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2일, 대한민국 소설가 박완서 (朴婉緖, 1931 ~ 2011) 별세
박완서 (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본관은 반남이며 경기도 개풍군 출생이다. 40세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등단한 이후 꾸준히 소설과 산문을 쓰며 작가로 활동하였다.
– 박완서 (朴婉緖)
.출생: 1931년 10월 20일, 대한민국
.사망: 2011년 1월 22일(81), 대한민국 구리시
.배우자: 호영진 (1953~1988년)
.자녀: 호원숙
.종교: 천주교(세례명 : 정혜 엘리샤벳)
.작품: ‘나목’ (1970),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199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 등
.영화: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
.학력: 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 (1951년 한국전쟁으로 2학년 중퇴 후 1984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 학사 학위 수여)
그녀의 작품은 “전쟁의 비극, 중산층의 삶, 여성문제” 를 다루었으며, 자신만의 문체와 시각으로 작품을 서술하였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이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1년 1월 22일에 지병인 담낭암으로 향년 81세에 사망하였다. 소설가 정이현은 추모의 편지에서 ” ‘한국 문단에 박완서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여성작가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희망이었는지 선생님은 아실까요”라고 적었다.
○ 생애 및 활동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맹장염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 살 때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에 숙명고등여학교에 입학하였고, 담임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다.
1950년에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여름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으로 숙부와 오빠를 잃는 등 집안에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치면서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53년 4월 21일에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扈榮鎭)과 결혼하였고, 두 사람 사이에서 1남 4녀가 태어났다.
40대에 접어든 1970년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裸木)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공모전에 당선될 때 그녀는 다섯 아이를 둔 40세의 전업주부였다. 이 소설은 전쟁 중 노모와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초상화부에서 근무할 때 만난 화가 박수근에 대한 내용이다.
천주교인이며 세례명은 정혜 엘리사벳이다. 가족을 잃은 충격에 박완서는 1988년에 서울을 떠나서 부산에 위치한 분도수녀원에서 지내기도 했고, 미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박완서는 2011년 1월 22일 오전 6시 17분에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1년 1월 25일 오후 1시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 작품세계
작품 경향은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다루거나 소시민적 삶과 물질중심주의와 여성억압문제를 그린 내용이 많으며, 후기 작품 역시 1988년에 병사한 남편을 간호하며 쓴 간병기 형식의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1991)을 비롯해 어린 시절과 전쟁 중 경험을 서술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 등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평론가 황도경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일그러진 개개인들의 삶의 초상, 도시문명 사회의 불모성과 그 안에서의 허위적이고 물신주의적인 삶의 양태, 권태롭고 무기력한 소시민의 일상, 억눌린 여성 현실, 죽음과의 대면과 극복 등 그녀의 문학이 담아낸 세계는 실로 놀랄 만큼 다양하다”라고 언급하였다.
○ 작품
나목 (1970년, 여성동아)
장편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1972년, 여성동아)
단편 지렁이 울음소리 (1973년, 신동아)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976년, 일지사) 단편집 휘청거리는 오후 (1977년, 창작과비평사)
장편 목마른 계절 (1978년, 수문서관)
장편 욕망의 응달 (1979년, 수문서관)
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 (1980년, 전예
단편 엄마의 말뚝 (1982년, 일월서각)
단편집 오만과 몽상 (1980.12-1982.3, 한국문학)
연재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3년, 세계사)
그 가을의 사흘동안 (1985년, 나남)
장편 도시의 흉년 (1989년, 문학사상사)
장편 미망 (1990년, 문학사상사)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년 10월 15일, 웅진닷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년, 2005년, 웅진출판)
아주 오래된 농담 (2000년, 실천문학사)
그 남자네 집 (2004년, 현대문학)
친절한 복희씨 (2008년, 문학과지성사)
세 가지 소원,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 (2009년, 마음산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010년, 현대문학)
수필세상에 예쁜 것 (2012년, 마음산책)
산문 자전거도둑 (1979년, 마음산책)
– 수상 및 서훈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나목」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그 가을의 사흘동안」
1981년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엄마의 말뚝 2」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수상「未忘」
1991년 제3회 이산문학상 수상「未忘」
1993년 제19회 중앙문화대상(예술부문) 수상「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3년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꿈꾸는 인큐베이터」
1994년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1995년 제1회 한무숙문학상 수상「환각의 나비」
1996년 자랑스런 숙명인상 수상
1997년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8년 보관문화훈장(3등급)
1999년 제14회 만해문학상 수상「너무도 쓸쓸한 당신」
2000년 인촌상(문학부문), 국회 대중문화 & 미디어상(문학부문) 수상
2001년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그리움을 위하여」
2006년 제16회 호암예술상 수상
2011년 금관문화훈장 (1등급, 추서)
– 일상의 기적 _ 박완서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리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 없구나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뒤라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동안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이지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지금, 감사를 느끼고 계시는지?
우리들이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 바꾸는 데는
3천만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원,
간 이식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훌륭한 두발 자가용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호흡기를 쓰면
한 시간에 36만원을
내야 한다니
눈, 코, 입 다 가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공기를 공짜로 마시고 있다면
하루에 860만원씩
버는 샘입니다.
우리들은 51억짜리 몸에
하루에 860만원씩
공짜로 받을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건
욕심 때문이겠지요.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정상에
이미 올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잎 클로버는 행복!
네잎 클로버는 행운?
행복하면 되지
행운까지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겠지요.
오늘부터
지금부터
숨 쉴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6월을 맞이하는
오늘도 살아 숨쉴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가 되시기를…..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