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24일, 대한민국의 시인 · 교육자 서정주 (徐廷柱, 1915 ~ 2000) 별세
서정주 (徐廷柱,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교육자이다.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한국의 이생명파 시인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이며,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 궁발(窮髮), 뚝술이다.
– 서정주 (徐廷柱)
.출생: 1915년 5월 18일,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사망: 2000년 12월 24일 (85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 시인 / 국적: 대한민국
.학력: 중앙불교전문학교 중퇴
.경력: 경기대학교 대학원 교수, 신민당 당무위원
.본관: 달성
.종교: 불교
.필명: 아호는 미당 (未堂), 궁발 (窮髮), 일본식 이름은 다쓰시로 시즈오 (達城靜雄)
.활동기간: 1936년 ~ 1998년 9월
.장르: 시문학
.배우자: 방옥숙
.자녀: 2남 5녀
.형제: 서정태(아우)
.친지: 김관식 (아랫동서), 방옥례 (처제)
탁월한 시적 자질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해방 전후에 걸쳐 한국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및 반인륜 행적과 신군부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역사적 평가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다.
○ 생애 및 활동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출생하였고 전라북도 부안에서 성장하였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 이를 두고 서정주 본인은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고백했다.
노비의 자식으로 서럽기만 했다던 서정주는 대를 이어온 노비의 신분을 벗어던짐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고 노비의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그리고 내면에서 솟아나는 문학적 욕구를 펴고자 했다.
서정주는 14세에 서울로 상경해 중앙보통학교에 다녔다.
1933년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에 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때 다쓰시로 시즈오 (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평양 전쟁과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들을 찬양하며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이 전범 행위가 불거지자 서정주는 이때 전범행위를 종천순일파라고 자칭하며 일본에게 친일행위는 했으나 받은 대가가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다가, 나중에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하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식으로 변명한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해방 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그의 고택이 2000년대 후반 정부에 의해 복원 전 잠시 폐가로 버려져 있었다.
2000년 12월 2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현재 그의 고향 고창군에 미당문학관과 그가 살았던 서울 관악구에 미당이 살았던 집이 있다.
실제로 관악구와 고창군은 미당의 인연을 계기로 자매결연도시로 있다.
– 학력
전라북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 수료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교 중퇴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 중퇴 (이후 1971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명예 학사 학위 취득)
명예 박사 학위
숙명여자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 작품성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중 한명으로 탐미적인 경향이 보인다. 그의 고향 전라도의 사투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미당의 시 언어는 민족어의 가능성을 한껏 키운 것으로 평가된다.
○ 가족 및 인척 관계
부인: 방옥숙 (方玉淑, 1919년 ~ 2000년 10월 10일)
동생: 서정태 (徐廷泰, 아호는 우하 (又下). 1923년 ~ 2020년 3월 11일)
처제: 방옥례 [方玉禮, 김관식 (金冠植)의 부인. 김관식 (金冠植), 1934년 5월 10일 ~ 1970년 8월 30일, 시인, 번역문학가]
○ 시집
《화사집》, (1941)
《귀촉도》, (1946)
《시선》, (1955)
《신라초》, (1960)
《동천》, (1968)
《질마재 신화》, (1975)
《늙은 떠돌이의 시》, (1993)
번역 시집 《만해한용운한시선역》, (예지각, 1983) : 한용운의 한시를 가려 뽑아 번역한 시집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