서직에 있었다.
1927년 난창봉기와 추수봉기가 실패된 후는 검거를 피하여 1928년 7월 일본 제국으로 피신해서 문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30년 4월 상하이로 귀국하였다.
랑손 (郞損), 현주 (玄珠), 방벽 (方璧), 지경 (止敬), 미명 (微明), 심명보 (沈明甫) 등의 여러 필명을 사용하였으며 주로 국민 정부 통치 지역과 조계지에서 비밀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코민테른의 상하이 좌익작가 연맹에서 저우언라이와 취추바이의 밑에서 집행 서기를 맡았으며, 이른바 ‘국방문학 (國防文學) 논전’에서는 ‘민족 혁명 전쟁의 대중 문예’를 주장하여 중화민국 정부에 대한 협력을 반대하고 루쉰, 취추바이 등과 좌련의 해산에도 반대하였다.
마오둔은 그러나 중일전쟁 기간 국공합작을 맞이하여 더욱 자유로운 소비에트주의 공산주의 혁명 활동의 기회를 얻는다.

좌익 작가 연맹 시기 이후로 상하이, 창사, 우한, 광저우 등지의 혁명 일선에서 작가 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39년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방문하였으며, 1940년에는 옌안의 루쉰 예술학원에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장칭 등과 함께 혁명 지도 공작에 참여하였다.
그후 충칭, 홍콩 등지에서도 비밀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 12월에는 소련 공산당의 대외 문화 공작자 교류의 일환으로 아내 쿵더즈 (孔德沚)와 함께 소련 공산당을 방문하였고, 1947년 4월 상하이로 귀국했으며, 1949년 1월에 베이핑으로 이동하였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후에는, 마오쩌둥의 중공 혁명 문학 비서, 중앙인민정부 위원, 정무원 문화교육위원회 위원, 초대 문화부 부장 (문화부 장관, 1949년 ~ 1965년), 중국작가협회 회장 (1949년 ~ 1981년) 등직에 있었으며, 항미원조 운동, 삼반오반 운동, 반우파 운동, 대약진 운동 등에서 지도 공작에 참여하였다.
1957년에는 마오쩌둥의 소련 방문을 직접 수행하였다.
문혁기에서는 문화부 부장직에 있지 않았으나, 장칭 등의 보호 하에서 일신의 탄압을 받지 않았다.
죽기 직전에 중국작가협회 회장, 공산당 혁명 당원 등직으로 복귄되었으며, 인민들에게서 거둬들인 거액의 인세 수입을 화궈펑의 중공 지도부에 전달하였다.
1981년 베이징에서 사망하였다.

- 저술
모범적인 길을 걸어간 사회주의 문예 이론가이자 작가이다. 1921년에 문학연구회 (文学研究会) 성립에 참여해 ‘인생을 위한 예술’을 주장했다. 1927년 9월에 상하이 (上海)에서 마오둔 (茅盾)이란 필명으로 소설 《환멸 (幻灭)》 발표를 시작으로, 1928년에 《동요 (动摇)》, 《추구 (追求)》를 완성했다.(《蚀》삼부곡) 1931 ~ 32년에 창작한 《한밤중 (子夜)》은 1930년대 초기 상하이의 민족자본가와 매판자본가의 흥망성쇠를 보여주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문학운동 가운데서 최초로 발표된 장편소설로 평가받는다.
또 대표작에 《린씨네 가게 (林家铺子)》, 《봄누에 (春蚕)》 등이 있다.
《린씨네 가게》는 1‧28사변 전후의 장쑤성, 저장성 일대의 작은 고장을 배경으로 소상인들이 각종 압박을 받아 끝내 파산하는 비극을 그렸다.
마오둔은 사재를 털어 문학상을 만들 것을 유언했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 마오둔문학상 (茅盾文学奖)이 제정됐다.
주요작중 1927년의 ‘식 3부작’은 초기작으로 ‘환멸’ ‘동요’ ‘추구’ 세 중편소설이고, 1932년에 마오쩌둥의 농촌 혁명의 공작 일환으로 쓰여진 ‘농촌 삼부작’, 1933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도시 혁명 소설 ‘자야’ 등이 있다. 1948년에는 ‘소련견문록’을 출판하였다. 마오쩌둥 정권 성립 후로는 중공 혁명 문학 운동의 지도 공작에 집중하였으며, 평론으로 1950년 ‘재북경 문학공작자 선언’, 1958년 ‘약진 중의 동북’, 1960년 ‘사회주의 약진의 시대를 반영해 사회주의 시대의 약진을 추진하라’ 등이 있다.
- 마오둔 문학상
마오둔 문학상은 그의 유언과 화궈펑 이후의 정권에 의해서 1977년부터의 장편 소설을 대상으로, 1982년부터 그의 이름을 딴 장편 소설 문학상 수상이 이뤄지며, 초기 선정작에는 ‘항미원조 (抗美援朝) 운동’을 주제로 직접 담은 작품도 포함된다.

○ 가족 관계
부 : 선융시 (沈永錫)
모 : 천아이주 (陳爱珠)
부인 : 쿵더즈 (孔德沚) – 공산당원
남동생 : 선쩌민 (沈澤民, 1900년 6월 23일 ~ 1933년 11월 20일) – 마오둔의 4살 아래 남동생으로, 마오둔과 함께 코민테른과 중국 공산당의 초기 당원이었고, 28인의 볼셰비키로 활동하였으며,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제11대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부장 (장관) 등직에 있다가 1933년에 병으로 일찍 죽었다.
제수 : 장친추 (张琴秋, 1904년 11월 15일 ~ 1968년 4월 22일) – 심택민 (선쩌민)의 아내로, 남편을 따라 공산당에 가입하여 28인의 볼셰비키로 활동하였으며, 남편 사후, 1943년 중화인민공화국 위생부 부부장 (차관) 소정관 (蘇井觀)과 재혼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방직공업부 부부장 (차관)을 역임하였다. 문화대혁명 때, 장금추 (장친추)는 몹시 수모를 겪고 1968년 4월 22일 새벽에 투신자살하였다.
조카 : 장마아 (张瑪娥) – 심택민 <선쩌민>)과 장금추 (장친추)의 딸로, 문화대혁명 때, 어머니와 함께 몹시 박해를 받아 1976년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 작품
작품으로 장편소설 『식 (蝕)』, 『무지개 (虹)』, 『자야 (子夜)』, 『제일단계의 고사 (故事)』, 『부식 (腐蝕)』, 『상엽은 이월의 꽃처럼 붉다』, 『단련』, 중편소설 『길 (路)』, 『삼인행』, 단편소설 『누에 (春蠶)』, 『추수』, 『잔동 (殘冬)』, 『임상점』, 기록문학 『탈험잡기 (脫險雜記)』 등이 있고, 자서전 『내가 달려온 길』과 저술로 『신화잡론』, 『서양문학통론』, 『북유럽신화ABC』, 『중국신화연구ABC』 등이 있다. 문집으로 『마오둔 문집』 10권, 『마오둔 문예평론집』, 『세계문학명저잡담』 등이 있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