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4월 모임 실시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그레그 스타인메츠의 ‘자본가의 탄생’ 나눠
다음모임은 5월 14일과 28일, 수요 온라인 모임 [4월 9일과 23일 발제 전문포함]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지도 구본영 교수)는 2025년 4월 9일과 23일 (수) 온라인 모임에 임운규 목사의 독서 발제로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와 그레그 스타인메츠의 ‘자본가의 탄생 :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를 나눴다.

4월 9일 모임에 임운규 목사의 발제로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 (에릭 와이너 저 / 어크로스 출판 / 2021년)를 나눴다.
서두에 “본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저자 에릭 와이너 (Eric Weiner)의 의도대로 따르다보니 어느순간 주마간산 (走馬看山) 하듯 훑어보게 되었다. 본서는 어렵게 말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쓰였다. 본서의 구성은 총 3부로 열네 번의 기차여행 또는 산책하듯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열 네 철학자들을 만나는 여정중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팁을 준다.”고 했다. 이어 목차, 저자와 역자소개, 인상깊은 구절을 소개했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다. 무엇보다 철학적 여행가다. 저서로 베스트셀러 《행복의 지도》와 《신을 찾아 떠난 여행》 등이 있다. 두 책은 스무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NPR의 해외통신원으로 일했으며 〈워싱턴포스트〉와 여행잡지 〈어파〉 등에 기고했다. 아내와 딸, 사납게 날뛰는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워싱턴D.C.에 살고 있다.
발제를 마무리하며 “본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인생의 새벽과 정오, 그리고 황혼에까지 인생에 단계별로 필요한 생각들을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의 속도로 각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들을 느껴 볼 수 있어 좋았다.”며 발제를 마쳤다.

4월 23일 모임에서 임운규 목사는 ‘자본가의 탄생 :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그레그 스타인메츠 저 / 부키 출판 / 2018년)을 소개하며 서두에 “본서는 격동의 시대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한 자본가의 삶과 시대를 잘 담은 평전이자,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역사서다. 세계사에서 중요한 자본가를 꼽는다면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과 함께 독일의 ‘야코프 푸거’를 꼽는 것은 필수적이다. 본서는 야코프 푸거의 일대기다. 황제는 물론 교황까지 압도하는 막강한 자본가였던 그는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을 열었다. 푸거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은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로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복식 부기의 전파, 경제 강국의 판도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등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차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게 됐는데, 모든 일의 중심에는 야코프 푸거 그가 있었다.”라며 목차,저자와 역자 소개 후 ‘독일의 은행가 · 자산가 야코프 푸거 (Jakob Fugger, 1459 ~ 1525)’를 개관했다. 야코프 푸거 (Jakob Fugger, 1459년 3월 6일 ~ 1525년 12월 30일)는 독일의 은행가로 16세기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를 기반으로 활약한 거상 (巨商)이자 르네상스 시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나 교황을 돈으로 협상할 수 있었고 유럽 정치사의 주요 국면마다 유동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인물이다.
발제를 마무리하며 “앞에서 언급한 푸거가 역사에 남긴 굵직한 사건들만이 아니라, 푸거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다. 그는 근대적인 회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역사학자들이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배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던 푸거는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아 부를 쌓았고, 거대 자본을 장기 투자하여 신사업을 개척했으며,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을 열고, 그 어떤 공격에도 살아남은 최초의 현대적 사업가였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금융 체계와 역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며 발제를 마쳤다.
한편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는 독서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환영한다. ‘시드니 시나브로’의 목적은 “독서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외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며, 목표는 “창의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영방식은 독서발제자가 책을 선정하여 소개하면 독서회원 각자가 읽고 요약하여 발표한 후 상호의견을 교환하는데, 모임은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모인다.
다음 모임은 5월 14일과 28일 (수, 오후 5시) 온라인으로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 (0433 486 425)나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문의하면 된다.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5년 5월 온라인 모임 안내
.모임: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
.일시: 2025년 5월 14일, 28일 (수) 오후 5시
.아래 문의처로 연락주시면 온라인 모임에 합류됩니다.
지도 구본영 교수 (0433 486 425, [email protected])
총무 임기호 목사 (0414 228 660, [email protected])
간사 임운규 목사 (0425 050 013, [email protected])
4월 9일 발제 전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
에릭 와이너 / 어크로스 / 2021.4.28
본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저자 에릭 와이너 (Eric Weiner)의 의도대로 따르다보니 어느순간 주마간산 (走馬看山) 하듯 훑어보게 되었다. 본서는 어렵게 말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쓰였다. 본서의 구성은 총 3부로 열네 번의 기차여행 또는 산책하듯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열 네 철학자들을 만나는 여정중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팁을 준다.

○ 목차
들어가는 말: 출발
1부 새벽 :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 3 루소처럼 걷는 법 / 4 소로처럼 보는 법 /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2부 정오 :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3부 황혼 :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나오는 말: 도착
○ 저자소개 : 에릭 와이너
에릭 와이너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다. 무엇보다 철학적 여행가다. 저서로 베스트셀러 《행복의 지도》와 《신을 찾아 떠난 여행》 등이 있다. 두 책은 스무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NPR의 해외통신원으로 일했으며 〈워싱턴포스트〉와 여행잡지 〈어파〉 등에 기고했다. 아내와 딸, 사납게 날뛰는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워싱턴D.C.에 살고 있다.
– 역자: 김하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뒤 지금은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식사에 대한 생각》,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외 다수가 있다.

○ 인상깊은 내용
1부 새벽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루소처럼 걷는 법, 소로처럼 보는 법,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을 들려준다.
①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온전한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 마르쿠스의 철학은 마르쿠스가 상담가 역할도 하고 환자 역할도 하는 심리 상담이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한다. 마르쿠스는 해야 할 중요한 일들과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사상들이 이불 밖에 있음을 안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은 외부에서 오는 ‘의무’와는 다르게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②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우리는 소크라테스 덕분에 전과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소크라테스는 가는 곳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진리의 표현이 자신의 언어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직감할 때 통찰의 순간이 찾아온다. 좋은 질문은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하나의 목표가 있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③루소처럼 걷는 법: 장 자크 루소는 철학자, 소설가, 작곡가, 에세이 작가, 식물학자, 독학자, 도망자, 정치 이론가, 마조히스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산책자였다. 걷기는 자연스러운 행위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걷기는 누구에게도 평등하다. 말년이 다가올수록 루소의 걸음은 더 부드럽고 낙천적인 성격을 띠었다. 옛날과 같은 자기 연민과 피해망상의 흔적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지만 절박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루소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무언가를 찾거나 철학적 주장을 하기 위해 걷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근대에 데카르트가 머리의 철학자였다면, 루소는 심장의 철학자였다. 루소의 주장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자연과 다시 동조하자는 것이었다. 걷기는 움직임 속의 성전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평화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함께 움직인다.
④소로처럼 보는 법: 소로의 저서 ‘월든’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소로는 신뢰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감각은 우리가 가진 전부인데 최대한 잘 사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본다는 것은 사진보다는 언어에 가깝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보는 것의 역학은 양쪽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⑤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쇼펜하우어의 암울한 세계관은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를 읽기 훨씬 전인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감사와 연민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분리된 것으로 경험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동양의 신비주의자들처럼 이러한 인식이 환상이라고 믿었다. 매일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처럼 정신에서 구성된, 즉 인지적 세계를 경험한다. 이 세계는 실재한다. 호수의 표면이 실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리처럼 매끈한 수면이 호수의 전부가 아니듯이, 인지적 세계 역시 실재의 일부만을 나타낸다. 호수의 깊이를 설명해내지는 못한다. 쇼펜하우어는 음악 외의 다른 예술은 그림자를 이야기할 뿐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본질을, 물자체를 이야기하고, 그러므로 모든 삶과 존재의 가장 내밀한 본성을 표현한다. 진정한 듣기를 위해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아무런 판단 없이 음악을 들을 때 “절대적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철학자들이 저 바깥세상을 설명하려 시도한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내면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이 세계도 알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2부 정오에는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간디처럼 싸우는 법,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알려준다.
⑥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시기는 치료 용도의 철학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헬레니즘 시대라고 불리는 그 시기에 사람들은 오늘날 배우자나 통신사를 고를 때처럼 열정적이고 신중하게 철학 학파를 골랐다. 먼저 그는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사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왜 관심이 있겠는가? 신으로 사느라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신은 유명인사와 비슷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 positive affect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 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 平靜 주의자’였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올바른 마음가짐만 갖춘다면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 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⑦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시몬 베유의 당부는 더 단순하지만 결코 더 쉽진 않다. 베유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아무 관심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베유가 생각한 관심은 그동안 내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르다. 관심은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많은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한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베유의 급진적 공감 능력은 관심에 대한 베유의 급진적 견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유는 관심을 어떤 수단이나 기법으로 보지 않았다. 베유에게 관심은 용기나 정의와 다르지 않은, 똑같이 사심 없는 동기가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진정한 관심이라면 그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인정하고 공경해야 한다.
⑧간디처럼 싸우는 법: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 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거세했다고 믿었다. 그는 인도의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남성성은 좀 달랐다. 간디가 생각한 남성적 힘은 폭력이 아닌 그 반대에서 나왔다. 간디는 부당한 법에 복종하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겼다. 그런 법에는 반드시 맹렬한 힘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비폭력적 힘으로 말이다. 간디는 그러려면 진정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디는 폭력을 혐오했지만 그가 폭력보다 더 싫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겁함이었다. 둘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간디는 폭력을 선택했다. 간디는 ‘바가바드기타’를 다르게 읽었다. 그는 ‘오늘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묘사한 하나의 비유라고 말했다. 진짜 전쟁터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아르주나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기초적인 본능에 굴복하는가, 아니면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하는가? 간디는 ‘바가바드기타’가 사실은 비폭력을 향한 찬사라고 생각했다. 한편 간디는 자신이 진실의 일부만을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고 자기 입장을 점검할 것을 말한다.
⑨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공자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인만큼 중요한 단어는 없었다. 인은 ‘논어’에 105번 등장하는데, 그 어떤 단어보다 많은 횟수다.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자 자신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연민, 이타주의, 사랑, 어짐, 진정한 선, 온전한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중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번역은 ‘인간다운 마음’이다. 공자가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다. 이 이유는 인과 친절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목표는 인성 개발, 즉 도덕적 역량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효도만큼 중요한 역량은 없었다.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공자의 ‘공부‘는 기계적 암기를 뜻하지 않는다. 심지어 배움 그 자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공자에겐 더 깊은 뜻이 있다. 바로 도덕적 자기 수양이다. 친절은 힘든 것이다. 친절에는 감정 이입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유교 의례가 필요하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친절은 힘든 것이다.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⑩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쇼나곤은 한 길에만 머무르길 거부한다. 그녀는 “세련되고 우아한 것들”에서 “가치 없는 것들”로 방향을 꺾었다가 다시 “진정으로 훌륭한 것들”로 돌아온다. 쇼나곤이 길을 잃은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쇼나곤은 “붓 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뜻의 즈이히츠 隨筆를 하고 있다. 즈이히츠는 일본의 글쓰기 기법 아닌 글쓰기 기법으로, 저자의 눈엔 책이 아닌 책을 쓰기에 완벽한 방식으로 보았다. 즈이히츠를 실천하는 작가는 주제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 지적 가려움을 긁은 다음,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글에 구조를 부여한다기보다는 구조가 스스로 나타나게 한다. 세이 쇼나곤은 자기 렌즈가 투명하고 깨끗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다.

3부 황혼에는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몽테뉴처럼 죽는 법을 통해 중년 이후 노년기의 생각들을 나눈다.
⑪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영원회귀‘라는 생각은 니체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니체가 보기에 춤추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목표를 향한다. 바로 삶의 찬미다. 니체는 그 무엇도 입증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기를, 자기 힘으로, 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기를 원할 뿐이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저자는 니체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안다.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의 모습은 시시포스의 행복이다.
⑫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는 지혜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사실적 지식, 절차적 지식, 인생 전체에 걸친 맥락주의, 가치 상대주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과 혼란을 관리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혼동한다. 스토아철학은 헷갈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간단하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몸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빌릴 뿐, 절대로 소유하지 않는다. 해방감이 느껴진다. 잃어버릴 것이 없다면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할 것도 없다.
⑬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노인들이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이 절망에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스토아학파의 믿음처럼 내가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 전자는 바꾸고 후자는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의 핵심이라면, 노년은 스토아 철학의 지혜를 연습할 수 있는 완벽한 훈련장이다.
⑭몽테뉴처럼 죽는 법: 죽음은 진정한 철학을 가리는 테스트다. 몽테뉴는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했다. 몽테뉴는 죽음을 회피하면 “다른 기쁨까지 전부 사라져버린다.”고 보았다. 몽테뉴는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선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그리고 몽테뉴는 동포인 시몬 베유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제발, 주의 좀 기울여.”
○ 나가며
본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인생의 새벽과 정오, 그리고 황혼에까지 인생에 단계별로 필요한 생각들을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의 속도로 각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들을 느껴 볼 수 있어 좋았다.
4월 23일 발제 전문
자본가의 탄생 :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원제 : 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
그레그 스타인메츠 / 부키 / 2018.12.24
이번 연말연시 휴가지에 들고 간 책은 본서 ‘자본가의 탄생’이다. 본서는 격동의 시대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한 자본가의 삶과 시대를 잘 담은 평전이자,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역사서다.
세계사에서 중요한 자본가를 꼽는다면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과 함께 독일의 ‘야코프 푸거’를 꼽는 것은 필수적이다. 본서는 야코프 푸거의 일대기다. 황제는 물론 교황까지 압도하는 막강한 자본가였던 그는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을 열었다.
푸거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은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로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복식 부기의 전파, 경제 강국의 판도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등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차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게 됐는데, 모든 일의 중심에는 야코프 푸거 그가 있었다.

○ 목차
머리말 – 9
1장 여정의 시작 – 17
2장 황제에게 꼭 필요한 존재 – 49
3장 사업의 확장 – 75
4장 금융의 마술사 – 111
5장 상인의 전투 – 125
6장 대금업의 합법화 – 143
7장 종교개혁의 불씨 – 173
8장 황제 선거 – 185
9장 승리 그리고 패배 – 213
10장 자유의 바람 – 239
11장 농민 전쟁 – 271
12장 북소리가 그치다 – 303
맺음말 – 327
후기 – 338
주 – 343
참고문헌 – 352
찾아보기 – 379
○ 저자소개 : 그레그 스타인메츠
미국 클리브랜드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콜게이트대학을 졸업했으며 노스웨스턴대학 메딜 저널리즘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15년 동안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 독일 지사와 런던 지사의 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현재는 뉴욕에 있는 자산관리사에서 증권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본가의 탄생》은 야코프 푸거가 그 중요성에 비해 영어권에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쓴 그의 첫 저서다. 그의 책은 야코프 푸거의 역사적 의의를 일반 독자에게 가장 잘 소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역자: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번역한 책으로는 《우리 몸 오류 보고서》, 《이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 《바나나 제국의 몰락》 등 다수가 있으며,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썼다.

○ 독일의 은행가 · 자산가 야코프 푸거 (Jakob Fugger, 1459 ~ 1525) 개관
야코프 푸거 (Jakob Fugger, 1459년 3월 6일 ~ 1525년 12월 30일)는 독일의 은행가이다. 16세기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를 기반으로 활약한 거상 (巨商)이자 르네상스 시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나 교황을 돈으로 협상할 수 있었고 유럽 정치사의 주요 국면마다 유동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았다.
1459년 3월 6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바바라 푸거 (Barbara Fugger)의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한스 푸거는 그라헨 마을의 농부였으나 아우구스부르크로 이주해 직물상인으로 성공하여 푸거 가문의 기반을 닦는다. 본래 푸거의 조상은 방직공 출신으로 야콥 푸거의 조상인 요한 푸거의 대부터 상인이 되었다.
야코프 푸거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은행·광산 등에 손을 대어 막대한 부자가 되었다. 마침내 그의 집안은 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여러 나라에도 자금을 대주었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를 후원해 황제가 되는 것을 도와주는 대가로 당시 합스부르크의 소유였던 울름 백작령을 비롯한 여러 영지를 구입하고 신성로마제국의 이권을 챙겼으며 평민 출신에서 일약 제국백작의 작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그는 유럽 최고의 부자로 이름을 떨쳤으며 막시밀리안 1세가 죽자 그의 손자인 카를 5세가 황제가 되는 것을 도왔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빈민주택단지 푸거라이 (Fuggerei)와 푸거 궁 (Fuggerplasat)을 각각 1500년대에 건설했으며, 야콥 푸거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1525년 유언장을 통해 가업을 조카 울리히에게 물려주고 1525년 12월 30일 별세한다.

○ 마치며
앞에서 언급한 푸거가 역사에 남긴 굵직한 사건들만이 아니라, 푸거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다. 그는 근대적인 회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역사학자들이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배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던 푸거는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아 부를 쌓았고, 거대 자본을 장기 투자하여 신사업을 개척했으며,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을 열고, 그 어떤 공격에도 살아남은 최초의 현대적 사업가였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금융 체계와 역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 이자 대신 권리 받아
야코프 푸거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만 해도 푸거가는 직물 매매를 주력으로 삼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럽 최고의 부자로 거듭난 발판 중 하나는 투자에 가까운 채권 방식의 대출이었다. 푸거는 종종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았는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막대한 이익을 낳는 권리를 알아봐야 했다. 무역이 활발해지고 전쟁이 빈발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가치가 높은 권리가 무엇인지 푸거는 일찌감치 꿰뚫어보았다. 바로 은과 구리 광산의 채굴권과 소유권이었다.
– 거대 자본을 장기 투자하여 신사업 개척
지기스문트에게 돈을 빌려주어 막대한 은을 손에 쥐게 된 푸거는 막대한 여유 자금을 확보했다. 어딘가에 이 돈을 투자해야 했다. 가장 간단한 일은 기존에 하던 직물 매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직물 매매는 경쟁이 심했고 부가가치도 많지 않았다. 푸거가 눈을 돌린 곳은 구리였다. 구리는 16세기 전쟁의 핵심인 대포와 소총의 주원료였기에 독점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 열어
15세기까지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교회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 (누가복음 6장 35절)’ 같은 성경 구절에 근거해 이자를 물리는 것을 죄악시하고 고리대금을 금지했다. 푸거를 견제하려는 사람들은 예금주에게 5퍼센트의 이윤을 약속하는 아우크스부르크 계약을 문제 삼고 있었다. 푸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작부터 후원하던 신학자들을 동원했다.
푸거는 신학자들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를 직접 움직였다. 푸거는 레오 10세에게 알 수 없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고 얼마 후 교황은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교황 칙령에 서명했다. “고리대금은 본성상 불모인 것에서 얻는 이익, 즉 노동이나 비용, 위험 없이 얻는 이익을 일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줄 때 노동, 비용, 위험 없이 이자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제 금융은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레오 10세는 푸거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레오 10세가 이탈리아 굴지의 금융가인 메디치 출신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시대가 급변해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푸거가 교황, 주교, 신학자, 귀족들을 상대로 했던 막대한 로비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 면죄부 판매의 배후가 되어 종교개혁 촉발
종교개혁하면 교황청의 부패, 성직자의 탐욕, 교회의 세속화 등에 분노한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종교개혁의 뒤에도 푸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514년 우리엘 폰 게밍겐이 사망하면서 마인츠 대주교 자리를 놓고 경쟁이 붙었다. 이때 알브레히트는 대주교 자리를 따내기 위해 푸거에게 많은 돈을 빗 졌고, 이제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면죄부 판매였다. 교황의 동의하에 발행된 이 ‘편지’가 훗날 면죄부라 불리게 되는 것인데 알브레히트가 이를 돈을 받고 파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면죄부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푸거에게 갚는 것은 신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다.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고, 그것이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교황과 푸거는 푸거 궁이라 불리는 그의 집에서 돈을 나누기로 모의하여 절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나머지 절반은 푸거가 갖기로 했다. 그 뒤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루터는 격분하여 95개조 반박문을 썼다. 루터는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바로 그가 면죄부의 원흉임은 몰랐으리라.
– 르네상스 시대 왕좌의 게임을 좌지우지
신성로마제국의 헌법인 금인칙서에 따르면 황제 자리는 반드시 선거를 치러야 했다. 스페인 왕 카를과 프랑스 왕 프랑수아가 선거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이는 황제 선거에 표를 행사하는 선거후들에게는 한몫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선거후들이 신뢰하는 은행가가 푸거였기에 선거에서 이기려면 푸거를 잡아야 했다. 푸거는 전령을 파리로 보내 프랑수아와도 거래할 의사가 있음을 카를에게 보여주었다. 프랑수아가 푸거에서 손을 내밀자 푸거는 그 조건을 합스부르크 가문에 흘렸다. 카를이 푸거를 잡으려면 프랑수아보다 좋은 조건을 걸어야 했다. 카를은 선거후들의 압력에게 이기지 못하고 결국 푸거에게 돈을 빌렸다. 그 대가로 푸거는 여러 가지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인쇄기 통제권이었다. 언론의 자유가 푸거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다.
– 역사의 행로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1525년 독일에서는 유럽 역사상 최대의 대중 봉기가 발발했다. 수많은 마을이 불에 타고 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훗날 독일 농민 전쟁으로 불리게 되며 엥겔스는 이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전초전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농민 전쟁의 계기를 푸거가 제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대중의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 종교와 정치를 압도한 자본가의 탄생
푸거가 역사에 남긴 것은 앞에서 소개한 굵직한 사건들만이 아니다. 푸거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다. 그는 근대적인 회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역사학자들이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배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던 푸거는 가히 오늘날 자본가의 원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종교와 정치 권력의 위세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던 시절에도 돈 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왕이든, 황제든, 귀족이든, 교황이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동등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에 푸거는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임운규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회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