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23일, 장미 혁명 (Revolution of Roses) : 조지아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사임
장미 혁명 (Revolution of Roses)은 2003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를 퇴진시킨 조지아의 무혈 혁명이다.
- 정치적 배경
조지아는 1992년 이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1995년 이래 대통령)가 통치했다. 그의 정부와 일가는 부정부패와 연루되었고, 이러한 부패는 조지아의 경제 발전을 저해했다. 조지아는 다른 서북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가난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두 개의 분리주의 지역 (압하스 공화국 및 남오세티야)는 트빌리시 정부의 영향력 밖에 있었고, 아자리야 (아자리야 공화국)는 반분리주의 지도자인 아슬란 아바시제 (Aslan Abashidze)가 통치했다. 2003년 11월 2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 및 사회 경제적 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셰바르드나제의 정치 연합인 “새로운 조지아를 위하여 (For a New Georgia)”와 아바시제의 “조지아 민주주의 부흥 연합 (Union of Democratic Revival of Georgia)”과 대립하는 대중 정당이 있었다. 이 대립 정당이 미헤일 사카시빌리의 “국가 운동 연합 (United National Movement)”과 “부르자나제-민주당 (Burjandze-Democrats)”이며 이 정당들은 사카시빌리의 정치적 동지인 니노 부르자나제 (Nino Burjanadze)와 주라브 즈바니아 (Zurab Zhvania)가 이끌었다.
셰바르드나제는 1972년부터 1985년까지 그루지야 공산당 제1서기장으로 재직하면서 사실상 조지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제1서기장직을 수행하면서 공화국의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할 몇 가지 경제 개혁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 소련은 전국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었기에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반부패 캠페인은 그가 제1서기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셰바르드나제를 소련의 외무장관에 임명했다. 1985년부터 1990년 소련 붕괴 직전까지 소련의 마지막 외무장관을 지냈는데, 이 기간 동안 소련의 외교 정책에서 고르바초프만이 셰바르드나제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셰바르드나제는 고르바초프 시대 소련 외교 정책에서 여러 중대한 결정을 담당했으며 외부 세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소련 개혁의 얼굴로 여겨졌다.
1991년 소련 붕괴의 여파로 셰바르드나제는 새로 독립한 조지아로 돌아왔다. 조지아의 초대 대통령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가 사임한 이후 조지아의 국가 원수에 올랐으며, 1995년 공식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셰바르드나제 정권은 만연한 부패와 족벌주의와 관련된 비난으로 얼룩졌으며, 2003년 총선에서 불거진 선거 부정이 장미 혁명으로 일컫어지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키면서 대통령직에서 사임해야 했다. 사후 셰바르드나제는 회고록 《어둠의 역사를 헤치며》 (셰바르드나제 지음, 엄중섭 옮김)을 출판했고 2014년 사망할 때까지 상대적으로 무명의 삶을 살았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