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6일,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Władysław Szpilman, 1911 ~ 2000) 별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Władysław Szpilman, 1911년 12월 5일 ~ 2000년 7월 6일)은 폴란드의 유대계 피아노 연주자이다.

–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Władysław Szpilman)
.출생: 1911년 12월 5일, 폴란드 소스노비에츠
.사망: 2000년 7월 6일, 폴란드 바르샤바
.형제자매: 헨리크 슈필만, 레지나 슈필만, 할리나 슈필만
.배우자: 할리나 슈필만 (1950년–2000년)
.자녀: 크리스토퍼 W. A. 슈필만, 안제이 슈필만
.저서: The Pianist: The Extraordinary True Story of One Man’s Survival in Warsaw, 1939-1945
그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던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일어났다. 그는 바르샤바 게토 (Warsaw Ghetto)로 강제 이주됐고,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대량 학살 이후 게토가 없어지고 대부분의 게토 주민들이 죽었을 때 그는 노동자로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도망쳐서 바르샤뱌의 게토가 있었던 곳에서 숨어 살았다.
나치에 불만을 가졌던 독일군의 빌름 호센펠트 대위 (Wilm Hosenfeld)가 소비에트 연방이 바르샤바를 점령하여, 독일군이 물러날때까지 슈필만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줬으며, 전쟁이 끝난 후, 그는 1952년, 소련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다고 한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 슈필만은 폴란드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폴란드 대중 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바르샤바에서 살아남은 내용을 담은 《도시의 죽음 (Śmierć Miasta)》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에 대한 관점 때문에 공산주의 정권에게 검열당해야 했다. 약 50년이 더 지나 1998년에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고, 이를 토대로 2002년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 생애 및 활동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은 1911년 폴란드 소스노빅 (Sosnowiec)에서 유태계 폴란드인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에스데라 (Esthera)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음악원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인 죠셉 스미도비크 (Józef Śmidowicz, 1888 ~ 1962)와 알렉산더 미칼롭스키 (Aleksander Michałowski, 1851 ~ 1938)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다.
1931년, 베를린 아트 음악원에서 아르투르 슈나벨 (Artur Schnabel, 1882 ~ 1952)과 레오니드 크로이쳐(Leonid Kreutzer, 1884 ~ 1953)로 부터 피아노를, 프란츠 슈레커 (Franz Schreker, 1878 ~ 1934)에게 작곡을 배웠다.
이 시기에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을 작곡하였고, 피아노 소곡 <기계의 인생, Life of the Machines>을 비롯하여 수많은 피아노 연주곡을 작곡했다.
이 곡들은 그의 고국 폴란드에 커다란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이후 급속도로 인정받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성장하였다.
1935년, 슈필만은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국영라디오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1939년 9월, 그가 피아노 연주를 하던 방송국이 독일군의 폭격을 맞으면서 제 2 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6년 동안 전쟁의 공포 속에서 피난생활을 지속하다가 기적처럼 독일장교의 도움으로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슈필만은 6년 전 중단했던 쇼팽의 <야상곡, Nocturne>을 연주하면서 폴란드 국영라디오 방송을 다시 시작하였다.
1946년, 자신의 경험을 쓴 회고록 [도시의 죽음, Śmierć Miasta]을 출판하지만 폴란드의 공산정권에 의해 판금 당했다.
그는 다시 음악인 (작곡가와 피아니스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유럽과 미국전역을 걸쳐 콘서트를 열었다.
그가 작곡한 수 많은 곡들은 폴란드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또한 1950년대부터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1955년에 폴란드 작곡가 협회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1961년, 폴란드 대중음악가 연맹을 위해 소폿에서 국제음악제를 개최한 스필만은 1964년 폴란드 작곡가협회의 멤버로 선출되었다.
1998년 한번도 아버지로부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그의 아들 안드레이(Andrzej Szpilman, 1956 ~ )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발견하고 이를 전세계에 공개하였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성공을 거두며>라는 제명으로 전세계에 번역, 출판되었다.
슈필만의 책은 유태인 거주지역 (게토)에서 일어난 생생하고 역동적인 삶의 보고서이자 그 자신의 경이로운 탈출과 생존에 관한 보고서이다.
강렬한 주제의식, 입체감 넘치는 인물들과 감정들로 가득 찬 이 책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로만 폴란스키는 책을 읽기 전 슈필만과 두 번의 만남을 가졌고, 2000년 초 세 번째 만났을 때 그에게 책의 영화화를 이야기했다.
슈필만은 같은 민족이 자신의 회고록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영화가 촬영되기 전 2000년 7월 6일, 88세의 나이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 앨범
1.Cesar Franck – Sonata In A Major For Violin And Piano • Claude Debussy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 Bronisław Gimpel, Władysław Szpilman [Polskie Nagrania Muza – SX 1431, 1978]
2.Władysław Szpilman – Portret Muzyczny
3.Władysław Szpilman – The Original Recordings Of The Pianist [Sony Classical – 509764 2, 2002]
4.F. Chopin – Complete Works / Władysław Szpilman, Tadeusz Wroński, Aleksander Ciechanski, Halina Kowalska, Regina Smendzianka [Polskie Nagrania Muza – SX 0080]
5.Brahms – 2 Sonatas Op. 120, No. 1 & No. 2 / Stefan Kamasa-viola, Władysław Szpilman [Polskie Nagrania Muza – SXL 0616]
6.Johannes Brahms • Claude Debussy – Muzyka Kameralna / Tadeusz Wroński, Władysław Szpilman [Polskie Nagrania Muza – XL 0035]

○ 영화 ‘피아니스트’ (The Pianist)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2002 칸느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동의 대작 <피아니스트, The Pianist>는 인류사 최대의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한 실존 피아니스트를 그린 영화이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바르샤바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에서 무엇보다도 참혹한 비극이 바로 유태인 대학살(Holocaust: 홀로코스트)이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3년부터 2차대전 종결까지 당시 유럽에 살던 유태인 80%인 575만 명이 학살당하였으며, 인류 사회 문화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대단한 전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명한 피아니스트에서 간신히 하루 하루의 삶을 연명하는 처절한 한 인간으로, 그러나 마침내 살아남아 다시 피아노 앞에 선 한 남자의 극적인 삶은 그 자체가 바로 드라마이며 영웅담일 수밖에 없다.

– 영화 피아니스트
.감독 – Roman Polanski
.주연 – Adrien Brody
.음악 – Wojciech Kilar
.제작 – 2002년 / 150분
우리가 모두 아는 사실대로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일어났다.
그때의 청교도 정신을 이어 받은 어느 독일 고위층 인사는 2차 세계대전 발발 전부터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벌을 언젠가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실제로 벌어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는 절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었지만, 인류가 생긴 이래, 최고로 잔인한 만행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았다.
이 홀로코스트의 역사는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영화들의 주제가 되었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전망인데, 이 주제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서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제 “홀로코스트”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만 폴란스키가 제작을 하고 감독을 맡았다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깊다.
전쟁발발 2년 전에 프랑스에서 폴란드로 이주했던 부모와 함께 (유태인)수용소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린 폴란스키는 우여곡절 끝에 “게토” (유태인 강제 거주구역)에서 8살 때 홀로 탈출을 하여 (폴란드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으니, 이 영화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와 결코 다를 바가 없다.
유태인 아버지는 살아남아 종전 후에 재회를 했으나, 러시아인 어머니는 결국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타계했다고 한다.
1993년에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의 감독직을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로 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주제가 너무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했다고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비록 예술성은 더 강조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사람의 실존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다.

폴란드가 국보급으로 인정한 유태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Wladyslaw Szpilman) 이 1945년에 처음으로 발간을 하고, 1998년에 재발간이 된 원작 회고록, “Death of City (죽음의 도시)”에서부터 기획 제작이 시작이 된 이 영화도 죽음의 문턱을 수 없이 넘나들며 기적 같은 인생을 살다 간 피아니스트 슈필만의 전쟁중 행적을 다루고 있지만 너무나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쟁 발발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국보급 천재 피아니스트 슈필만도 나치의 만행 아래서는 영화 속에 나오는 독일 군인들의 말 (대사) 그대로 그저 하나의 “Jewish Pig” 일뿐,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래도 역시 삶에는 기적이 있게 마련인지, 폴란스키 감독 자신도 그랬듯이 여러 사람들 (독일군 장교 포함) 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2000년까지 오랫동안 장수를 했는데, 그의 사후에서야 완성이 된 한많은 사연의 이 영화도 “안네 프랑크의 일기”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와 함께 인류가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역사를 증언하는 명작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폴란드와 홀로코스트, 쇼팽과 스필만, 영화 “피아니스트”는 이런 두 단어들이 너무나도 슬프게 조합이 된 또 하나의 인류역사의 기록 (명작)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한편, 슈필만을 구해준 독일군 장교 (대위) “빌름 호센펠트 (Wilm Hosenfelt, 1895 ~ 1952)”의 사연도 참으로 기구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군 장교로서의 임무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둘다 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그는, 슈필만 이전에도 여러 유태인과 폴란드인들을 구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1944년 늦가을에 슈필만과 조우를 한 이후, 1945년1월에 소련군에 의해 체포가 되었고, 1950년에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던 중, 1952년8월에 스탈린그라드 인근 감옥에서 병사를 했다고 한다.
폴란드말까지 배워가며 몰래 선행을 베풀었던 그의 일기에는 슈필만과의 만남이 구원자와 피구원자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이었다고 회고를 하였다.
특히 그는 폴란드의 거리를 걷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이 독일군 장교임에 깊은 좌절을 느꼈었다고 하는데, 정작 종전 후에 자신은 (영화 “Schindler”에서와는 달리, 자신이 선행을 베풀었던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돌려)받지는 못하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