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1일, 만우절날 건국해 매년 하루만 존재하는 우주피스 (Užupis) 공화국
우주피스 공화국 (Republic of Užupis)은 1997년 4월 1일 만우절날 건국에 1년에 단 하루만 열리는 나라이다.
1997년 4월 1일부터 빌뉴스 시의 구 시가지 지역과 빌넬레 강의 경계에 있는 지역에 예술가들이 모여서 우주피스 공화국 (Republic of Užupis) 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세워, 만우절마다 기념하고 있다.

– 우주피스 공화국 (Republic of Užupis)
.지위: 문화행사형 마이크로네이션
.연혁: 1997년 4월 1일 독립 선언
.면적: 0.60 km² (1997)
.인구: 약 7000명 (1997)
.정치 체제: 대통령제
.공용어: 리투아니아어 , 영어
.화폐 단위: UZAS (UŽ)
.대사: 200개국 파견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있으며 1997년 4월 1일에 만들어진 문화행사형 마이크로네이션이다.
매년 4월 1일(즉 만우절) 24시간 동안 나라가 된다.
국방부와 여러 가지 나라와 관련된 기관들도 있고 물론 대통령도 있다.
심지어 200개국에 자국대사를 파견했다.
4월 1일에 방문하면 여권에 도장도 찍어준다고 한다.

○ 개관
우주피스 공화국 (리: Užupis Respublika), 줄여서 우주피스 (Užupis)는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구 시가지에 위치한 마이크로네이션으로 면적은 약 0.60km2 (약 148 에이커)이다.
우주피스는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편”을 뜻한다.
1990년 리투아니아가 독립할 무렵 마을의 빈 집들에 가난한 동구의 예술인들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개성과 느슨한 공동체의식이 결합해, 집과 길을 꾸며 마을 꼴을 갖추고 그들만의 새로운 규범들도 하나 둘 만들어갔다.
헌법도 있다. 41조로 구성된 공화국 헌법은 현재 35개 언어로 금속판에 새겨져 있는데 한국어도 32번째로 놓여있다. 기발하며 공감되는 헌법 전문을 소개한다.
인구는 약 7,000명인데 약 1,000명에 달하는 예술가가 이 곳에 거주한다.
1997년 4월 1일에 우주피스에 거주하던 몇몇 예술가들이 우주피스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만우절인 매년 4월 1일에 24시간 동안만 나라가 된다.
마이크로네이션을 표방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국기, 국가, 군대, 헌법, 화폐, 정부 조직, 내각을 두고 있으며 로마스 릴레이키스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한다.
2002년 4월 1일에는 우주피스 천사상이 들어섰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인 하일지가 우주피스를 소재로 한 소설 ‘우주피스 공화국’을 발표했다.
이후 방송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국가는 아닌데 다만 가난하거나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있던 이 마을에 단 하루 만우절 만이라도 자신들만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예술가들이 이걸 이벤트 행사로서 만들어내면서 그것이 유명해진 것이라고 한다.

○ 우주피스 공화국 헌법 [전문]
1.모든 사람은 빌넬레 강변에서 살 권리를 가지며 빌넬레 강은 모든 사람 곁에서 흐를 권리를 가진다.
2.모든 사람은 겨울철 온수와 난방과 기와 지붕을 가질 권리가 있다.
3.모든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나 이것이 의무는 아니다.
4.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를 가진다.
5.모든 사람은 유일한 존재가 될 권리를 가진다.
6.모든 사람은 사랑할 권리를 가진다.
7.모든 사람은 사랑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나 이것이 필수는 아니다.
8.모든 사람은 인기가 없어도 되고 다른 사람이 몰라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9.모든 사람은 게으르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10.모든 사람은 고양이를 사랑하고 돌볼 권리를 가진다.
11.모든 사람은 개가 죽을 때까지 돌볼 권리를 가진다.
12.개는 개로서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13.고양이는 자기 주인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주인이 어려운 순간에는 꼭 도와 주어야 한다.
14.모든 사람은 가끔 자신의 의무에 대해 알지 못해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15.모든 사람은 의심할 권리가 있으나 이것이 의무는 아니다.
16.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를 가진다.
17.모든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18.모든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될 권리를 가진다.
19.모든 사람은 믿음의 자유를 가진다.
20.모든 사람은 강제적으로 명령할 권리가 없다.
21.모든 사람은 자신의 보잘 것 없음과 위대함을 깨달을 권리를 가진다.
22.아무도 영원히 살 것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23.모든 사람은 이해할 권리를 가진다.
24.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가진다.
25.모든 사람은 다양한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6.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축하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27.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꼭 기억해야 한다.
28.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나눌 수 있다.
29.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30.모든 사람은 형제·자매 및 부모를 가질 권리를 가진다.
31.모든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다.
32.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진다.
33.모든 사람은 울 권리를 가진다.
34.모든 사람은 이해받지 못할 권리를 가진다.
35.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할 권리가 없다.
36.모든 사람은 사생활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37.모든 사람은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38.모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39.이기려고 하지 마라.
40.자신을 방어하지 마라.
41.포기하지 마라!

○ 우주피스가 위치한 ‘빌뉴스’ (Vilnius)의 역사
빌뉴스 (리: Vilnius)는 리투아니아의 수도로, 옛 이름은 빌나 (Vilna) 였다. 전간기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고, 이어 독립국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원래는 발트인 정착촌이었으며 슬라브인들도 거주하였다. 적어도 11세기부터는 유대인들도 거주하기 시작했다.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323년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Gediminas)가 성채를 세우면서이다.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었다가 폴란드의 왕을 겸하게 된 브와디스와프 2세 (폴: Władysław II Jagiełło, 리: Jogaila)는 1387년 빌뉴스에 도시 자치법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였다. 당시 빌뉴스의 주민들은 리투아니아인들 외에도 루신인 (근대의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독일인, 유대인을 포함하였다.
1503년에서 1522년 사이 빌뉴스는 아홉 개의 성문과 세 개의 성탑을 갖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빌뉴스는 지그문트 2세 (리: Žygimantas Augustas, 폴: Zygmunt II August)가 1544년 그곳으로 왕궁을 이전하면서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스테판 바토리 (리: Steponas Batoras, 폴: Stefan Batory)는 1579년 빌뉴스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대학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학문, 특히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빌뉴스 시는 급속도로 성장하며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유대인, 러시아인, 독일인, 카라이파 유대인, 루신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각 시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655년 러시아군이 빌뉴스를 함락시켜 약탈하고 불태웠다. 주민들은 학살되었다. 그 후 빌뉴스의 성장은 주춤했으나 인구 수는 다시 회복되어 19세기 초에는 북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 빌뉴스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어 빌나 현의 현도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1915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군이 점령하였다.
독일군이 물러난 후에는 빌뉴스는 폴란드 자위대, 볼셰비키군, 폴란드군, 다시 소비에트 연방군의 손으로 넘어가며 그 지배자가 여러번 바뀌었다.
1920년 바르샤바 전투에서 폴란드군에 패한 소련군은 그해 7월 12일 평화 협정을 통해 새로이 독립국으로 재탄생한 리투아니아에 빌뉴스를 넘겨주었다. 10월 9일에는 루찬 젤리고프스키 장군이 이끄는 폴란드군의 리투아니아 · 벨라루스 사단이 연출된 쿠데타를 통해 빌뉴스를 장악하였다. 빌뉴스 시와 주변 지역은 폴란드의 괴뢰 국가인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폴: Litwa Środkowa) 이라는 독립된 국가로 선포되었다.
1922년 2월 20일에는 이 지역이 모두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카우나스의 리투아니아 정부는 폴란드가 불법적으로 빌뉴스를 점령하고 합병했다고 보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와의 관계는 1938년까지 단절된 상태로 계속되었다. 그동안 빌뉴스는 다시 빠르게 성장 하였다. 당시 빌뉴스의 주민 대다수는 폴란드인과 유대인이었고 리투아니아인들은 소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3% 미만, 1930년대에는 1% 미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의 비밀 조항에 따라 소련은 1939년 9월 19일 빌뉴스를 장악하고 합병하였다.
1939년 10월 10일 소련의 최후통첩을 받은 리투아니아는 빌뉴스를 얻는 대신 소련이 리투아니아 각지에 군사 기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였다. 곧 수도를 카우나스에서 빌뉴스로 이전하는 작업이 시작 되었지만 미처 끝내기도 전인 1940년 6월 소련은 리투아니아 전국을 점령하였다.
새로 설립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된 빌뉴스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다. 4만명에 달하는 수가 소련의 비밀 경찰 내무인민위원회에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1941년 6월에는 빌뉴스가 독일군에 함락되어 구시가에는 유대인 주민들을 위한 게토가 두 군데 세워졌다. 이 가운데 작은 게토는 같은 해 10월에 이미 ‘제거’된 상태였고 두 번째 게토의 주민들은 이른바 악티오넨 (독: aktionen)의 일환으로 수시로 학살되었다.

1943년 9월 1일 게토 반란이 실패로 끝난 후 두 번째 게토도 파괴되었다. 265,000명에 달했던 빌뉴스의 유대인 인구의 95% 정도가 독일군과 리투아니아인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많은 수는 구시가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파네리아이 (리: Paneriai)에서 죽음을 맞았다.
1944년에는 폴란드 향토군과 소련군이 차례로 빌뉴스를 장악하였다. 빌뉴스는 다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로 소련에 합병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소련은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의 폴란드인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농촌의 리투아니아인들과 소련의 타 공화국에서 러시아인들이 도시에 이주하면서 전후 빌뉴스는 주민 구성, 문화, 전통이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리투아니아 공화국을 회복시켰다.
소련은 1991년 1월 9일 군 병력을 투입하여 이에 대응했고 1월 13일에는 국립 라디오·텔레비전 건물과 빌뉴스 텔레비전 철탑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14명이 죽고 700명 이상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소련은 결국 1991년 8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그 후 빌뉴스는 소련 시절의 흔적을 지우고 현대 유럽 도시로 탈바꿈하려 노력하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옛 건물들은 수리되고 네리스 강 북쪽에는 새로운 시 중심가가 될 새 상업 지역이 발달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