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목사 문동환 (文東煥, 1921 ~ 2019) 별세
문동환 (文東煥, 1921년 5월 5일 ~ 2019년 3월 9일)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겸 대학 교수였고 미국 피츠버그 신학대학교 명예 신학박사 출신이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인 문익환의 동생이다.
– 문동환 (文東煥, Moon Dong-hwan)
.출생: 1921년 5월 5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現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명동촌)
.사망: 2019년 3월 9일 (97세),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본관: 남평 문씨
.부모: 문재린, 김신묵
.형제: 형 문익환, 남동생 문영환, 여동생 문은희
.배우자: 문혜림
.자녀: 딸 문영미, 문영혜, 아들 문창근, 문태근, 조카 문성근
.학력: 한신대학교 (신학 / 학사). 웨스턴신학교 (신학 / 석사), 하트퍼드 신학대학교 (신학 / 박사)
.약력: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수도교회 목사, 제13대 국회의원 (전국구 12번 / 평화민주당), 평화민주당 부총재, 제13대 국회 전반기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 공보실 특임촉탁위원, 6. 15남북공동선언실현 재미동포협의회 공동의장, 광주민주화운동특별위원회 위원장 (참여정부)
대한민국의 목사, 사회운동가. 문익환의 동생이자 문성근의 숙부.
1921년 5월 5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明東村)에서 아버지 문재린과 어머니 김신묵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익환 목사의 친동생이자 문성근의 숙부이다.
개신교 목사로 한신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면서, 형과 더불어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 1988년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제13대 전국구 국회의원과 평화민주당 부총재를 지냈으며 이후 도미하여 코네티컷주와 뉴저지를 오가며 재미동포단체에서 통일운동을 하였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였고 참여정부 시절 광주 민주화운동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 생애 및 활동
1921년(민국 10년) 북간도 지역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이 기독교에 입문했다.
아버지는 간도에서 목회자로 일하고 있었으며, 시인 윤동주와는 한동네에서 자랐다.
어릴 때 ‘동만의 조선족 대통령’으로 불리던 윤동주의 외삼촌 김약연을 보면서 목회자가 될 꿈을 키웠다.
룽징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김재준을 만났고,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신학교로 유학했다. 그러나 이때는 태평양 전쟁 말기라 학도병 징집의 위험이 있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야 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가족이 모두 월남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김재준의 주선으로 문익환과 함께 조선신학교에 편입하였다. 한국 전쟁 중인 1951년에는 미국으로 유학하였고, 웨스턴 신학대학교 / 프린스턴 신학교 / 하트포드 신학대학교에서 차례로 공부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1961년부터 한신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 수도교회[5] 등에서 목회하였다.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재야 운동에 뛰어들어 투옥되기도 했다. 문익환도 문동환에 뒤이어 재야 운동에 동참하여 형제가 함께 활동했다.
말년에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활동하였다. 6·15 남북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6. 15남북공동선언실현 재미동포협의회 공동의장을 맡는 등 통일 운동을 벌였다.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을 지지했다.
그는 진보 개신교계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80살이 지나면서 민중신학에도 회의가 생겼다”면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민중을 민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9년 3월 9일 오후 5시 50분에 별세하였다. 향년 97세

○ 가족관계
.부모: 문재린, 김신묵
.형제: 형 문익환, 남동생 문영환, 여동생 문은희
.배우자: 문혜림
.자녀: 딸 문영미, 문영혜, 아들 문창근, 문태근, 조카 문성근
- 배우자
문혜림 (文惠林, 페이 문, 1936년 – 2022년 3월 11일, 본명 : 헤리엇 페이 핀치백)이 문동환 (목회자)의 배우자이다.
문혜림은 1986년 의정부, 동두천에서 매매춘 하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두레방을 처음 시작하였다.
그녀의 딸 문영미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샘터사)를 썼다.

- 약력
1921년 5월 북간도 명동촌 출생
1947년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 졸업
1961년 하트퍼드 신학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1961년 한국신학대학 신학과 교수로 재직
1975년 독재정권에 맞선 이유로 해직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
1985년 망명 끝 귀국해 한신대에 복직
1986년 한신대 정년퇴임 뒤 재야에서 민주화 활동
1988년 국회 진출, 진보당인 평화민주당 수석부총재 역임,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1991년 미국으로 돌아가 성서 연구에 주력
2013년 한국으로 복귀
2019년 3월 9일, 향년 98세로 타계
○ 저서
주요저서로 자아확립 (1972), 인간해방과 기독교교육 (1976),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1987), 바벨탑과 떠돌이 (2012), 예수냐 바울이냐 (2015), 두레방 여인들 (2017) 등이 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