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성직자로 노벨상 수상자 ‘남아공의 도덕적 양심’ 데스몬드 투투 / 데즈먼드 투투 (Desmond Mpilo Tutu, 1931 ~ 2021) 별세
데즈먼드 음필로 투투 (Desmond Mpilo Tutu, 1931년 10월 7일 ~ 2021년 12월 26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성공회 (Anglican Church of South Africa)의 대주교였다.
– 데스몬드 투투 / 데즈먼드 투투 (Desmond Mpilo Tutu)
.출생: 1931년 10월 7일, 남아공 클럭스도프
.사망: 2021년 12월 26일, 남아공 케이프타운 Oasis Care Centre
.배우자: 노말리조 레아 셴자네 (1955년–2021년)
.자녀: 미포 안드레아 투투, 나오미 논톰비 투투, 트레버 탐산카 투투, 테레사 탄데카 투투
.수상: 노벨 평화상, Albert Schweitzer Prize for Humanitarianism, Fulbright Prize 등
자신의 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평등, 정의, 평화를 가져온 평생에 걸친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86년 성공회에서 남부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직위인 케이프타운의 대주교로 선출되었다. 2007년-2013년까지 인류의 공통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국제 지도자들의 독립적인 모임인 세계원로회의(The Elders)의 회장으로 재직했으며, 2009년 미국 민간 분야에서 최고 권위가 있는 자유의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했다. 그가 주도한 용서와 화해의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분쟁 해결을 위한 모범이 되었고, 분쟁 이후 재건을 위한 신뢰할 만한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1년 12월 26일 숙환으로 선종하였다
○ 생애 및 활동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빈민촌에서 태어났다. 1950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대학 과정을 수료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에서 당시 몇 명 되지 않은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이었다. 의사가 되려 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1955년 교편을 잡았고, 2년 뒤 신학교에 진학했다.
1961년 성공회 교구 사제가 된 투투 대주교는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런던 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유학생 시절 흑인과 백인 모두 줄을 선 차례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국 은행의 공정함을 보면서 거주지,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모두에서 차별받는 남아공의 극심한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그 근거로 투투 대주교는 저서 《용서없이 미래없다》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개신교 모두 인종차별에 저항하기는 커녕 어떻게 순응하거나 정당화했는지를 말한다.
귀국한 뒤 1975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요하네스버그 성모마리아교회 주임 사제가 됐다.
그는 1978년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 책임자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남아공 교회협의회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국제사회에 남아공 백인 정권에 대한 제재를 호소했고,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된 것은 남아공 정권에 대한 국제적 경고였다고 당시 언론들은 설명했다.
1994년 흑백연합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진실과 화해위원회 (TRC)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케이프타운 교구 전 교구장을 역임하였다.
남아공 최초의 최초의 흑인 성공회 주교에 이어 최초의 흑인 대주교에도 올라 남아공의 성공회 교회 수장이었다.
1996년 은퇴했고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갔지만 남아공을 넘어 세계의 약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하나님이 동성애를 혐오하신다면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겠다”며 동성애 혐오에 반대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점령을 비판하는 등 지구촌의 억압받는 민족 편에 섰다. 또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옹호하며 조력자살에 찬성했고, 2015년 세계 지도자들에게 35년 안에 재생에너지로 달리는 세상을 만들 것을 촉구하는 청원에 나서기도 했다.
2021년 12월 26일 숙환으로 선종하였다.
이날 언론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며 ‘남아공의 도덕적 양심’으로 불리는 투투 대주교가 이날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 수상
198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부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평가
미국 CNN방송은 투투 대주교가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감성적이고 단호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2004년 TV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투투 대주교는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추종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제 코가 커서 눈에 띄는 데다 ‘투투’라는 이름이 쉬워서”라고 농담을 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때로는 거칠고, 보통은 부드러우며, 두려움 없고, 좀처럼 유머를 빼놓지 않는 투투 대주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투투 대주교는 영적 지도자이자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이자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라면서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었다’는 성경적 통찰을 지닌 실용주의 지도자였다”고 했다.
이어 “그는 비범한 지성과 청령함, 용기를 가진 그는 전 세계에서 억압당하는 모든 사람들에 공감하고 애정을 가졌다”며 “그의 서거로 우리에게 해방된 남아공을 물려준 위대한 세대와 작별하는 또 하나의 장이 넘어갔다”고 애도했다.
2013년 서거한 만델라 전 대통령과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도 지난달 11일 숨지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큰 획을 세운 인사들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이다.
○ 저서
주요 저서로 한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선하게 태어난 우리](2012, 나무생각), [우리에게 사랑을 주세요](2011, 마루벌), [용서 없이 미래 없다](2009, 홍성사)가 있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의장으로 참여한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이 철저한 진상조사와 용서가 실천될 때에 가능함을 주장한다.
Crying in the Wilderness, Eerdmans, 1982.
Hope and Suffering: Sermons and Speeches, Skotaville, 1983.
The War Against Children: South Africa’s Youngest Victims, Human Rights First, 1986.
The Words of Desmond Tutu, Newmarket, 1989.
The Rainbow People of God: The Making of a Peaceful Revolution, Doubleday, 1994.
Worshipping Church in Africa, Duke University Press, 1995.
The Essential Desmond Tutu, David Phillips Publishers, 1997.
No Future Without Forgiveness, Doubleday, 1999.
An African Prayerbook, Doubleday, 2000.
God Has a Dream: A Vision of Hope for Our Time, Doubleday, 2004.
Desmond and the Very Mean Word, Candlewick, 2012.
The Book of Forgiving: The Fourfold Path for Healing Ourselves and Our World, HarperOne, 2015.
The Book of Joy: Lasting Happiness in a Changing World, coauthored by His Holiness the 14th Dalai Lama, 2016.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