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 (Martin Bucer, 1491 ~ 1551)
독일의 종교개혁가. 1491년 제조공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10년간 신학을 공부했으며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루터를 만나 그의 견해에 깊이 설득되었다. 1521년 도미니코회를 떠나 1522년 전직 수녀 엘리자베트 질베라이젠과 결혼하여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당했다. 1523년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여 마태 첼 Matthew Zell, 카피토 Wolfgang Capito 등과 함께 스트라스부르 종교개혁을 이끌었으며 이후 25년간 이 도시 개신교 개혁의 중심에 섰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의에서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찬 논쟁을 중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530년 루터파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별도로 스트라스부르·콘스탄츠·린다우·메밍겐 네 도시를 대표하는 『네 도시 신앙고백』 Confessio Tetrapolitana을 작성했다. 1538년 제네바에서 추방된 칼뱅을 받아들여 1541년까지 3년간 멘토로 지냈다. 1548년 카를 5세의 『아우크스부르크 임시 칙령』 Augsburg Interim으로 스트라스부르에서 추방되어 토머스 크랜머 Thomas Cranmer의 초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 교수로 부임했다. 잉글랜드에서 크랜머와 함께 성공회 개혁에 기여하며 에드워드 6세 치하의 종교개혁 방향을 형성했다. 1551년 케임브리지에서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1557년 메리 1세 치하에서 유해가 발굴되어 이단으로 화형당했으나 1560년 엘리자베스 1세가 명예를 회복시켰다.
‘종교개혁의 중재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교회 일치 외교관으로 1529년 마르부르크 회의 이후 모든 종교 회의와 제국 의회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터파, 츠빙글리파, 가톨릭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개신교 교회 일치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성찬론에서 그리스도의 실체 현존을 주장한 루터와 기념설을 주장한 츠빙글리 사이의 중간 입장으로 ‘성사 안에서의 연합’ sacramental union 개념을 발전시켰다. 스트라스부르 시절 칼뱅에게 교회 조직, 예배, 목회 신학, 예정론과 관련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케임브리지 시절 크랜머에게 영향을 미쳐 에드워드 6세 시대 성공회 예배 개혁과 제2차 『성공회 기도서』 Book of Common Prayer 개정에 기여했으며 만년 저작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하여』 De Regno Christi는 그리스도교 사회 개혁의 전망을 담은 저작으로 사회신학의 초석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부처의 저작은 하이델베르크 학술원 지원 아래 출판 중인 비판 교정판 『마르틴 부처 전집』 Martini Buceri Opera Omnia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제1시리즈 독일어 저작 Deutsche Schriften, 제2시리즈 라틴어 저작 Opera Latina, 제3시리즈 서신집 Correspondance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계속 출판 중이다. 독일어 저작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무료 접근이 가능하다 (https://digi.hadw-bw.de/view/bds). 한국에는 『참된 목회학』 <킹덤북스>), 『삶, 나 아닌 남을 위하여』 (킹덤북스)가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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