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2월 29일,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Andrei Arsen’evich Tarkovsky, 1932 ~ 1986) 별세
안드레이 아르세니예비치 타르콥스키 (Andrei Arsen’evich Tarkovsky, 러: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1932년 4월 4일 ~ 1986년 12월 29일)는 소련 태생 러시아의 영화 감독이다.
–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Andrei Tarkovsky)
.본명: 안드레이 아르세니예비치 타르콥스키
.출생: 1932년 4월 4일, 소련 자브라지예
.사망: 1986년 12월 29일(54세), 프랑스 파리
.국적: 러시아
.직업: 영화 감독
.활동 기간: 1958년 – 86년
.배우자: 이르마 라우시 (1957 – 70), 라리사 키질로바 (1970 – 86)
.수훈: 레닌훈장 (1990년 추서)
안드레이 아르세니예비치 타르콥스키 (Andrei Arsen’evich Tarkovsky, 1932 ~ 1986)는 러시아의 영화 감독은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생전의 잉마르 베리만이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말년의 두세 작품을 제외하고 그의 영화는 모두 소련에서 개봉하였다.
○ 생애 및 활동
타르콥스키는 1932년 4월 볼가 강 유역의 마을 자브라지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르세니 알렉산드로비치 타르콥스키 (Арс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арковский)는 시인이었고 어머니 마리야 이바노브나 비시냐코바 (Мария Ивановна Вишнякова)는 인쇄소 직공이었다. 그들은 안드레이가 4세 때 이혼했고, 안드레이는 어머니와 자랐다.
1954년 22세 때에 국립 영화학교 (VGIK)에 입학하였고, 예이젠시테인의 제자였던 미하일 롬(Михаи́л Ромм)의 지도를 받았다. 졸업 작품으로 만든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이 뉴욕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2년 후 《이반의 어린 시절》 제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2년, 첫 장편 데뷔작인 〈이반의 어린 시절〉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서 소련 영화계의 주목 받는 신인감독이 되었으나,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기점으로 소련 당국으로부터 ‘자본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예술성향을 가졌다’고 비판 받기 시작하며, 향후 활동에 큰 차질을 겪었다. 자본주의 시장에선 기획 하나가 무산되면 다른 회사를 찾아다녀서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공산권에서는 영화 투자를 모두 정부에서 단독 승인하므로, 기획 자체를 엎어버리거나, 이미 엎어진 기획을 몇 년 뒤에 갑자기 승인하는 방식으로 영화 제작을 방해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타르콥스키는 감독 생활 대부분을 사실상 실업자 신세로 살았는데, 타르콥스키의 일기장을 출간한 책 《타르코프스키의 순교 일기》를 보면 당시 그의 괴로움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1970년 9월 7일 – 좋은 시절이라면 나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만일 일 년에 영화 두 편씩을 찍을 수 있다면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이미 20편을 찍었을 것이다. 바보 같은 놈들이 결재를 하고 있는 판에 무슨 영화를 찍을 수 있단 말인가! (p.41)
1973년 1월 27일 – 요즘같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럽다. 영화와 연극 부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럽다. 돈으로 주는 보수에 대해서도 역시 말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점이 부러울 뿐이다. (중략)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일하는 것뿐이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일! 작업! 이탈리아 언론으로부터 천재감독이라고 격찬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가 일거리 없이 빈둥대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그로테스크하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이런 현상은 권력을 잡은 중간치기들의 복수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 평범한 중간치기들은 예술가를 증오하며, 우리 소련의 지도층은 예외없이 이런 중간치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p.99)
1973년 1월 29일 – 아! 나와 5년 계약을 맺고자 하는 누군가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년 동안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난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일곱 편의 영화는 확실히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p.101)
1973년 10월 20일 – 불길한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우리 문화에 낯설기 그지없다. 나는 우리 문화에 아무런 기여도 한 바 없다. 나는 가련한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유럽 또는 기타 나라에서 누가 소련 최고의 영화감독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면 모두들 타르콥스키라고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두들 입을 다물고만 있다.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가 없는 것이다. 한 점 얼룩에 불과할 뿐이다… (p.113) _《타르코프스키의 순교 일기》 김창우 역, 두레, 1997
지속적인 소련 당국의 압박과 그로 인한 생활고에 견디지 못한 타르콥스키는 결국 1984년,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기자회견과 함께, 아들을 남겨두고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1985년, 암 판정을 받은 타르콥스키 감독은 1986년 파리에서 사망하게 된다. 생이별해야 했던 아들과는, 다행히도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 투병생활 중이던 1986년 재회하였다. 유작이 된 〈희생〉이 칸 영화제에서 수상할 때에는 아들이 대리수상 했다.
장례식은 파리에 위치한 정교회 성당에서 치뤄졌으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참석해 평소 좋아했던 바하의 무반주 첼로를 연주했다고 한다. 로베르 브레송과 크리스 마르케도 참석했으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왔었다.
- 작품의 특징
소련이 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미조구치 겐지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과 더불어 롱테이크의 상징으로 꼽히는 거장다.
미조구치가 롱테이크를 통해 미학적 탐구를, 앙겔로풀로스가 정치적·역사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타르콥스키 감독은 종교적·철학적 문제을 주로 다루었다.
누벨바그를 비롯한 여러 감독들이 편집이나 시나리오에 집중해 영화미학을 발전시킨 반면, 타르콥스키 감독은 시간에 영화의 새로운 성질이 있다고 보았으며, 그 독특한 미학을 통해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90년대, 한국 극장가에 예술영화 붐이 일었을 때, 정성일의 《키노》와 함께 그 상징과도 같았던 존재이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찬양하는 관객들도 많았던 반면, 취향에 맞지 않는 이들은 낯선 구성, 느린 전개, 잦은 롱테이크 등에 힘들어 하기도 했다.
○ 평가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 받으며, 특히 롱테이크를 통한 몽환적이고 명상적인 영상으로 유명하다.
불우한 가정 형편, 소련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 54세로 요절한 짦은 생애 속에서도, 그리스도교적 주제의식을 담은 탁월한 걸작들을 배출해 ‘영화예술의 순교자’라고 불리우며, 현대 러시아 영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감독 중 한 사람이다.
“만일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타르콥스키 같은 감독 덕분일 것이다.”
“타르콥스키는 저에게 있어 모든 감독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새로운 언어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영화의 본질에 맞는 말입니다. 그것이 삶을 반영으로, 삶을 꿈으로 포착하기 때문입니다.” ㅡ 잉마르 베리만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적으로서의 영화 체험.” ㅡ 장뤽 고다르
“그의 특이한 감수성은 압도적이면서도 놀랍다. 거의 병적인 강도에 다다른다. 아마 지금 살아 있는 영화감독들 사이에서는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난 타르콥스키의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그의 성격과 모든 작품을 사랑한다. 그의 영화의 모든 컷은 그 자체로 멋진 이미지이다. 그러나 완성된 이미지는 그의 아이디어의 불완전한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부분적으로만 실현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극복해야 했다.” ㅡ 구로사와 아키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최근 몇 년간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이었다.” ㅡ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타르콥스키의 작품은 나를 육체적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고, 내가 본 가장 영적인 영화들이다.” ㅡ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러시아 영화사를 아주 과도하리만큼 단순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있었고 그런 다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ㅡ 정성일
○ 필모그래피
공식적인 장편영화는 7편이며, 단편은 3편이다. 총 10편이다.
- (단편) 킬러 Убийцы (1956)
타르콥스키가 영화학교 학생 시절에 만든 단편 영화. 같은 학교에 다니던 두 친구와 함께 제작했으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만들었다. 타르콥스키가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 (단편)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Каток и скрипка (1961)
바이올린을 켜는 소년과 로드롤러를 모는 노동자 청년 사이의 우정을 다룬 단편영화. 졸업작품으로 만든 영화지만, 제작은 모스필름의 아동영화부에서 맡았다. 작품을 제출하고 가장 높은 등급의 점수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참 잘했어요 - 이반의 어린 시절 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1962)
이반이라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소전쟁 영화. 타르콥스키 특유의 느린 리듬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빠르고 긴장감 있는 전개가 돋보인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영화의 몇몇 대목을 두고 소련 당국에서 비판을 가했는데, 실존주의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그에 대해 변론을 쓰기도 했다. - 안드레이 류블료프 Андрей Рублёв (1966)
15세기 러시아의 이콘 화가 ‘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전기 영화. 말만 ‘전기 영화’지, 영화 전체가 거의 픽션이다. 총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삶과 현실과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27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작, 스크린 선정 20세기 100대 영화 30위 - 솔라리스 Солярис (1972)
본격 SF 심리 좀비 로맨스 예술영화. 렘 스타니스와프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며 동유럽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54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작,스크린 선정 20세기 100대 영화 69위이다. 2002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 의해,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했으나…. 비평과 흥행 모두 처참하게 망했다. - 거울 Зеркало (1975)
촬영과 편집이 가장 현란한 작품이자, 타르콥스키 영화 중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품. 영화 자체는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된다.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9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작 - 스토커 (잠입자) Сталкер (1979)
근미래 SF 영화. 제목 그대로 금지구역에 잠입하는 이야기.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29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작 - 노스텔지아 Ностальгия (1983)
향수와 구원에 대한 영화. 칸 영화제 공개 당시 극찬을 받았으나,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타르콥스키는 러시아에서 쫓겨나 이탈리아로 망명한다. 당시, 1983년 칸영화제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였지만, 영화제 소련 심사위원의 협박인듯 협박아닌 협박으로, 황금종려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대신,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이 부문에 로베르 브레송 감독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 (단편) 여정의 시간 Tempo di Viaggio (1983)
노스텔지아의 시나리오 작가인 토니노 게라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이며, 이 여행은 노스텔지아 제작의 토대가 되었다. “여행의 계절”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문 제목은 Voyage in Time. - 희생 Offret (1986)
타르콥스키의 유작. 제목 그대로 ‘희생’에 대한 영화이며, 잉마르 베리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만들어졌기에 베리만의 느낌도 살짝 난다. 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영화 후반작업을 진행하였다.감독의 건강 악화로, 소련 당국의 허가로 인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아들이 대리 수상한다. 영화의 라스트 씬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 아들에게 헌정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긴 러닝 타임에도 한국내에서도 개봉하여, 무려 11만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했다.
○ 연출작 목록 (연도, 제목, 원제, 국가, 비고)
1956 킬러 Убийцы (The Killers) 소련 19분
1961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Каток и скрипка (The Steamroller and the Violin) 소련 46분
1962 이반의 어린 시절 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Ivan’s Childhood) 소련 95분
1966 안드레이 루블료프 Андрей Рублёв (Andrei Rublev) 소련 205분
1972 솔라리스 Солярис (Solaris) 소련 195분
1975 거울 Зеркало (The Mirror) 소련 107분
1979 잠입자 Сталкер (Stalker) 소련 164분
1983 노스텔지아 Nostalghia 이탈리아, 소련 125분
1983 시간 여행 Tempo di Viaggio 이탈리아 63분, 다큐멘터리 영화
1986 희생 Offret 스웨덴 149분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